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글 5

회상 (나무 지음)

회상 나무 여진은 집안일을 끝내고 한 잔의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베란다 밖으로 가을 산의 정취가 가득한 거실, 장미꽃이 그려진 러시아산 찻잔에서 커피향이 은은하게 번져간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선율에 이어 맑고 투명한 피아노 음이 작은 공간을 커다랗게 팽창시키며 휘몰아 나가 춤추듯 넘실거린다. 날 사랑한다던 그 사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아릿하게 떠오르는 스무 살 청년, 그의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리. 영. 찬. 그의 내면적 가치를 가늠할 수 없었던, 스물두살 어린 나이의 여진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하릴없이 친구들과 음악다방으로 몰려가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번민하던 시간, 감..

소설 같은 글 2015.11.13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

1. 그 분 그녀에게 남자는 존경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녀를 사랑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녀 또한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몇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다. 아니 이 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글썽인다. 증오하고 경멸하던 대상이 사라진 허전함...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던 맘에 안 드는 감옥이 홀랑 사라지고 얼떨결에 맞은 자유는 날기를 잊어버린, 새장을 나온 새처럼 막막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남편의 친구인 그가 그녀에게 접근하기란 눈독을 들인 물건을 훔치는 일보다도 수월했다. 그녀를 위로해주겠다며 수시로 그녀의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 말없이 버티고 앉았다 가면 되는 일이었다...

소설 같은 글 2007.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