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이상 출판 범우문고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2017년 5판 1쇄의 문고판을 반가운 마음으로 사 읽었다.
이상 작가의 글이 모두 난해한 것은 아니어서 이 책의 짧은 글들은 재미있었다. 작가의 문장표현력이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서두에 쓴 李箱論(이상론)은, 그의 생애와 그의 수필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생애는 하나의 드라마요, 난해시며, 방황하는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니 수필 <倦怠(권태)>의 연속이요, ’김유정‘적인 방관자였다’ 라고 축약했다. 그의 수필의 특징은 이러하다.
첫째, 너무 실용적이며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씌어진 글이라서 놀라게 되는데, 그 예로 <예의>, <骨董癖(골동벽)>, <보험 없는 화재>, <도회의 인심>을 들어 설명했다.
'도회의 인심' 글에서는 상하이 청소부의 행위, 나고야의 쪽방 실태를 들어 각박한 도시 인심을 한탄하고, '골동벽'에서는 골동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언급하며 위조 골동품의 일화를 들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둘째, 낙천적이며 솔직담백하다. 생의 환희를 풍자적으로 쓴 <此生輪廻(차생윤회)>에서는 작가의 예리한 자기비판을 느낄 수 있다.
셋째, 한국적 체취가 밴, 보수적이며 전통미를 존중하는 면이 있다. <斷脂(단지)한 처녀>, <貞操(정조)>, <비밀>, <이유>, <악덕> 등이 아포리즘의 글이라고 하였다.
(*아포리즘이란 신조나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넷째, 그의 문학적 경향 중 가장 고귀한 것으로 민족의식 내지 현실비판적 요소가 빛난다. 형무소를 견학한 경험을 쓴 <求景(구경)>, 관광객 유치에 대한 <실수>를 들어 설명했다.
이상은 수필, 기행문, 일기체, 편지, 평론 등 모든 산문의 형식을 동원하여 글을 썼다. 그 외에도 그의 생활관을 엿볼 수 있는 <藥水(약수)>, 교우관계를 보여주는 <김유정>, 가정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妹像(매상)>을 예로 들었다.
큰 제목 '십구세기식'에는 <정조>, <비밀>, <이유>, <악덕> 글을 통하여 작가의 괴롭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권태>에서는 작가의 일상에서 바둑을 두며 느끼는 권태로운 '인간이욕'을, 농사꾼을 보며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자조감과, 소의 되새김질을 보며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앞에 누워 애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본다.' 또 자신의 무능함에 절규하며 죽음을 향해가는 작가에게 마음 아픈 연민을 느끼게 한다.
'공포의 기록(抄)'의 <불행한 계승>, <불행의 실천>에서 작가는 여위워가는 심신을 적나라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하였다.
'김유정-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에서는 김기림, 박태원,정지용, 김유정의 특징을 묘사하고, 한 비평가에게 작가의 소설이 59점을 맞은 것을 낙담하며 네 분이 잘 말해 급제를 시켜달라고 하여 실소를 자아낸다.
<西望栗島(서망율도)>에 나오는 독특한 시이다.
'鄕邦의 風土는/ 毛髮 같아/ 건드리면/ 새빨개진다.' // 그리고 나서는,// '血族이 저무도록/ 내 아픈 데 가 닿아서/ 부드러운 구두 속에서도/ 일마다 아리다' // 밤섬이 싹을 틔우려나보다. 걸핏하면 뺨 얻어맞는 눈에 강 건너 일판이 그냥 노-랗게 헝클어져서는 흐늑흐늑해 보인다.
<생물의 스포츠>에서 '패자는 패자로서의 생존과정을 형성해가는 중이다... 전위·변형... 생물이 고등하게 되면 될수록 생존경쟁·도태는 생물의 진화에 있어 하등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을 패자라고 생각하며, 죽음이 임박함을 예감하는 <병상 이후>을 썼다.
미술과 건축학을 공부한 작가 이상은 조형미가 있는 문체의 창조자이며, 감정개입보다는 객관적 묘사를 선행시킨다고 하였다. 자신의 문학에만 전념했던 그이기에 비평문은 없는 가운데 <작가의 호소>, <문학과 정치>라는 짤막한 글이 뒤늦게 발견되었다.
이상의 문학은 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예술지상주의적인 순수 예술로 그 가치가 평가되고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서도 많이 다루어진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에 희생된 예민하고 뛰어난 언어 예술인으로서 시대를 불문하고 읽히는 글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작가는 떠나고 없어도 그의 글들은 남아 그 시대의 상황과 한 개인의 고뇌를 느낄 수 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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