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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나무^^ 2014. 7. 18. 17:44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바흐(1685~1750)의 모든 음악은 성격상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던 바흐가 신에게 다가서려는 마음을 담아 작곡한 성가곡들이다.

      그의 자의적인 측면과 동시에 교회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해야 했던 직업적 측면을 포함한다.

      말하자면 의무감내지는 직업적 소명감으로 작곡한 곡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성실하고 과묵했던 이 음악가는 군말 없이 작곡에 몰두하여 다음날 아침이면어김없이 예배에 사용할 음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곤 했다. 오늘날 연주되는 바흐의 수많은 교회음악들이 그렇게 태어났다.

      또 한 가지는 순수하게 음악적 즐거움을 추구했던 곡들이다.

      이런 음악들은 대부분 귀족의 의뢰를 받아 작곡됐고 바흐는 그에 따른 보수를 받았다.

      변주곡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곡으로 평가받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로 이러한 음악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이다. 순수하게 기악적인 즐거움, 게다가 18세 때부터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던 바흐의 건반 테크닉이

      집대성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바흐는 음악적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산만해지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었다.

 

      정확하고 균형 잡힌 통제력이야말로 그의 음악 전편을 수놓는 미덕이라 하겠다.

      이 곡의 음악적 연원을 따지기 위해서는 바흐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알려져 있다시피 바흐는 23세 되던 해에 사촌누이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헌데 그 아내가 13년 후에 네 아이를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나 바흐는 매우 상심했다고 전해진다.

      
      두번째 아내인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결혼한 것은 그 이듬해였다.

      어떤 이들은 상처한 지 1년만에 그렇게 서둘러 재혼할 수 있냐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당대적 관습이었다. 여성을 향한 은밀하고 낭만적인 열정보다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집안을 제대로 건사할 수 있는 내조형 아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흐가 두번째 아내인 안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736년에 카를 폰 카이저링크(1696~1764) 백작이 변주곡 작곡을 의뢰해 왔을 때, 바흐는 두번째 아내를 위해

      작곡했던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1725)의 한 귀절을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이 유명한 변주곡의 주제가 되었다.

 

 

 

자장가 용도로 만든? <골드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트 변주곡>
그의 굽은 등, 쉴새 없이 ‘연주중’인 입모양이 인상적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또다른 분위기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장면


            스무 명의 자식을 거느린 바흐야말로, 이렇게 자장가를 들으며 쉴 틈 없이 일해야 했을 텐데,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쉬게 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바흐 집안은 200여 년 동안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했다고 하는데, 바흐에게 “당신만이 오늘날까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고 말해주면,

            아마 그는 정말로 놀랄 것이다.

            평생을 교회에서 일하며 신의 음성을 적어 나갔던 바흐. 그의 삶과 음악 이야기에서 그의 소박한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예술과는 동떨어진 생활고 속에서도 신앙을 통해 자기의 감수성과 재능을 보존하고

            지켜온 것이리라. 음악을 하거나 돈을 번 시간 외에 바흐가 보낸 시간이 궁금해진다.

            기도하거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명상하는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그만의 것들을 축적해 나갔을 테니까.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다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름답고 장중한 주제(아리아)를 맨 앞에서 제시하고 이어서 30개의 변주를

            펼쳐낸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다시 주제를 등장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일설에는 백작이 잠을 못 이뤄 ‘수면제 음악’으로 작곡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독일의 음악학자 J.N. 포르켈이 쓴 <바흐의 생애와 예술>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이 유명한 책은

            바흐에 관한 최초의 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면 음악 일화가 ‘정설’로 인정받진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록에서도 ‘수면제 음악’ 운운 하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포르켈이 잘못 취재했거나 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실제로 음악을 들어보면, 잠을 자는 데 별로 도움이 될 성싶지 않다.

            바흐는 이 곡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1742년 <클라비어 연습곡>의 제4부로 출간된 이 곡은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개의 변주’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고용된 클라이버 연주자의 이름이 골드베르크였던 까닭에,

            그의 이름이 그대로 변주곡 자체의 명칭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바흐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으며 음악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우 논리적인 측면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신앙과 논리는 그에게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합리적인 것이야말로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곧 신의 섭리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바흐는 숫자에 대해 일종의 집착적 태도를

            보였다. 특히 ‘3’은 그가 아주 선호했던 숫자였다. 바흐는 삼위일체의 상징성을 내포한 그 숫자에 대한

            집착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도 드러냅니다. 3의 배수로 이어지는 변주곡들, 예컨대 제3, 제6, 제9, 제12

            등의 변주에서 바흐는 음정을 1도씩 증가시킨다.

            변주가 쉼 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순수하게 음악적인 동시에 수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곡은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을 줄 수도 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듯한

            답답함을 선사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우리의 감각에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앞으로 쭉쭉 직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이 그런 것처럼.

            한데 고맙게도 바흐는 곡의 중간에 이정표를 하나 세워놨으니,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로 15번째 변주가 그것이다. 대체로 빠르고 활달한 분위기의 변주들이 펼쳐지다가 바로 이 중간

            지점에서 바흐는 속도를 확 늦춘다. 선율도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더러 조성도 단조로 이뤄져 있다.

            바로 이 15번째 변주를 꼭 기억하기 바란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맛있게’ 듣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글렌 굴드(Glenn Gould)/1981년/Sony

굴드는 이 곡을 평생에 걸쳐 두번 녹음했다. 1955년 이뤄진 첫 녹음은 당시 음악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23살의 굴드는 바흐의 음악조차도 낭만적 색채를 가미해 연주하던 당시의 주류를 전복하려는 열망으로 들끓었다. 거장풍의 느릿한 걸음을 한방에 거부하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단 38분 만에 휘몰아쳤다. 핀셋으로 음을 뽑아 올리는 듯한 선명한 아티큘레이션, 그 생동감과 활력은 그때까지의 어떤 연주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하지만 자주 듣기엔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보다는 1981년 이뤄진 두번째 레코딩에 한 표를 던진다. 여전히 굴드다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죽음을 1년 앞둔 비감(悲感)이 갈피마다 서린 명연이다. 연주시간 51분.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i)/1993년/Opus111

피아노가 아닌 쳄발로 연주로 이 곡을 듣고자 한다면 한번은 꼭 거쳐야 할 음반이다. 어떤 이들은 쳄발로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며 거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앙타이의 연주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유연하고 풍성한 음색을 연출하면서 오르간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녹음도 매우 뛰어나 오디오 파일로도 손색이 없다. 앙타이는 고지식하게 모든 반복구를 재현하면서 77분이 넘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만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힘 있는 연주라기보다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연주다. ‘그라모폰 상’과 ‘디아파종 황금상’ 등을 수상했다. 앙타이는 2003년에도 Mirare 레이블에서 같은 곡을 또 한번 녹음했는데 해석에 큰 차이는 없다. 첫 녹음에 비해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2003/ECM

만약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 정말로 잠을 청하고 싶다면 이 음반이 최적일 성싶다. 매우 정갈한 연주다. 쉬프도 이 곡을 지금까지 두번 녹음했다. Decca 레이블에서 첫번째 녹음을 내놓은지 20년만에 두번째 녹음을 독일 ECM에서 발매했다. 이 역시 해석과 스타일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ECM 녹음을 추천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좀더 원숙한 연주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프가 20년 전에 비해 더 무거워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쉬프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ECM 특유의 깐깐한 사운드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디지털적이라고 회피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ECM 사운드가 그렇게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페달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쉬프 특유의 연주를 ECM의 엔지니어들은 빼어난 기술력으로 살려냈다. 커버 디자인도 매우 수준급이다. 연주시간 71분.

 

                                                                                                                                       ♠ 글 : 문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