좋은 책을 읽고

칼의 노래 (김훈 作)

나무^^ 2010. 8. 22. 16:01

                                                                             김 훈 작.    펴낸 곳  생각의 나무               

            

      

  

 

                자전거를 타고 산간지방을 달리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펼쳤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그의 문체는 객관적이고 간결명료했다. 또한 그의 인상답게 고독한 예지가

                    번뜩이는 문체는 구구하지 않음에도 이순신 장군의 절절한 심정이 투명하게 드러나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허약한 국세로 열강에 시달려야 했던 이 나라의 비참한 현실에서 존재의 무내용에 신음하며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영웅을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그 이름을 알았을 뿐,

                    정신없이 바쁜 후손들은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그저 지나친다. 

 

                    세상에 마음 비우고픈 작가는 현충사 사당에 걸려있는 이순신 장군의 칼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고단한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인 한 생명의 무거운 존재감을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토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어떤 특정한 줄거리에 힘입어 전개되는 소설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칼이 부르는 '노래'처럼

                    수없이 벌어지는 전투를 치루면서 보고 느끼는 이순신 장군의 참담한 심정을 기술하고 있다.

                    벌목작업장에서 죽어가며 우는 포로들을 보면서 그 죽음의 개별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우리를 도와 준답시고 주둔해 와 있는 명나라 대장은 수획물을 챙겨 공적을 인정받을 생각만으로 

                    일본과 내통하며 협상을 한다. 적의 인후앞에서 온통 적에게 둘러싸인 그를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에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시인 임화를 추억하며 작가는 말한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말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인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인지요...'  

 

                    마음으로 세상을 버린 이의 울음을 이순신이라는 숭고할 만큼 고독했던 인물을 통해 칼의 노래로 승화시킨

                    작가의 인고에 찬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이 책을 통해 그 당시 비참한 왜란의 자세한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목숨을 무참히 희생시키며 지금까지 지켜온 나라인지 가슴이 먹먹할 정도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과연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해도 좋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혹자는 강요당하는 역사수업이 호기심에 차 진정으로 일어나야하는 역사관을 오히려 그릇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물론 피로 얼룩진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외우는 것에 그치고 마는 수업이라면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한 시대라도 깊이 파고 들어가 생생한 현장으로 달려가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역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달라질 것이다. 

                    내 것을 지키지 못한 채 어찌 남의 것을 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제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힘들어도 그것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노래를 간직하며 무거운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그 사실을 의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의식하지 못하는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