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나무 여진은 집안일을 끝내고 한 잔의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베란다 밖으로 가을 산의 정취가 가득한 거실, 장미꽃이 그려진 러시아산 찻잔에서 커피향이 은은하게 번져간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선율에 이어 맑고 투명한 피아노 음이 작은 공간을 커다랗게 팽창시키며 휘몰아 나가 춤추듯 넘실거린다. 날 사랑한다던 그 사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아릿하게 떠오르는 스무 살 청년, 그의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리. 영. 찬. 그의 내면적 가치를 가늠할 수 없었던, 스물두살 어린 나이의 여진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하릴없이 친구들과 음악다방으로 몰려가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번민하던 시간,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