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문학, 종교, 철학, 심리학

세종대왕실록

나무^^ 2026. 5. 26. 12:17

 

지은이  박영규    출판  웅진 지식하우스

몇 년 전에 사놓았던 책을 몇 달전에야 읽고 이제야 독후감을 쓰는, 미뤄져도 상관없는 노년의 일상이 참으로 편안하다. 

민족의 자부심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업적이야 초등교에서부터 배웠으니 말해 뭣하겠는가! 그래도 세종대왕실록을 접해보고 싶은 마음에 산 책이다.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이니 작가가 중요한 사실만 옮겨 해설한 책이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잠자리 들기 전 조금씩 읽었는데,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더 많이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1부 조선왕조의 주춧돌을 마련한 세종의 삶과 정치 

 

· 1장 왕자 충녕 ㅡ 세자의 빈객(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 변계량은 3남인 충녕의 왕성한 학문적 열정에 비해 세자 양녕이 공부에 태만한 것을 크게 염려하였다. 태종실록 18년 1월 26일 기록에는 충녕이 주역에도 정통했음을 보여준다. 충녕은 방만한 형 양녕을 염려하는 마음에 충고를 서슴치 않았지만, 가치관이 다른 형에게 그의 진심이 통할리 없었다. '너는 관음전에 가서 잠이나 자라!'는 말로 무시하고 벌인 기행은 도가 지나쳤다.

·  2장 폐세자 사건과 세종의 즉위ㅡ 엇나가는 세자를 꾸짖는 태종과 미움받는 양녕의 반발이 잘 드러난다. 테종의 전위 파동, 세자를 옹호하는 민문구 형제의 처벌이 상세하게 그려지는데, 엽색 행각을 일삼는 세자가 주원인이지만 태종의 민비에 대한 악감정도 작용한 결과였다. 

·  3장 국가 경영의 모범을 보인 세종ㅡ 세종의 생애는 1397~1450년, 재위 기간은 1418년 8월~1450년 2월로 31년 5개월이다. 태종은 두 형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전위 파동을 일으켜 외척을 처벌하고, 충녕을 세자로 세운다.(1418년 6월) 그는 4년이나 세종의 정치에 참여하였다. 태종의 3년상이 끝난 1424년 뒤에야 토론 정치 시대를 열며, 적극적으로 옳은 일에는 타협없는 소신 정치를, 국방에 있어서는 강약을 조율하고, 백성에게는 자애롭게,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를 취하였다. 또한 현실주의에 입각한 종교관으로 백성을 이끌며 실용주의에 따른 인재등용을 실천했다.

안타깝게도 세종은 병을 달고 살아 서른도 안 되어 중풍이 오고, 사십 초반 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재위 후반기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의정부서사제를 부활시켜 업무를 줄이고 세자에게 섭정을 시켜야 했다. 

54세에 8남인 영웅대군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세종은 정비 1명과 후궁 5명에게서 적자 8명과 적녀 2명, 서자 10명과 서녀 2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식도 많이 낳았지만, 기적같은 수많은 업적과 함께 국토 개척과 확장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킨 위대한 왕이었다. 그의 가족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가운데 나오는 일화들도 재미있다.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로 백성들을 문맹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학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정음청'을 신설하여 관리 시험에 훈민정음을 포함시켰다. <동국정운> 등 여러 언어학 서적을 발간하고, <석보상절> 등 불경을 번역하게 하는 등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시켰다. 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에는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훈민정음>이 밝히는 창제원리와 그 유래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궁금했던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즉 발음기관을 본더 만들었다는 것과 <훈민정음운해>와 <환단고기>의 주장처럼 고전 기원설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2부 세종실록 요략

 

· 즉위년(1418년 무술년, 명 성조 영락 16년) ㅡ 즉위식을 거행하고 백관 일부를 교체했다. 상왕이 세종의 장인 심온을 제거한다.

· 세종 1년 (원년, 1419년 기해년) ㅡ 원년이란 <춘추> 예법에 따라 즉위 이듬해을 삼는다. 이 법을 칭원법이라 하여 소상하게 설명,  강원도의 굶주린 백성의 조세를 덜어주고, 명나라의 사신을 맞아 불꽃놀이를 하고 조공무역으로 양과 사리를 교환한다. 지방관리를 직접 만나는 제도, 집현전 확대, 무과시험에 사서 시험을 실시, 대마도 정벌, 억불정책 중에도 백성을 달래기 위한 도룡뇽에게 기우제를 올림, 노상왕의 잔치에서 수박희와 태껀 시합을 함, 노상왕 정종 승하, 소금을 공염화하여 나라재정을 확보, 동짓날 망궐례 실시, 절간 노비를 관노로 전환하며 억불정책함.

· 세종 2년 (1420년 경자년) ㅡ 효행 표창, 명에게 금,은 조공을 제외해달라는 글을 보내고 대마도 관할권 확립, 코끼리 폐해를 해결 등.

· 세종 3년 (1421년 신축년) ㅡ 아들 향의 선생으로 신장과 김자를 명하고, 역모죄인을 극형에 처한 일, 밀무역 방지, 왜학 관련 벼슬 마련, 상왕을 태상왕으로 하고, 음양성장설에 따른 8세 세자 책봉 등을 하심. 

· 세종 4년 (1422년 임인년) ㅡ 공주 명칭 사용, 경행을 폐지하여 불교 풍습 축소, 태종 승하, 정밀한 저울 만들어 유포, 무과 시험에 경서의 비중을 높임 등, 삼년상으로 허약해진 왕에게 고기 먹을 것을 권하나 흉년이라며 끝내 거절함. 

· 세종 5년 (1423년 계묘년) ㅡ 묵형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본처를 버린 신하를 벌하고 대궐 안에서 간통한 남여를 처결하였다. 봉화대의 재정비, 신임관료 신고식 금지, 고을원에 감찰제도를 마련하고 아전의 행패를 보고케 하며 내시부의 품계를 종2품으로 한정하는 제도 등을 하셨다.

· 세종 6년 (1424년 갑진년) ㅡ 세종의 여동생과 장녀의 죽음, 물시계 제작, 조선통보 주조, 수교 고려사를 편찬 등이 있었다.

· 세종 7년 (1425년 을사년, 명 인종 홍희 원년) ㅡ 세자빈 간택을 위한 혼인금지를 풀라 명하심, 일본의 대장경 목판을 달라는 청을 거절, 지방관 임기 6년을 신하들과 논쟁끝에 변경하지 않고 유지하였다.

· 세종 8년 (1426년 병오년, 명 선종 선덕 원년) ㅡ 한성의 화재로 금화도감을 세워 대비케 함, 관비의 100일 휴가 시행, 왕실과 이씨 사이 결혼 금지, 선비들을 위한 사가독서제도를 확립하였다.    

· 세종 9년 (1427년 정미년) ㅡ 세자빈 책봉, 과한 책무로 인한 31세 세종의 중풍 증세, 제주도의 행정조직을 혁신, 양반의 딸들을 포함한 33명의 공녀와 10명의 고자를 명나라에 바친 일 등으로 세종은 어미들의 원통함 못지 않게 약소국의 처지가 원통하였다. 

· 세종 10년 (1428년 무신년) ㅡ 목축에만 의존하는 제주도의 말을 육지로 방출하게 하고 농사를 장려, 문과 시험을 경전 외우기에서 글짓기 중심으로 바꿈, 한성부 호적 완성, 친자의 아비 살해로 <효행록> 간행을 지시·배포케 하고, 문맹인 백성을 위한 <삼강행실도>도 만들어 배포함.

· 세종 11년 (1429년 기유년) ㅡ 원금을 넘는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월이자도 3%를 못 넘게 함, 농민들을 위한<농사직설> 편찬하여 배포.

· 세종 12년 (1430년 경술년) ㅡ 공신의 여종의 아들도 충의위에 소속시켜 벼슬을 내림, 박연으로 하여 음악을 대정비시킴, 세종의 스승 이수와 대제학 변계랑의 죽음, 전세(田稅)제도 변경을 위한 여론조사(17만명)를 하고 공법(貢法) 제도를 확립.

· 세종 13년 (1431년 신해년) ㅡ <태종실록> 완성, 석가탄신일에 절을 제외한 연등놀이 금지, 유성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서운관을 벌함. 

· 세종 14년 (1432년 임자년) ㅡ 노비종부법 폐지하고 노비종모법으로 개선, 북방의 야인 토벌을 위해 명의 선처를 구하고 최윤덕, 김종서 파견.

· 세종 15년 (1433년 계축년) ㅡ 온천행으로 민심 살핌, 한의학의 기초 서적 <향약집성방> 편찬, 장영실에게 호군 벼슬 수여, 국비유학생 선발.

· 세종 16년 (1434년 갑인년) ㅡ 야인토벌을 위한 민가 마을 조성, 아끼던 대제학 정초 사망함.

· 세종 17년 (1435년 을묘년) ㅡ 건강 악화로 진양대군(수양대군)이 사신 접대, 수레 보급함.

· 세종 18년 (1436년 병진년, 명나라 정통 원년) ㅡ <자치롱감훈의>를 편찬한 대제학 윤회 사망, 무당의 두박신 의식 금지, 세자빈 폐출함.

· 세종 19년 (1437년 정사년) ㅡ 서무 결재권 세자에게 넘김, 주야 시계 '일성정시의'(휴대용 간의) 완성, 의정부 조직 확대와 의정부서사제 정착.

· 세종 20년 (1438년 무오년) ㅡ 흠경각 완공 천문시계 옥루 설치, 일본 지도 완성, 관찰사 임기 1년으로 단축, 재상 맹사성 사망.

· 세종 21년 (1439년 기미년) ㅡ 함길도 지역의 안정을 위해 김종서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제도 개선을 독려, 충신 좌의정 허조의 사망.

· 세종 22년 (1440년 경신년) ㅡ 형조참관 고약해 파직, 좌찬성 이 맹균의 여종 살인사건 유배, 영의정 황희의 아들로 인한 사직요구를 철회함. 

· 세종 23년 (1441년 신유년) ㅡ 세자빈 권씨가 아들(문종)을 낳고 사망, 문종은 3번이나 아내를 잃고 훗날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됨. 

· 세종 24년 (1442년 임술년) ㅡ 사역원 관리의 외국어 사용 관리, 눈병이 심한 세종이 세자 섭정을 강력히 요청. 세자궁에 첨사원을 설치함.

· 세종 25년 (1443년 계해년) ㅡ 세자에게 왕권을 대폭 이양하고 훈민정음 창제하여 발표하였다.

· 세종 26년 (1444년 갑자년) ㅡ 도적떼글 소탕, 눈병 악화, 태종의 어진을 고쳐 그림, 장모 안씨의 죽음, 5 번째 아들 광평대군이 20세로 죽음. 

· 세종 27년 (1445년 을축년) ㅡ 한달먼에 또 7남 평원대군이 19세로 죽음, 선위하고자 하난 대신들 반대, 의염색(국가가 소금을 직접 굽는 일)설치하여 소금세 강화, 전설의 섬 요도(지금의 독도)를 찾도록 명함, 북방을 지키던 최윤덕 사망.

· 세종 28년 (1446년 병인년) ㅡ 충신 신개(73세) 사망, 소현왕후(52세) 사망, 

· 세종 29년 (1447년 정묘년) ㅡ 언어학 책인 <동국정운> 6권이 간행되어 배포됨, 신숙주가 쓴 서문만 전해지다 두번에 걸쳐 1972년에 발견됨.

· 세종 30년 (1448년 무진년) ㅡ 후궁이나 양반가 여자들이 남편이 죽은 뒤 머물던 정업원을 철폐하고 노비 3천여 명을 전농시에 소속시킴.

· 세종 31년 (1449년 기사년) ㅡ 중요 사건이 없는 채 언급한 사건들의 연장임.

· 세종 32년 (1450년 경오년) ㅡ 향년 54세로 영웅대군의 집에서 사망함, 세자 향은 부모의 연이은 상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지극정성이었던 국상이 끝나자마자 생을 마감했다. 이는 아들 단종의 비극적인 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3부 황금시대를 일군 세종의 인재들

 

1장 왕도정치를 구현한 세종과 조정의 대들보들

태종의 업적 중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세자를 폐하고 세종을 왕으로 삼아 태평성세를 이룬 것이다. 태종이 승하하자 4개월이나 초막에서 애도를 하였다. 집현전을 통해 배출된 유학자들이 정치 기반을 이루며, 강력한 왕권 중심의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 바뀌었다. 왕이 아무리 뛰어나도 보필하고 뒷받침해줄 신하가 있어야한다. 대표적으로, 정무 처리의 귀재 황희는 태종에서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임을 받아 정승직을 23년간 수행하며 87세가 되어서야 직을 내려놓았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재미있다. 

늘 피리를 들고 다니던 정계의 음유시인 맹사성은 우여곡절이 많은 벼슬 끝에, 태종이 정악의 정비를 맡겼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우의정으로 황희와 쌍을 이루며 정치를 이끌었다. 술을 좋아하고 청렴, 검박했던 그의 '공당문답'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상신(相臣)으로 꼽히는 류관은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나서야 정승이 되어 세종을 도왔다. 지은이는 '세종이 황희에게서는 정무 처리의 해박함을 배우고 맹사성에게서 삶을 즐기는 유연함을 배웠다면, 류관에게선 진정한 선비의 길이 무엇인지 배웠던 것이다.' 라고 압축해 설명한다. 이들은 세종을  성군으로 이끄는데 대들보 역할을 하였다.

.   

2장 영토 개척과 국방의 주역들

'세종은 왕도정치를 꿈꾼 문지주의였지만, 국토의개척과 정벌을 통한 국력 신장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왕'으로 4군 6진을 설치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대마도 정벌의 영웅 이종무, 무관의 표상이며 소박하고 청렴한 최윤덕으로 야인을 토벌케 하고 전국의 성곽을 수축하였다. 또한 문관인 김종서는 북방을 확장하는 큰 공을 세우고 우의정에 올랐으나, 단종 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3장 세종의 학문적 스승들

여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했던 세종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행동주의 학자였다. 군자학으로 불린 유학을 정치에 적옹하여 태평성세를 이루고자 한 세종에게 학문의 산실이었던 집현전에 유래와 변천사 등을 들려준다. 또 세종과 함께 학문을 이끌어간 특출한 문재(文才)변계량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그의 인간됨을 엿보게 한다. 사생활에는 문제가 많았으나 당대의 최고 학자였다. 어릴 적  스승 이수윤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도덕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지혜로운 윤회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다 풍질이 악화되어 57세 나이로 사망하였다니...  '학문진흥의 주춧돌'이라 한 정인지는 태종때부터 눈에 띄었으나, 세종에 이르러서야 왕의 새로운 정책들을 지지하며 소임을 다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적극적으로 임해 해례편의 서문을 작성했다. 유감스럽게도 검박했던 그가 노년의 치부로 불명예를 안았다.

 

4장 과학 혁명의 선구자들

천문학에서 농학, 인쇄술, 화기, 의학,아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적 변혁이 시도되었는데, 그 중 과학 혁명을 주도한 기관이 서운관(천문연구소)이다. 최고의 천문학서로 원나라 역법과 아랍의 역법을 해설한 <칠정산내·외편>, 농업 혁명의 토대가 된 <농사직설>편찬, 활판 인쇄술 갑인자, 천문관측대인 간의대, 앙부일구,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과학혁명의 초석을 다진 이가 정초이다. 그는 세종을 만나 진가를 발휘하였는데 물시계를 제작하고 <농사직설> 편찬 등을 주도하였다. 또한 천문학의 대가 이순지는 역산(수학)의 대가로 성장하여 간의대(천문관측대)를 이끌고 <제가역상집>을 편찬했다. '세종의 위대한 손 장영실'은 관기의 아들이었으나 세종에게 발탁되어 수많은 방명품을 제작하였다. 아쉽게도 가마건으로 파직되어 더이상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5장 조선 음악의 거장, 박연

인간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끄는 예(禮)와 악(樂)을 주요가치로 삼은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왕 세종은 악공을 천시하던 풍조 속에서 박연을 악학별좌에 임명하여 음률을 정비하게 하였다. 그는 아악의 기틀을 잡아 민족음악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제례악으로 우리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했다. 일화에서 세종이 음악의 조예가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있다. 

 

부록으로는 1. 조선시대 정부기관들, 2. 내·외명부, 3. <세종실록> 인물찾기를 볼 수 있다.

존경하는 세종대왕님의 역사를 상세하게 알 수 있고,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인식시키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으로 필수교양서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을 읽고 > 문학, 종교, 철학,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0) 2026.06.12
권태  (0) 2026.05.24
철도원 삼대  (0) 2026.02.24
도대체 공부가 뭐야?  (1) 2025.11.12
만들어진 신  (1)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