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글 이겸 사진 은행나무 출판
내가 에레베스트 트레킹 한 코스를 했다는 말을 들은 지인이 읽어보라며 빌려주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친구의 권에 멋모르고 참여했다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을, 아니 산을 좋아한다면 죽기 전에 꼭 한번은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에레베스트 산 트레킹의 멋진 경험의 순간들이 다시금 생각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라네바다 산맥에 있는 '존 뮤어 트레일'코스는 요세미티 계곡에서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봉에 이르는 장장 358 km의 힘든 코스이다. 작가 신영철이 그의 친구 하워드, 사진작가 이겸, 화가 김미란 이렇게 네 사람이 허구헌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함께 17일간 종주한, 특별한 시간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썼다.
읽는 내내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트레킹 코스의 아름다운 경치는 산과 함께 계속 나타나는 아름다운 호수들이 더해 주었다. 아니! 그 높은 산에서 낚시대로 송어를 잡아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호수들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밤이면 곰들이 나타나 먹이를 얻으려고 곰통을 흔드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 헤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그곳의 주인은 원래 곰이였음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또한 예전에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디 부라운 作)라는 책을 읽고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인디언들을 짓밟고 설립된 나라인지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에도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이었던 '붉은 구름'의 말이 나온다.
'백인들은 헤아릴 수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의 땅을 먹겠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그렇게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의해 문명이 발달한 서양인들이 차지한 땅이었다. 밀려나는 인디언들은 그들의 땅이 잘 보살펴지기를 바랬고, 환경보존가인 존뮤어는 혜안을 가지고 이 땅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비롯한 세계환경보존기구의 활약이 컸다.
작가는 트레킹에서 만난 사람들을 간단히 인터뷰한 내용들도 실어 그곳을 찾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준다.
모두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 방학중인 어린 아들과 함께 4박 5일 트레킹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온 제라린이라는 엄마는 '자연이 더 훌륭한 학교가 아닌가...' 존뮤어는 자연을 진정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곧 마음의 본질을 오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그는 산이 경제적 효용가치 이상의 심미적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더러는 혼자 하는 대단한 이들도 있었다.
친구이자 길잡이였던 하워드씨의 우직함과 함께 이겸씨는 좋은 사진들을 많이 게재하여 그곳의 거칠고 아름다운 풍광들을 보여주었다. 미란씨는 이 코스를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한다. 산을 좋아하는 트레커들이 즐길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시간과 여비와 체력, 이 세가지를 지닌 사람이라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작가가 표현한 부분들이다.
'하산은 실버 패스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눈 아래 포켓 메도의 너른 들판이 보인다. 여름 햇볕에 반짝이며 흐르는 개울과 잔디의 초록은 한 폭의 그림이다... 들판 중간 중간에 염주알처럼 파란 호수도 보인다. 이곳의 지명에 쓰는 메도(meadow)의 사전적 의미는 풀밭이나 목초지를 말한다. 그리고 삼림 한게선에 접하는 초원이라는 뜻도 된다. 하얀 화강암벽과 잘 생긴 숲, 메도가 시에라네바다 산의 진가를 구성하는 3 박자라면 호수와 개울과 폭포는 신명나는 자연 교향악의 추임새처럼 보였다...'
'우리는 매일 고개를 향해 미친듯 걸었고 더위가 한계에 달하면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런 거친 숨속에서도 눈앞의 풍경은 천국이었다. 날카로운 침봉들 아래 자이언트 세코이아 숲과 초원이 펼쳐져 있고, 여기저기 호수와 폭포가 늘어서 있다. 사슴, 곰, 다람쥐, 마모트가 뛰어노는 눈 앞의 풍경은 바로 장엄한 한편의 서사시라 불릴 만도 했다... 산속에서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만나고 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일상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이러한 무기력에서의 일탈이다... 존뮤어 트레일을 걷는 것은 엄청난 경험, 갇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을 보는 동시에 삶이란 나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들과 얽힌 것이라는 각성을 하게 한 기회였다...'
육체가 고될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경치에 정신은 맑아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치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기라도 하는 듯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다. 책에는 이 트레킹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연락처까지 일일히 자세하게 안내가 되어있다. 네팔에서처럼 짐을 져주는 이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작은 구간만이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곳은 제 짐은 제가 메고 가야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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