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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브뢰겔

나무^^ 2021. 11. 29. 14:55

 

노성두 지음       아이세움 출판

 

 

1장. 하늘까지 오르는 탑을 짓자

 

< 붉은 바벨탑 1563년. 114×155cm >

 

네델란드 화가 브뢰겔이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을 그린 그림이다. 

튼튼한 벽돌 굽는 방법을 발명한 사람들은 끝없이 높은 탑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그 탑은 무너지고 사람들의 언어는 서로 달라져 분열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화가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보았던 로마의 콜로세움 건축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배경으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번성했던 무역도시 네델란드 안트베르펜 항구를 담았다.

같은 크기의 비슷하게 그린 푸른 바벨탑도 있는데 웅장하고 정밀하다.

    

< 푸른 바벨탑  1563년. 114×155cm >

 

브뢰겔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의 그림 60여점만이 그의 예술혼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달력그림과 속담그림, 종교화에서 풍속화까지 가리지 않고 그렸다. 그가 살았던 당시 네델란드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다. 그는 스무살쯤 성 루카스 길드에 가입하여 도제시절 푼푼이 저축한 돈으로 이탈리아를 향해 나갔다. 만년설 알프스를 넘으며 보아두었던 인상적인 광경을 돌아와 빠짐없이 그렸다. <알프스 협곡을 넘어가는 나그네>는 펜화로 그린 후 동판화로 찍어냈다. (1955년) 그 당시의 다른 화가들의 중요한 그림도 올려 비교하며 설명하여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였다. 사진이 없던 시절 간단한 스케치와 기억만으로 구성이 멋진 그림을 그렸다.

 

2장.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1556년. 21.6×30.7>

 

수완좋은 출판업자와 재능있는 화가의 합작으로 동판화는 불티나게 팔렸다. 동판화는 신문이 탄생하기 이전에 빠른 소식을 전해주는 정보지 역할을 하며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특히 네델란드 사람들은 속담 동판화를 애호하여 거실에 걸어두고 교훈을 삼았다. 위 그림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속담을 설명한 그림이다. 어부는 큰 물고기를 잡고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작은 물고기는 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즉 누구나 천적이 있으므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혜롭게 처신해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당시 에스파냐의 통치 아래에서 종교대립까지 격화되어 나라는 두 진영으로 갈라지며 번성했던 경제가 차츰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미덕과 패덕에 관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수가 많아 삼 년이나 걸려 만든 '일곱 가지 미덕' 작품 중 <슬기>에는 '앞날의 고난을 알고 미리 예비하는 것, 쓸데없는 욕심의 불길을 끄는 것, 선악을 헤아려 구분하는 것,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 잡아서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일곱 가지 패덕은 '분노, 인색, 육욕, 교만, 탐식, 질투, 허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이 나타내는 속담 내용을 부분마다 확대하여 보여주고 자세히 설명하여 재미있다.

 

<네델란드의 속담>은 마치 이 세상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듯 하다. 120가지가 넘는 속담과 격언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 <12가지 속담 그림>에는 붉은 둥근 원에 한 사람씩 그려(지름 21cm) 12 개의 속담 장면을 보여준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그림은 사육제는 흥청망청 방탕한 삶을 뜻하고 사순절은 검소하고 절제있는 삶을 뜻한다. 탐욕과 절제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모습이다. 브뢰겔은 이 마음의 갈등을 현실의 도시풍경에 섞여 그렸다.

<어린이들의 놀이>는 어린이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던 당시 230명의 어린이들을 그림 속 놀이 등에 자유롭게그려 넣었다. 브뢰겔의 '놀이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그림이다. 참 마음이 따스한 화가이다.

 

<네델란드의 속담 1559년. 117×163cm>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1559년. 118×164.5cm>

 

<어린이들의 놀이 1560년. 116×161cm>

 

3장. 올바르게 사는 방법

 

<성난 그리트> 그림에는 많은 괴물들과 평범한 비쩍 마른 키다리 아줌마 그리트가 등장한다. 그녀는 네델란드의 생활력 강한 아내들을 대변한다. <죽음의 승리>에는 지옥의 풍경이 묘사되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은 고대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 제8권에 실린 이야기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렸다. 태양의 열기에 날개가 녹아서 바다에 빠져 죽는 이카로스는 신성과 겨루다 형벌을 받는다. 이것은 예술적 순교를 의미하고 가치있는 도전이었고 한다. <눈밭의 사냥꾼>, <건초수학>, <밀베기>, <방목지의 소떼를 축사에 몰아넣기>, <어두운 날>은 제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연작들이라고 한다.

달력그림의 전통은 고대에서 중세로전해지고 다시 근대의 유럽으로 넘어와 브뢰겔도 12개의 달력그림을 남겼다. 달마다 농사짓기나 생활상의 특징을 담아 그렸다. 그 당시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카로스의 추억 1565년. 73.5×112cm>

 

<눈밭의 사냥꾼 1565년. 117×162cm>

 

<건초 수확 1565. 114×158cm>

 

<밀베기  1565년. 118×160cm >

 

4장. 게으름뱅이 천국의 바보들

 

농부의 아들이었던 브뢰겔은 친구와 함께 시골 사람들의 생활모습 구경하는 것을 즐겨 찾아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 모습들을 그렸다. 농가의 결혼식 피로연의 장면을 담고있는 <농가의 결혼식>, <결혼식 무도회> 그림에는 순박한 사람들의 활기차고 행복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화가이다. 자세히 보면 재미있게 그린 인물들의 옷을 보고 '우스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자들 다리 사이의 샅주머니는 일명 홍두깨주머니로 용맹과 담력을 상징했다. 전쟁의 참화가 나라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가의 결혼식  1567년. 114×163cm> 

 

<결혼식 무도회  1566년. 119.3×157.5cm>

 

<키르메스 축제 1610년. 114×164cm>

 

에스파냐에 유린된 네델란드의 절망을 반어법을 이용해 그린 <게으름뱅이들의천국>에는 학자, 농사꾼, 군인이 무력감에 빠져 뒹굴고 있다. 화가는 나라가 처한 위험을 경고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또 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비유 이야기를 그린 <맹인의 우화>는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와 중요함을 알리며 무지를 깨우치기를 바라는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쟁과 질병으로 거리에 내몰린 불구자들을 그린 <앉은뱅이 거지들>에는 성직자, 투구를 쓴 기사, 털모자를 쓴 농부, 귀족을 모자로 신분을 표현하였다. 1560년, 유례없는 심한 가뭄까지 들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번영했던 네델란드는 기울어져 가고 극심한 종교분쟁으로 나라가 갈라져 북쪽은 폴란드로 불리게 되었다. 1648년에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분쟁이 종식되었디.

 

<개으름뱅이들의 천국 1567년. 52×78cm>

 

<맹인의 우화 1568년. 86×156cm>

 

<앉은뱅이 거지들 1568년. 18×21.5cm>

 

1525년에 태어난 브뢰겔은 네델란드가 에스파냐의 탄압과 압제에 신음하는 것을 보며 1569년에 숨을 거두었다.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숨졌는지는 책에 언급되지 않는다. 아내 마이젠과 결혼하여 4살, 2살의 자식을 남기고 6년만에 떠닜는데, 우리 나이로 45살밖에 되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 아내에게 자신이 그린 모든 그림을 태우라고 유언하였다. 불안한 시기에 가족들에게 해가 될까 염려했던 것 같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화가가 되고 손주까지 화가가 되어 네델란드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의 가문을 이루었다. 첫째 아들은 지옥그림에 능숙했고 둘째아들은 꽃을 그리는 솜씨가 빼어났다. 그린 꽃에 곤충들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베들레헴의 영아 학살 1565년. 109×154.9cm>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년. 115.5×164.5cm>

 

브뢰겔은 성서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빗대어 표현했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수북하게 내린 네델란드의 브라만트 주를 배경으로 그린 것이다.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린 화가의 모든 그림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화풍이 바로 이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그림을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하여 교육적으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