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인생의 베일

나무^^ 2021. 11. 8. 17:53

예전에 상영되었던 '페인티드 베일' 영화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사놓고서는 이제야 읽었다.

책도 영화도 아주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과 배경장면들이 기억나서 좋기도 하고 상상력의 한계가 있기도 했다.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에서 이 이야기는 단테의 <신곡> 중 연옥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에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고 한다.

내용인즉 저자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중 한 셋집에 거주하면서 주인집 딸에게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신곡 번역을 하였다. 그러던 중  주인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시애나의 한 귀족부인 피아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이 마렘마에 있는 자기 성으로 데려가 유독가스를 이용해 죽이려다 시간을 끌자 창밖으로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으로 긴 여행을 다녀온 후 드디어 이 이야기를 착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곡의 피아가 이 책의 여주인공 키티로 태어난 것이다.

원래는 홍콩을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의 성을 평범한 레인으로 불렀는데 실제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고소를 하는 바람에 반품을 받아야 했다고 놀라워했다. 영국에서는 고관대작을 주인공으로 해도 별탈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도 바꾸고 배경도 중국으로 바꾸어 다시 출판하는 와중에 몇명 눈치 빠른 평론가들은 핑게를 대며 책을 돌려주지 않아 예순 권 정도 되는 그 책들은 서지학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그녀가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금지된 행동에 불붙은 열정은 키티의 이성을 거세하고 뻔뻔함을 가중시킨다.

먼저 결혼하려는 동생에게 떠밀리듯이 한 결혼은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의 타입이 아닌 그를 의사라는 조건만 보고 수락했기 때문이다. '...미남의 조건에 부합했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는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 그러나 그는 키티를 보고 첫눈에 마음이 끌려 그녀에게 접근하며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청혼을 한다. 그가 외지로 떠나야했기 때문에 결혼을 서둘렀다.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이란 마음이 함께 할 경우 정신을 잃을 만큼 자극적이지만, 마음이 떠나고 나면 그처럼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 또 있을까! 키티는 찰스의 육체적 매력과 유혹에 빠져 심신을 다해 사랑했다. 그리고 상대의 사랑 또한 믿었다.

키티는 남편 월터가 모든 것을 알고 자신을 조정하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하는 그는 그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키티는 그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알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정신세계나 내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변덕에 기분을 맞춰주는 그에게 길들어져 있던 그녀에게 냉정하게 사태의 실체를 보여주는 월터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는 아내가 어떤 여자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문장력은 말 달리듯 거침없다. 그녀의 외도에 대해서 내밷은 자신의 말에 창피함을 느끼는 순간 , '그의 눈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혐오감을 읽었다.' 그는 그러한 싸움조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타운센드 부인이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확답을 내게 주고, 법원으로부터 두 사람의 이혼 확정 명령이 내려지고 나서 일주일 안에 그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내게 서면 동의를 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남편으로서 이보다 더한 해결책이 없을 만큼 그는 이성적이었다.  또한 자신의 아내에 대한 확실한 책임의식을 드러내는 타협안이었다.

 

'새벽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물안개 속으로 태양의 손길이 미치자 죽어가는 별 표면에 피어오르는 눈의 망령처럼 안개가 하얗게 빛났다...강을 굽어보며 우뚝 선 요새,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의 본거지. 하지만 그것을 세운 마법사가 다시 한 번 재빨리 손을 쓰자 형형색색의 장막이 성채의 꼭대기에 걸쳐졌다. 그때, 노란 햇빛이 안개를 뚫고 여기저기 광대한 손길을 뻗쳤고, 초록색과 노란색 지붕들의 군락이 보였다, 그것은 거대했지만 어떤 유형이나 질서가 없었다...종잡을 수 없고 방대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풍부함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지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비물질적이었다. 마치 꿈결처럼.

눈물이 키티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입을 약간 벌리고 숨을 멈춘 채 손으로 가슴과 입을 감싸 쥐고서 앞을 응시했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보이기는 처음이었고 마치 몸을 허물처럼 발치에 벗어던지고 순수한 영혼이 돤 것만 같았다.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키티가 며칠을 걸려 남편을 따라 콜레라가 창궐하는 메이탄푸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녀는 실연의 아픔으로 차라리 콜레라에 걸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따라 나섰다.

'키티는 중국인들에 대해서라면 퇴페적이고 더럽고 입에 담기도 싫은 족속이라는 말 빼고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커튼의 한쪽 끝이 잠시 들어 올려진 틈새로 꿈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롭고 장대한 세상을 언뜻 본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그나마 그녀의 말친구가 되어주었던 워딩턴을 보면서 그녀가 느낀 감정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이른 아침 햇살이 천상의 부드러움을 사방에 쏟아놓고 있었다. 여명이 이처럼 상쾌하고 신선한 미소를 짓는데, 미치광이의 손에 목 졸려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그 도시가 역병의 어두운 손아귀에서 헐떡거리며 누워 있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인간이 공포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음 앞에 내몰리는데 자연은(저 파란 하늘이 아이의 마음처럼 청명한데도)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을까?' 그녀가 처음으로 수녀원을 방문하기 위해 가면서 느끼는 부분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역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도시를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 유행이 왕왕 있어왔지만 의학자들은 있는 힘껏 백신을 만들어 전파하고 바이러스는 무수히 다른 양태로 변종을 일으킨다. 이제 독감처럼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키티가 남편의 냉정함과 혼자 집에 있는시간의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수녀원에서 일거리를 찾고자 했을 때 자애로운 수녀원장이 말한다.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키티는 봉사하는 일에서 영혼을 재충전하는 길을 발견했다. 그녀는 매일 동이 트자 수녀원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좁은 강과 북적거리는 거룻배 위에 황금물결을 쏟아낼 때가 되어서야 방갈로로 돌아왔다.' 키티는 어린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래도 그녀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을 쏟곤 했다.

그녀의 임신은 기쁜 일임이 분명했으나 '내가 아이 아버지인가?' 묻는 남편의 질문에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그의 아이라고 말했으면 좌절하고 힘든 남편에게 큰 위안이 되었겠지만 그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모든 일을 극복해내며 살고 있기에 '모퉁이 하나만 돌면 죽음이란 놈이 감자를 땅에서 캐내듯 인명을 앗아가며 활개를 치는 이때에 누가 몸뚱이를 더럽혔네 어쩌네 하는 것에 신경을 쓰다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찰스가 그녀에게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그래서 그의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는 일 조차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그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가슴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말라 버렸다는 걸 그에게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 그와 벌인 갖가지 행동들이 이제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이제 심장을 되찾았고 자신의 몸을 바쳤던 사실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키티의 사고력이 성숙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슴속에 존재하는 이상한 훼방꾼이 나서서 상황을 그녀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남자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생식에서 그들의 역할은 너무나 사소했다...' 그녀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는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길 권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그의 곁에 남아 수녀원 일을 계속한다.

 

키티가 남편에게 용서를 빌며 처음으로 '내사랑'이라고 말했을 때 월터는 눈물은 흘리며 말한다.

'죽은 건 개였어.' 

그는 18세기 영국 작가 올리버 골드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에 나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는 무슨 말인지몰랐다. 한 남자가 잡종개를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 개가 남자를 물자 사람들은 미친 개에 물린 남자가 죽을 거라고 법석을 떨었지만 , 남자는 상처가 낫고 정작 개가 죽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이었다. 

이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작가는 키티와 워딩턴의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잇는 이 세상을 역겨움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이따금씩 혼돈속에서 창조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그린 그림, 그들이 지은 음악, 그들이 슨 책, 그들이 엮은 삶,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것은 아름다운 삶이죠. 구건 완벽한 예술 작품입니다.'

'... 부드러움은 공격한 자에게 승리를 불러오고 방어한 자에게 안전을 가져다 줍니다. 위대함은 스스로를 극복한 자의 것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는 언제나 비열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애증관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에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찰스를 만나자 다시 한 번 욕망에 무릎을 꿇었다. 가증스럽고 무가치한 자신에게 치를 떨며 산산조각난 자존심을 부여안고 도망치듯 홍콩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녀가 집에 가는 동안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재판장 자리에 올라 타지로 떠나게 되었다. 이제 철이 든 그녀는 외롭지만 이제야 구속에서 벗어난 아버지를 보필하겠다며 함께 갈 것을 부탁한다.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적 모습을 돌이켜 보면 제 자신이 싫어요...내 딸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예요.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던져놓고는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우기 위해 평생토록 입히고 먹일 생각이 없어요.' 그녀가 딸을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적 인격체이자 자유로운 남자처럼 살면서 자신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 바란다고 말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자식이 몇이나 되던가!

 

작가가 1874년생이니 그 당시 영국의 결혼 풍습에서 비롯된 여자들의 의식을 깨우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우리 나라도 2000년도에 이르러서야 여자들도 거의 직업을 지니고 결혼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핵가족 내지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녀양육이 어려우니 비혼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점점 감소하여 이제는 자식이 상전이 되었다. 

 

작가의 유려한 문장력과 이야기 전개가 주는 흡인력은 그의 책을 다시 사서 읽게 한다.

대표작으로 '인간의 굴레', '달과 육펜스', '과자와 맥주', '면도날', '작가수첩'(에세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