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지은이 정호승 · 안도현 · 장석남 · 하응백
출판사 공감의 기쁨
잠자리 머리맡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 조금씩 읽었던 책이다.
<정호승.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상이 좋은 정호승님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섬진강을 잊지 못하고 추억한다. 나는 삼십대에 남편과 섬진강에 놀러가 국물이 뽀얀 재첩국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 산행을 하며 추억을 쌓았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보았다. 또 지은이처럼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꼽으며 즐거워 했다. 눈사람이 햇볕 대신 자동차에 치여 죽는 21세기에는 AI 인간을 만든다. 아직은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작가는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역을 회상한다.
'기차역은 늘 그리움의 장소다./ 삶의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은 곳이다./어쩌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각자 거쳐야 할 역을 거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른 거쳐야 할 수많은 역을 지나며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말없이 새벽에 일어나 손자가 자는 방에 군불을 지피는' 외할머니를 회상하면서는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말한다. 자기의 몸을 모두 자식에게 내어주고 일생을 마치는 거미처럼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베푼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 길러보아야 비로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인간이 될 수 있 수 있다.
나는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식을 낳지 않는 젊은이들에게서 삶의 중요한 의미를 경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안도현 시인의 <고래를 기다리며> 시를 인용하여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중학교 때 처음 본 포항 앞 바다의 경이로움을 말한다. '그 이후 나는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한 마리 고래가 되어 바닷속을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작가와 달리 나는 대학 때 동해바다를 처음 보고 그 놀라움이 얼마나 컸던지 작가의 글에 완전 공감했다.하지만 수영을 못해서인지 여행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거대한 바다는 볼 때마다 두렵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내 시속에서 집을 짓는다> 글에서는 죽마고우 이동순님의 <시흥 김씨 내간> 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가난한 부뚜막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낡은 시작노트를 잊지 못한다.' 소월류의 시를 수십편씩 꼬박꼬박 쓰셨던 어머니에게서 시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으신 거 같다. '지금은 그 시작노트를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그러나 내가 쓰는 시가 바로 어머니의 시가 아닐까' 말한다.
'시를 써서 가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아직도 내가 그 꿈을 꾸는 것을 보면 가난은 여전히 나의 문학적 힘이자 무기다' 라고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난했던 시절을 산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가 주지 못하는, 심신의 고통으로 세상을 버티며 정신적 힘을 기른다. 살아 남으면 강해지는 거다.
<내고독에 돌을 던져보라>에는 시인 김현승교수의 시집 <절대고독>을 오래 읽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지천명이 지나서 다시금 그의 시를 읽으며 인간의 절대고독을 노래했던 시인을 마주한다.
<살아온 삶의 아픔>에서는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과 그의 민주주의를 위한 갈망으로 흘린 피를 상기한다.
<시인의 마음으로 한세상을>에서는 열정적으로 시를 쓰던 박정만 시인이 간경화로 환시, 환청에 시달리다 사망하고 정읍에그의 시비가 세워진 이야기이다.
<안도현. 그릴 수 없는 마음의 빛깔까지도>
'무제'라는 제목이 붙은 시나 그림을 아주 싫어하는 작가가 그런 편견을 수정하게 해준 시가 박재삼의 <무제>라고 한다. 그의 낡고 오래된 시집 <천년의 바람>을 펼치며, 작가가 시를 끄적거리게 된 건 창문을 흔들며 기차가 지나가고 난 후 적막감 때문이지 아닐까 회상한다.
<이름이 란(蘭)이라는 여자애가 있었다>에서 '연애시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 한 편 읽어주지 않는 사내하고는 다시 만나지 말기를, 그리고 서점 시집 코너 앞에 다리가 저릴 때까지 서 있어본 적이 없는 여자하고는 당장 절교하기를.' 라고 말한다. 아마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참 어려운 일이 것이다. 예전에는 시를 외우고 문학작품을 읽는 청춘들이 참 많았다. 낭만이 있었다. 순수한 마음에 희생되는 사랑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많은 청춘들이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부모가 될 수 있었다.
<달개비 꽃잎 속에는 코끼리가 들어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