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한국 대표 수필 문학 전집 5

나무^^ 2023. 8. 26. 13:10

 

 

* 소설가 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에서 '신비없는 생활은 자살을 의미한다.  환상없이 사람이 순시라도 살 수있을까. 환상이 위대할수록 생활도 위대할 것이니 그것이 없으면서도 찹찹하게 살아가는 꼴이란 용감한 것이 아니요, 추잡하고 측은한 것이다. 환상이 빈궁할 때 생활에 변조가 오고 감상이 스며드는 듯하다. 청포도가 푸른 것이요 익어도 청포도에 지나지는 못한다. 시렁 아래 흔하게도 달린 송이를 나는 거들떠볼 것이 없는 것이요, 그보다는 차라리 지난날의 포도의 기억을 마음 속에 되풀이하는 편이 한층 생색있다.' 며 성북동 포도원에서의 추억을 회상한다. 지금 사람들의 환상은 금전에만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 만큼 풍요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곤궁함을 많이 느끼게 하는 글이다.

<전원교향악의 밤> 은 이역만리 제야의 밤 홀로 지드의 소설을 읽으며 '유쾌한 신경의 흥분과 마음의 도취 뿐이다.' 라고 감동한다. 베에토벤의 교향곡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소설의 감흥을 당할 수 없었다며 음악 이상의 아름다운 교향악이라고 말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그 외 <인물이 있는 가을 풍경>, <樂浪 茶房記>, <수상록>, <화초>, <녹음의 향기>, <四溫肆想>, <이성간의 우정>, <첫고료>, <호텔 부근>, <南窓迎陽>, <낙엽을 태우면서> 모두 수작이다.

 

시인 신석정의 <전원으로 내려오십시오>에서는 오염되고 자연이 파괴되는 서울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벗에게 자신이 사는 전주로 내려오길 권하는 글이다. 개발이란 파괴를 딛고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잘 사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에서 옛자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고궁 정도이여서 아쉽다. 그 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동문서답>, <정년의 눈물>, <여름 서간>, <배신에 대하여>, <버리고 싶은 유산>에서 작가의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가 함대훈의 <송전해수욕장의 그리운 파도소리>에서 '바다는 항상 두 가지 커어다란 결정(潔情)을 내 가슴에 일으켜준다. 그 하나는 끝없는 애수, 또 하나는 힘찬 용기. 그러나 우리는 수평선이 하늘 끝까지 닿은 바닷가에서 흰 돛단배, 나는 물새, 고요한 안개에 알지 못할 정막과 애수를 느끼는 힘이 더 큰 것이다.' 라고 말한다. 원래 해변근처에서 나서 자란 작가와 달리 스무살이 되어서야 처음 바다를 본 나는 그 감격이 대단했다. 더구나 해돋이를 보면서 느낀 경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여행하면서 수 차례 보는 바다에서 느끼는 감상은 무한한 정막과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수영을 배우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폭풍우 칠 때 바다는 정말 무섭다. 언제듯 그렇게 변할 수 있는 자연은 두려운 대상이기에 충분하다. 

 

소설가 강경애의 <나의 유년시절>에서 이웃 동무에게 호되게 당하고 살구나무 위로 올라가 어머니가 돌아오실 길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서 심술난 동무가 나무를 뒤흔들어 눈 날리듯 꽃잎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봄을 회상하며...

나 역시 봄이면 벚꽃잎 날리는 동네길을 걸으며 정취에 젖는다. 그 외 <꽃송이같은 첫눈>, <간도를 등지면서>, <장적우선생에게> 모두 좋은 글이다.

 

소설가 김유정의 <병마와 싸우면서> 글에는 꺼져가는 병든 몸을 추스리기 위해 절박하게 돈을 마련하고자 동무에게 번역할 대중소설 두어 편을 보내라는 부탁을 한다. 학창시절 그의 소설을 읽고 배운 나로서는 작가의 가난과 병고에 가슴이 먹먹해질 따름이다.

<내가 그리는 新綠鄕(신록향)>을 읽으면 강원도 산골 정다운 마을에서 나고 자란, 향기 짙은 그의 서정성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것이 5월경 산골의 생활이다. 산 한중턱에 번듯이 누워 마을의 이런 생활을 내려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지(理智)없는 무식한 생활이다마는 좀 더 유심히 관찰한다면 이지없는 생활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을 만한 그런 순결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도회지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편리함을 이러한 순결함과 바꾸고 포악한 인간들이 점점 더 생겨난다. <밤이 조금만 짧았더면>에서 사찰에서 보내는 길고 긴 밤, 잠을 이루지 못해 눈물 짓는 자신을 나무라며 쓴 말 '창두적각'이 노비를 뜻하는 것임을 알았다. 폐결액에 치루까지 앓으며 고생하는 작가의 심신을 표현한 글이다.  

<길>, <전차가 비극을 낳아>, <네가 봄이련가>, <강원도 여성> 모두 좋은 글들이었다.  

 

소설가 이무영의 <조국에 바치는 글>에서는 유럽을 여행하며 느끼는 금수강산 삼천리 '어디를 파서나 생수를 꿀꺽 먹을 수 있는 행복을 타고난 백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우리 나라가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사먹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작가는 더 살기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실천을 통한 교육을 우선 꼽으며 도의를 통한 민주주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불과 몇십년이 안 지나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려 자살을 하는 교사가 생겨나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 대학입시에 치중하는 경쟁교육은 도의를 모르는 학생과 학부모를 생산하고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낙엽과 문학>에서는 문학이 애상의, 조락하는 가을이 아니라 일체의 기성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주관을 문학으로 창조하길 바란다. 

 

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백석의 <나의 문단교우록>에서 국내 문단활동 이전에 일본에서 활동했던 문단의 이야기와 1931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만난 회월 박영희, 팔봉 김기진, 다영 안경주와 사회주의자 임화, 특히 프로문학파 남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월북 무용가 최승희와 남편 안한, <자유부인>으로 일약 스타가 된 비석, 소설가 계용묵과 어울렸던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문학과 정치는 너무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작가의 말이 이해되지만 지식인의 양심으로서 그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이설단의 <작약도>에는 산을 즐기는 작가가 다 늙은 동창들과 작약도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어 '몽땅 벗겨진 머리에서 한숨같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는 모양을 보고 시를 한 수 짓는다. '비틀거리는 다리를 고우고/ 섬섬 눈을 부비며/ 육교위에 서면// 밤 그늘에 숨어/ 하얀꽃이 잠을 자고// 개짖는 소리에 쫓긴/ 뒷골목을/ 하얀 밤이 걸어온다.'

<부엌>, <고구마>, <덕수궁>은 짧은 글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아호수난>, <곡구장군>, <산놀>도 재미있다.

 

국어학자이자 수필가 숭녕의 <부부등산>, <축령산>, <이상한 풍토>에는 등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사하는 작가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노인병>에서는 노인의 병폐를 이야기하며 '내가 뜻하는 길을 잡념없이 걸어갈 뿐'이라며 초연한 자세를 지니고자 한다. <단상의 장>에서는 '청백리 사상'을 논하고, '휴일의 결혼'이 야기하는 아쉬움을 말한다. '비겁자와 애국자', '불취동성'에서는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 또 '서산대사의 경구'에는 종교인들이 서산대사가 지은 <선가귀감> 책 보기를 권한다. '미국 시민권'에서 진정한 한국인의 위상을 말하고 '차중의 노래자랑'에서 그  위험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버스와 흡연', '여성의 옷차림'에서 선진국가의 면모를 들며 고치기를 원한다. 마음에 와닿는 좋은 글들이다.

 

자연과학자 권영대의 <향교골>은 어린시절 뛰어놀던, 공자의 위패를 모신 명당의 추억을 세세하게 표현한 글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유년에의 그리움에 공감한다. <벼룩의 노래>에서는 이발소에서 나오며 '샬리아핀'이 부른 '벼룩의 노래'를 만족스럽게 불렀는데, 그만단독(丹毒)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나는 몰랐던 러시아 오페라 가수 '샬리아핀'에 대해 찾아보았다. <하직인사>에서는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마지막 의연한 유언을 소개했다. 잘 사는 일 못지 않게 잘 죽는 일이 중요하다. <낙엽에 부쳐서>는 진중한 삶의 의미를 말한다. 

 

시인이자 교육자인 유치환의 <하늘은 어둡고 지상은 청색>에서는 곳곳에 세워지는 교회당을 지적하며 '종교에 따르는 영생이라든지 내세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아름다운 상징일 뿐, 그것을 글자 그대로 맹신함은 인간이 무지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일 때에 한한 일일 것이다.'고 말한다. 나 역시 종교의 자유가 도가 지나치게 범람하는 것을 애석하게 느낀다. <인간의 우울과 희망>에서는 '밖으로 향하여 보게만 마련인 그의 눈을 반대족으로 돌려 자신의 내부와 자신에게 속한 일을 살피고 생각하고 뉘우칠 줄을 알고... 이 인간의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얼마나 갸륵하고도 한편 죄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신은 신 자신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희·노··락의 양상과 문제는, 오직 인간 자신의 책임 속에서 빚어지는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의 재량에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손으로써만 해결될 것이니, 이 일은 끝내 인간의 고독한 영광이며 죄스러운 희망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인간들은 자신 외의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고자 하는 믿음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며 무지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는 신의 실체와 인간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자각만이 고독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외 <자연과 인간>, <작약은 슬프다>, <哀而 不傷>,<계절의 단상-신에게> 모두 주옥같이 좋은 글이며 동감한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윤태림의 <덕적도>에는 작가가 꿈꾸는 무릉도원이 지금은 그림의 떡일지라도, 그 공상의 계획 덕에 지금 무더위와 장마도 힘든 줄 모르고 견디고 있다 한다. 꿈이란 그런 희망인 거다. <불영사> 글에는 절의 내력과 그곳에서 본 맑은 비구니의 인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송편>, <여성의 해>, <아내는 손위>도 재미있게 읽었다. <오늘을 사는 지헤>에서는 柔가 剛을 극복하는 지혜를 고사성어에서 예로 들어 알려준다. <심판>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였으나 심판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아 선생을 하였으며 인간의 풍성함은 동물의 생명도 아껴야함을 말한다. <歲暮>에서는 작가의 소소한 바램을 드러낸다. 학문의 깊이가 깊은 만큼 일상생활 면면의 하찮은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이해된다.

 

소설가 김정한의 <남색 스웨터>에서는 책에 관심있는 한 부인을 멀리서 바라보며 아버지로서 딸의 장래를 빌어본다. <콩나물통을 인 소녀>는고생하는 어린 소녀의 애달픔을 표현했다. <두나엄마 ?>는 식민지 시절이 끝나지 않았던 궁핍한 때 어린 딸의 순진함이 짠하게 느껴진다. <산정을 지키는 소>에서는 '무언의 저항같은 굳센 의지와 경우에 따라서는 비호처럼 산비탈을 내닫는 그 행동에의 용기'를 그렸다. <녹두미음>, <토끼를 먹은 이야기>도 재미있다. <시바지의 노래>는 인도 마라타족의 영웅 '시바지'에 관한 노래를 소개하며 동학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의 무덤이 없는 것을 애석해 한다. 김옥균의 무덤이야기도 하면서 민족의 부끄러움을 논한다. <산은 말한다>에서는 '길을 보면 그 나라의 문명 정도를 알 수 있고, 산을 보면 그 나라의 빈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해방 후 산과 시민이 겪은 수난을 이야기한다. <목석의 대변인>에서는 일본인들이 오백년 묵은 노송이 도로공사에 베이지 않게 하려고 오년간이나 싸운 예를 들면서 우리의 무분별하게 제거한 노목들을 애석해 한다.

 

국악학자 이혜구의 <학자와 그 아내>에서는 귀여운 딸을 학자에게 줄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한다. <앙케트>에서는 모순 어린 선택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가방의 환상>은 작가의 책가방인 보스턴백에 어린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시간의 세분화>에서는 시간의 극단적 세분화와 노동의 분업으로 야기되는 인간성 상실의 폐단을 아쉬워한다. <나의 서재>에서는 버리지 못하는 책들의 애정을, <가야금 명인 심상건>에서는 일자무식 그가  '음악의 맛은 죄고 푸는 맛이라고 음악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에 놀란다.  <possible과 probable>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실제 예를 들어 설명한다. <知鑑>에서는 훌륭한 사위를 알아본 노재상과 진정한 예술가를 알아본 슈우만을 예로 들어 비평가의 지감을 기대한다. <무용예찬>에서는 서양 발레와 '花間蝶舞는 紛紛雪', 한국의 呈才춤 등을 들어 춤의 멋을 피력한다. 특히 춘앵전 독무와 '빈사의 백조'에 경탄한다.

 

고고학자 김재원의 <청자빛 하늘>에서는 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본 작가로서 우리 나라의 좋은 기후와 가을 하늘의 푸르른 맑음을 고려청자와 함께 찬탄한다. <개구리에 대한 향수>에서는 어린시절 했던 많이 했던 개구리해부와 함께 진한 향수를 이야기한다. <벼룩의 서커스>는 유럽에서 유명했는데, 독일에서 무용복까지 입혀 구경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재이있다. <내 나름의 여행설계>는 작가가 은퇴후 고생한 처와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아직은 지구보다 아름다운 위성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아름다운 지구라도 곳곳을 돌아보고 싶은 심정에 공감한다.

 

시인 모윤숙 의 <空超의 인간성> 에는 '그의 인간 그대로가 시요 종교가 아닌가 한다... 겸허하고 공손하게 묵묵히 자기의 그림자와 벗하여 70평생을 조용히 사신 분... 공초의 시는 그리하여 가다듬은 시가 아니요, 언어를 넘어선 혼의 소리요, 울음이요, 탄식이었다. 자기 개인의 소리나 울음이나 탄식이 아니라, 허무한 삶과 죽음을 읊조린 모든 인생을 위한 시였다...' 라며 시인 공초를 회상한다. 나는 오상순, 그의  시를 찾아 읽으며 그의 空한 세계를 음미해 보았다. 그 외 <흙의 웃음>, <장독대>, <그날 밤의 네루수상>, <절망하지 않았다>, <행복의 얼굴>, <레이즈여사>, <명사십리>, <어느 날의 일기> 감성적인 글들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가이자 영문학자인 조용만의 <겨울의 판문점>에서는 보초서는 북한군들의 궁핍한 심신과 비무장지대의 분단 상황을 슬프게 보여준다. <孟峴언덕길> 글에는 여러 가지를 살피어 가회동 꼭대기 맹현 언덕에 집을 마련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대장안(서울 시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책길을 꼽는다. 나 역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早春雜記>에서 '무뢰춘색도강정'에는 한 많은 죽은 목숨들, 봄이 오려면 먼 현실을 아랑곳 않고 찾아온 강물에 어리는 봄을 그리며 안타까워 한다. 또 서울에 돌아와서는 화사한 꽃이 만발한 가운데 봄을 즐기던 '동래의 춘광'을 그리워 한다. 우리는 고단한 삶과 상관없이 어김없이 찾아드는 계절의 변화무쌍한 모습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사학자 이홍식의 <고서문답>, <문간방 서재의 비극>에는 궁핍한 학자의 살림살이가 드러난다. <대천과 샘터>, <새벽 전차> 역시 가난한 농촌과 도시의 실상을 보여준다. <바이올린>은 어려운 집안에서 성장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애잔함을,  <상품>에서는 세심하지 못한 교육계의 부실함을 이야기한다. <넥타이>는 학자들의 허름한 복장을 고사를 들어 재미있게 표현했다. <삼일운동과 나>는 열한살때 본 삼일운동의 감격을 최린 교장을 상기하며 그렸다. <바다에의 향수>, <제야의 종>, <신문소설>, <시험의 계절>, <학자·학문·신념> 글을 공감하며 잘 읽었다.

 

시인이자 언론인 신석초의 <紅梅樓記>, <思梅花記>는 매화 사랑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매화꽃의 아취가 느껴진다.  <식도락>에는 병상에서 먹었던 잣죽에 대한 회상이, <竹洞宮의 연못>은 다방에서 보이는 죽동궁 민씨의 연못을 소상히 표현하였다. <안동의 산하> 글에는 낙동강 연안에 세워진 이육사 시비, 도산서당 등을 살피며 안동의 아름다운 감회를 이야기한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서는 '시경 가르치던 국담선생'의 훌륭함과 '두 분의 노할머님'의 고결하신 매력을, <잔느 시게노부인>의 지혜로움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위당 정연보 선생>에서는 맹자를 언급하시던 선생의 기지에 찬 언행을 기억한다.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의 좋은 됨됨이와 함께 그리움을 토로한다. 모두 흥미로운 글이었다. 

 

수필가이자 소설가 한묵구의 <들 밖에 벼 향기 드높을 때> 글에서 '두 쪽의 가슴을 앞으로 내어밀며, 두 콧구멍으로 아침의 새맑은 공기를 힘껏 마시어본다. 그것은 공기가 아니고 내음새다. 새맑고, 달콤하고,향긋한 내음이다. 젖내가 나는 어린애의 봄과 같고, 서리 속에 갓 피어난 노오란 국화의 얼굴과 같고, 알알이 맺혀서 늘어진 벼이삭과 같다.'고 예찬한다. <낙엽과의 대화>, <진달래>, <흙> 글에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이야기에 섞어 감성적으로 표현하였다. <노년을 우러러보며> 글에는 아주 오래된 노목들을 예로 들며 인간의 한계를 인식한다. <코스모스>, <봄이 오면>, <한여름 대낮의 움직임과 고요> 또한 자연을 노래하며 인생의 향수를 진하게 표현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좋은 글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소설가 김송의 <코오피 戱談>은 코오피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저런 코오피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중독성이 있는 게 확실하다. <돈의 요정> 글에는 여러 작품에서 다룬 돈에 관한 이야기와 흔히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부부간의 갈등 등 돈의 위력에 관한 이야기가 씁쓸하게 그려진다. <자연보존>에는 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고목과 그것을 보존하는 외국의 포장도로를 견주며 변해버린 예전의 박석고개, 구파발 등을 그리워하는 균형잡힌 번영을 아쉬워 한다. <春舞序曲>에서는 춘분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빈곤한 집이 추워 친구를 묵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다. '춘무서곡-인간은 역시 地心에서 율동하는 생명을 발견하는때에 진정한 환희를 느끼는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무거운 멍에를 벗어던지고 꽃피고 새소리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서, 지축을 흔드는 대자연의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싶다.' 고 말한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의 <長壽> 글은 수십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의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유하고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이다. '여름이면 모시, 겨울이면 옥양목, 그의 생활은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왔다.' 그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되지 않은 30대에 돌아가셨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엄마같은 아내 얻기를 소원했고 딸이 엄마같은 여성이 되길 바란다. 이글을 읽으며 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좋은 엄마이지 못해 슬펐다. <토요일>, <서영이 대학에 가다>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도산>은 작가에게 높은 인격을 보여준 분으로 추모한다. <잠>에서는 잠의 효능과 함께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잠을 잘 자야만 삶이 행복하다. <인연>은 작가가 동경에 있을 때 만난 어린 아사코, 몇년이 지나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시 만났을 때는 유부녀가 된 그녀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세 번 밖에 만나지 않은 그녀를 그리워한 마음이 드러난다. 인연이란 몇 번 만나지 않았어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낙서>에는 자신의 외모에 관한 일화들이 재미있다. <수필>에서 흥미는 주지만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는 마음의 산책이며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다는 문장에 공감한다. <봄>, <오월>, <종달새>, <모시>, <플루트 플레이어>, <술>, <송년> 글 모두 일상의 향취가 묻어나는 좋은 글들이다.

 

소설가 김광주의 글 <고국의 봄>은 해방의 기쁨이 무색하게도 헐벗고 굶주리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이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글이다. <春宵無題想>은 강남의 봄밤 용화의 벌판에서 느낄 수 있는 풍치를 그리워하는 글이다. <春雨頌> 에서는 몸서리쳐지는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봄비를 보는 심정을 노래하였다. <短想錄>은 붓가는 대로 세상의 부귀영화의 부질없음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새로운 것>에서는 성장을 위한 진화의 참의미를 설한다. <官에 나가신 선배에게>는 정치에 입문한 선베에게 드리는 간곡한 바램을 표현하였다. <여름창에 기대어>는 세속의 혼탁한 세상사를 장마비가 모두 씻어내길 바라며 들창을 통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어려웠던 혼란의 시대, 생각하며 사는 작가들의 비통함을 느낄 수 있다. <양자강으로 부치는 편지>는 젊은 시절 전쟁으로 헤어지게 된 연인을 생각하며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는 작가의 애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언제가는 찾아보고 싶은 양자강 물줄기에서의 흔적이 있는 추억, 구차한 삶의  위안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