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2. 28 (월) 영남일보
땅속에 든 풀씨가 땅 위로 올라와 잎과 꽃이 피어 반듯한 줄기에서 약간 고개를 숙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런데 이때 땅속에 묻혀 있는 뿌리는 당연히 옆으로 굽어질 수밖에 없는 모양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따라서 중간의 '一'은 지면을 나타낸 것이며, 그 위는 잎과 꽃이 다소 늘어진 것을 나타낸 것이고,
아래는 지상의 잎과 꽃이 늘어진 만큼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뿌리가 상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 구부려진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의 가운데 획은 곧 상하를 연결하고 이는 줄기를 뜻한다.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곱게 자라다가 친정을 벗어나 시집간 여인을 두고 '宅'(집 택)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안성에서 서울로 시집 온 여인은 그 뿌리가 안성이기 때문에 '안성댁'이라 부른다.
다만 모든 이들이 삶을 영위하는 처소를 '집'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남녀 누구나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곳을
'宅'(집 택)'이라 말하지만 여인의 시댁을 '택'이라 발음하지 않고 '댁'이라 읽는 이유는 시집과 친가의 이중적 구조를
지닌 여인의 입장을 남자들과 분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어떤 물건을 집에까지 배달해 주는 일을 '宅配'(택배)라 하고, '집'은 그 위치나 규모를 자신들이
선택해 자리잡고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소리도 '택'으로 읽을 수밖에 없어 '택(宅)은 택야(擇也)'라 말할 수 있다.
또 ''에 손을 붙이면 손 써달라고 의탁한다는 말로 '托'(부탁할 탁)이라고 하고,
말로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言'(말씀 언)을 붙여 '託'(부탁할 탁)이라 한다.
그러니 손써 자신의 어려움을 풀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과 자신을 대신해 다른 사람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말로 부탁하는 일은 ''에 어떤 글자를 붙이는가에 따라 그 뜻이나 형식이 달라 '托'은 적극적인 부탁이라면
'託'은 소극적인 부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네 몸은 '집'에 의탁해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서로가 좋고 옳게 살아가는 마음은 어떤 집에 머물러 살아가야
할 것인가.
맹자는 "너른 집이 있어도 머물지 않고 바른 길이 열려 있어도 말미암지 않으니 이것이 큰 문제로다
(曠安宅而不居, 捨正路而不由)"라고 했다. 너른 집은 어떤 집이며, 바른 길은 어떤 길인가.
너른 집이란 나만을 고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나와 남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어짊'(仁)을 뜻하고,
바른 길이란 내 이익만을 따지지 않고 더불어 갈 수 있는 일차선의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더불어 갈 수 있는
'의로움'(義)의 길이다.
내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남의 입장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너른 집에 머물 수 있고,
좁다란 아집(我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남과 더불어 가는 길을 끊임없이 찾아가야 비로소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가 바로 내 마음을 너른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하고, 나와 남을 합쳐 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