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지은이 마틴 캠프
옮긴이 임산
을유 문화사 (2006년)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렸다가 눈에 띄어, 마침 '레오나르도' 해외드라마(이탈리아)를 재미있게 보고 난 뒤라 사서 읽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그는 화가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영향을 끼친 뛰어난 예술가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그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를 그린 그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호기심이 상승하여 이 책을 읽어보았다.
실제로 미술관에 가서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는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서야 그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 그림들의 가치는 훌륭한 그가 그렸기 때문에 500여 년이 넘도록 명화로 남을 수 있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것 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 보며 깊은 성찰을 한 사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체의 세부 기관에 대해서 알기 위해 해부를 여러 번 해보고 그 당시 모르던 많은 사실들을 알아내어 그림을 그리는데 활용하였다.
공학자이기도 한 그는 또한 비행을 꿈꾸au '거대한 새'를 만들어 날리는 실험을 한다. 또한 영주들의 요청에 의해 신무기 제작 등을 하였다.
옮긴이의 말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인 필자의 주된 연구 주제가 '예술과 과학,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자연의 과학적 모델 사이의 관계성'이다. 즉 레오나르도의 작품에 나타난 영속성과 통일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하여 60여 장이 넘는 그림과 연대표, 주석을 덧붙인 '그림, 스케치, 갤러리'를 이 책에 실었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흔적들을 안내하는 간결하고 친절한 대중서'라 할 만 하다. '잠시 시대를 거슬러 지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처럼 즐겁게 레오나르도의 시대·공간 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 보았다.
'경험이 토대가 되지 않은 사색가의 교훈은 허무한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그는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경험주의자였다. 또한 우주적 보편성으로 모든 피조물들의 영혼을 탐구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그의 미지에의 탐구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점을 이루었다.
머리말
'작품에 생략을 가하는 사람들은 지식과 애정에 상처를 가하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은 지식의 소산이며, 지식이 확고할수록 애정은 더욱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확신은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부적인 것들에 대한 철저한 지식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간결함의 찬미는... 진정으로 참을 성이 없는 것이며, 곧 어리석음의 어머니다' 1510년 레오나르도가 한 말로 글이 시작된다. 그의 친필 자료는 소실된 80%를 제외하고도 거의 6,000p가 넘는다고 한다. '나는 레오나르도의 다양성 이면의 편재적 구조들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필자는 말한다.
점점 생략되고 간소화되는 초고속 시대의 현대인에게 있어 그는 그야말로 고고학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로 다른 현상이 보여주는 비례이론과 유비(유추나 비유)는 시각적 설득력을 부여한다. 필자는 '모든 관찰과 소묘는 하나의 분석적 행위였으며, 창조자로서의 인간은 그러한 분석들에 근거하여 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하며 각 장에서 말하고자하는 사실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1. 독특한 경력
1452년 4월 15일 토스카나 언덕의 빈치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서자여서 유년시절을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피렌체의 저명한 법률가로 그를 공방에 다니도록 해주었다. 그는 30여 년을 피렌체 외곽의 궁정에 고용되었으며 다양한 재능에 걸맞는 보수를 받았다. 그의 주요 측근으로 '살라이'라는 인물(도둑질을 잘 하는 악동이지만 충실한 종복)이 그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였으며 유산도 받았다.
레오나르도가 의뢰받은 작품들의 성격과 그에 따른 어려움들을 설명하고 그가 벌어들인 돈의 흔적, 궁정에서의 의무사항이 지니는 특징들, 그의 가정과 공방 등에 대해서 알려준다. 영주들의 각축 사이에서 작품이 완성되지 못하는 과정들을 드라마에서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내용이라 이해하기 쉬웠다. 위대한 예술가가 영주를 '주인'이라 칭하며 보수가 지급되길 바라는 편지들은 그 당시 예술가들의 궁핍한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보수는 현금이나 땅, 저택, 물에 대한 수익권 등으로도 지급되었다. 기마상 동상, 요새 구축, 군사 설비, 연극 공연 세트, 대성당의 십자형 돔 등 다양한 능력을 지닌 그는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용모는 우아하고 매력적이며 세련된 자연스러움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2. 주시(注視)
레오나르도의 제자이자 유산 관리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멜치는 레오나르도의 문서들을 보존하며 <회화론>에서는 그 문서를 삽입하는 등 성실함을 다했으나 그가 죽자 흩어져 버려 그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레오나르도의 저작을 출판, 번역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며 많은 저서들이 편찬되었다.
'그는 자연 현상들을 관찰하여 도출한 증거와 사유 실험의 결과물을 만나는 일 만큼이나 특수 제작된 장치들을 통해 정밀한 실험을 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또한 그 결과를 '실험기록'으로 작성했다. 그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원천은 실제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주시(注視)였다. 그 주시에는 '이해하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글에서 '눈'은 모든 시각적 대상들을 분석하는 주체로서 청각, 촉각, 미각, 후각보다 높은 감각이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에 승리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구성요소들은 유한하지만 눈이 손에게 명령하는 일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 풀, 나무, 공간의 셀 수 없는 많은 형태들을 그리는 화가에 의해 증명된다.'고 공학적 요소에 관해 말했다. 이는 피렌체 미술가들의 전통적인 훈련방법에서 기인하며, 그가 난긴 해부학 연구 기록과 두개골에 대한 스케치와 설명은 정신 심리학 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눈'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혁신적인 관점으로 중세 광학 문헌을 연구하여 여러 가지 개념 정리를 하였다.
그가 스케치하고 설명한 <인간 신체의 기하학적 구성 논증>은 인간의 몸이 '우주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건축과 비례'에서는 힘의 특징을 관성의 원근법을 통해 설명하고 소용돌이 현상에 대한 습작을 통해 자세히 설명함으로 그의 관찰적 사유능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흉내 내기와 그리는 일에의 진정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움직이는 대상을 그리기 좋아한 그는 모든 필연성과 연속적 양에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야기시키는 사실들을 증명해 보여준다.


< 여성 신체의 호흡계, 형관계,비뇨생식계의 혼합 논증>
3. 신체와 기계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영성, 아름다움, 데코룸(예술에서 인물, 행동, 날, 장면 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 등의 기술에 모순을 발견한 레오나르도는 해부를 통한 관찰을 기록으로 남겼다. '몸의 역동성은 생기를 불어넣는 영혼ㅡ동물적 영혼과 생명의 영혼ㅡ을 운반하는 유체들에 의해 조절되었음을 알린다. 그가 공부한 생리학, 의학 저서들에 더하여 인체의 각 세부 기관의 놀라운 형태와 기능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형태와 기능'에서 레오나르도는 자연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음을, <두개골 연작>, <목과 어깨 신경 습작>, <손 조직에 대한 습작> 등을 통해 언어보다 우월한 시각적 표현을 제시한다. 그는 좀더 발전된 인간 해부도를 그려 '자연이 만들어 낸 인체는 눈으로 보이는 신체와 더불어 형태와 비례면에서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한다... 실제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개인의 다양한 겉모습에 숨어있는 이상적인 형상을 추출하려는 의도에서다.' 이런 취지에서 태어난 작품이 <모나 리자>라고 필자는 말한다.
'공학적 요소'로서 자연의 활동 기반위에 새로운 창조를 더하고자 탐구하고 노력하며 여러 가지 유용한 아이템들의 디자이너로 활약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석궁, 우첼로(거대한 새) 등이다. 드라마에서는 그가 우첼로를 만들어 실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 자궁과 태반 안에 있는 태아, 역학과 광학 습작>

4. 생명의 지구
레오나르도는 '인체는 우주를 비추는 하나의 소우주이거나 더 큰 세계임을 기본개념으로 밝혔다.' 그는 라틴어에 능숙하지 못해 고대 학술서적들을 두루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시각적 사유와 도해 기술 능력으로 탁월한 직관을 통해 분석하고 변형할 수 있었다. 1,500년 베네치아 공국에 고용되어 물을 잘 다루는 '장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소묘가 첨부된 그의 노트와 남아있는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지구 생명의 매커니즘을 자연적 과정들이 자연의 모든 구성요소들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연속적인 흐름으로 보았다. 즉 모든 원소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속성이 있어 그것들은 평형 위치 쪽으로 움직이며 그 구성 속에서 흙, 물, 공기, 불의 영역들은 중심 구역에 자리잡는다는 사실이다.
<모나 리자> 작품의 배경을 재구성한 그의 고심은 지구의 몸에 대한 이론과 실제에 깊이 빠져들었던 시기에 표현되었다.
그는 지하수로들을 물의 정맥이라 생각하여 그의 후기 사상 속에 역동적인 그림들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지구와 인간의 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필자는 그의 한계를 '그는 이론이 실제 현실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상상력과 솔직함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대홍수'에서 레오나르도는 <대홍수 소묘> 연작을 그리고 설명함으로 증거를 제시하며 성서의 주장이 불일치함을 주장한다. 그의 역동적인 지구의 변화를 설명하는 글의 비범함이 놀랍다.

< 붕괴하는 산 아래 황페한 마을에서 일어난 홍수 >
5. 작품 이야기
레오나르도는 그의 노트에서 매우 다양한 문학 작문 기술들을 사용하였다. 그가 소장했던 많은 책들은 그의 소묘 능력에과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판타시아에 부여한 이상은 모든 자연 사물들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토대로 위대한 진리를 전하는 것이었다'고 필자는 말한다. 그럼으로 그의 작품이 존재하게 된 과정, 미완성된 작품일 경우 하나의 결론에 이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을 조명하고자 한다. 그의 '브레인스토밍' 글을 소개하며 상상적 투사와 회화적 기법들을 설명한다. 행복한 분위기의 <브누아의 성모>와 긴장감이 느껴지는 <방직기의 성모>를 대조하여 언급한다. 미완성작인 <동방박사들의 경배>의 복합성과 기본원칙에 충실했던 <수태고지>, <최후의 만찬>에서의 원근법 구도와 음악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효과를 원했고 그는 예술적 기교로서 그 의도를 실현할 수 있었다. '좋은 화가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그린다. 하나는 인간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가진 생각이다. 처음 것은 쉬운 반면 두번째 것은 제스처와 팔다리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므로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벙어리에게서 배울 수 있다. 벙어리는 누구보다도 제스처에 뛰어나다...'라고 말하는 그의 세심한 관찰력에서 비롯한 예술적 기교들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성 야고보의 머리>, <앙기아리 전투>, <최후의 만찬> 에 나오는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시대적 상황들을 자세히 언급하였다. 또한 '소멸 원근법', '색채 원근법'으로 사물들이 눈에서 멀어질 때 나타나는 효과들을 공식화하여 빛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오늘날 '대기 원근법'으로 통일된 용어이다. 매혹적인 스푸마토(번진 자국들이 모호하게 윤곽선을 그리는 안개 효과), 입체성을 부여하고 그것들을 배경으로부터 떨어뜨리는 속임수 렐리에보(일종의 3차원적 환영) 효과를 사용하였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의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벽화의 시점이 다른 그림보다 높게 설정되었다. 이 작품은 영주 루도비코 스포르치의 의뢰로 그렸으며 그의 가문을 위한 영묘로 사용하려던 장소였다. 그러나 참정권을 가지게 된 시민들의 집회장소로 이용되면서 공적 감상의 기능을 지니게 되었다. 그 외에 미완성 작 <앙기아리 전투>를 포기하고 밀라노로 가면서 프랑스인에게 받은 보수에 대해 자조하는 글도 남겼다. 루도비코의 아내였던 세련된 부인 체칠리아 갈레라의 초상화는 주인공, 감상자, 보이지 않는 또 한 사람과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모나 리자>는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작품으로 특별하다. 리자는 유서 깊은 가문의 출신으로 두 아들을 둔 부인이었다. 그녀의 미소와 전체 구성은 비범하다. 필자는 그림 속 풍경에 대한 설명을 환타지적으로 묘사했다.

<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 >
6. 리자의 방, 레오나르도의 사후
토스카나 지방의 지주 계급으로 자리잡은 게라르마니 가문은 점차 예전의 권위를 회복하였고 그가 그린 작품 속 풍경의 실제는 찾을 수 없었다. 여러 학자들의 추측과 비교에 의할 뿐 신비로움으로 남아 루브르 박물관 안 특수 설계된 방 강화유리의 투박한 박스에 갇히게 되었다. 레오나르도가 스스로 선택한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아 그의 종복 살라이가 지니고 있던 작품들이 소개된다.
레오나르도의 제자 프란체스카 멜치가 여기저기 남은 레오나르도의 노트들을 모아 이탤릭체로 옮긴 <회화론>이 가장 널리 알려진 수기이다. 푸생과 루벤스는 그들의 취향대로 레오나르도를 분석하고 응용했다. 레오나르도가 사망한 이후 전문 문필가들의 언어를 통해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주요한 참고 문헌으로 멜치와도 친했던 조르조 바사리의 <가장 저명한 화가들, 조각가들, 건축가들의 생애>가 전해지고, 또 <생애> 글에서 레오나르도의 천재성과 창의성, 인내력 등을 격찬하고 있다. 특히 <모나 리자>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조목조목 표현하며 뛰어난 장인들이 자신감을 잃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레오나르도의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완성도에 역부족으로 작용했음을 지적했다.
1817년 괴테가 <최후의 만찬> 벽화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하면서 저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을 남겼다. 그는 '당신의 마음 속에 근엄함과 흐트러지지 않는 평온함을 그려보라. 그럴 때 당신은 작품에 힘찬 움직임과 활기찬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것을 가능한 한 자연에 가깝게 만들며, 동시에 그것을 둘러싼 현실 장면들과 대조시킬 줄 아는 한 에술가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는 희극 작가로서 독특하게 '위대한 사건을 의미하는 허구'를 파고든다.
월타 페이터는 <모나 리자>의 보편성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레오나르도의 사고 속에 탄생한 여인과 살아있는 도시 피렌체의 관계성, 이 이상한 관계에 생겨난 꿈과 이 여인이 별개의 인물로 성장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근대의 철학의 모든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들에 의해 유지되는, 그 자체내에 축적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리자라는 여인은 오래된 공상의 화신으로 근대적 관념의 상징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 외에 여러 유명인들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작들>, <예술가이자 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와 그의 철학> 등 책들을 펴낸다. 필자는 수많은 낭설과 추측이 난무하는 예술 비평들을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이 책에는 그의 그림 24점이 설명과 함께 또렷한 흑백 사진으로 나와 있고 상세한 연보 또한 그의 생애를 낱낱이 알려준다. 책을 산 보람이 있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국 드라마 <레오나르도>는 사실에 근거하여 잘 만든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