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3. 7 (월) 영남일보
식물의 땅속 뿌리는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줄기와 가지들은 이를 유통시킨다.
가지마다 피어 있는 수많은 잎은 햇빛을 받아들여 광합성 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그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이런 각각의 맡은 일이 제대로 이뤄지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그 꽃은 열흘 이상 가는 것이 드물다 할 만큼,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가 낙화로 지고, 그 꽃이 떨어진 곳에 단단한 열매가 맺어져 새로운 종자를 형성한다.
그렇게 보면 식물이 종자를 맺어 끊임없이 개체적 생명을 이어가는 방법은 뿌리에서 줄기나 가지로,
줄기나 가지에서 잎으로, 수많은 잎에서 꽃으로, 꽃에서 열매로, 열매가 다시 땅속에 묻혀 뿌리를 내려
하나의 개체가 자리를 잡는 일로 비롯된다.
그래서 단단한 열매가 묻혀 물을 빨아들이는 뿌리가 자리를 잡는 일을 금생수(金生水),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가 자라는 일을 수생목(水生木), 가지에 잎과 꽃망울이 피는 일을 목생화(木生火),
꽃망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일을 화생토(火生土), 꽃이 진 그 자리에 열매가 맺는 일을 두고 토생금(土生金)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금목수화토 오행상생론이란 바로 이 땅에 가장 기초가 되는 생명체인 식물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생장수장을 반복하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생명순환의 원리를 말한 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푸른 초목에서 전혀 색다른 꽃이 핀다는 일이다.
그래서 꽃을 두고 '초목의 가장 신기한 변화'라는 뜻으로 '花'(꽃 화)라 하지만, 이는 '華'의 속자이다.
정작 꽃을 뜻하는 본디 글자는 어디까지나 '華'(꽃 화)로 꽃망울이나잎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늘어진 모양을
말한 것이다.
흔히 부귀영화(富貴榮華)라는 말을 쓰는데 이때의 '富'(부자 부)는 집안에 항상 큰 술독을 지닌 상태를 나타내
튼튼한 경제적인 여유를, '貴'(귀할 귀)는 금은보화나 진주와도 같은 귀한 물건을 지닐 수 있는 높은 신분을 뜻한다.
이에 비해 '榮'(영화 영)은 멀쩡하던 나무에서 온 가지마다 꽃들이 불꽃처럼 피어나 대수롭지 않던 집안의 형편이
화려하게 피어난 상태를 뜻하며, '華'(꽃 화)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망울지었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땅을 향해 늘어진 모양 그 자체를 본뜬 글자다.
묻힌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요, 드러난 것은 또 언젠가 묻히기 마련이다.
굳이 한때의 부귀를 심히 자랑하는 일도 철 모르는 일이며, 자신이 묻혀 있는 것을 크게 원망하거나
쉽사리 좌절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낙화는 뜻이 있어 유수를 따르는데 유수는 무심히 낙화를 보낸다(落花有意隨流水, 流水無心送落花)'라는 글귀는
단순히 늦봄의 경치만을 읊은 것이 아니다. 뜻을 둔 낙화가 흐르는 물에 떠가면 다시는 초목으로 태어나 영화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이미 떨어진 꽃 자체에서 단단한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꽃마다 다 성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닌 법이라, 더러는 흐르는 물 따라 흘러가 버려야 할 꽃도 있는 법이다.
노자의 '천도는 그 어떤 것과도 친하지 않으나 언제나 착한 이와 더불어 준다(天道無親 常與善人)'는 말씀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꽃이라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