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다른나라)

동유럽을 다녀와서 (2.폴란드)

나무^^ 2008. 6. 2. 16:40

            * 학창시절 '쇼팽'이라는 음악가를 통해서, 또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 등을 통해 알았던 폴란드.

              이 나라는 14C경에 황금기를 이루었으나 18C에는 패망하는 불운을 겪고 다시 일어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현장인 오쉬비엥침으로 이동하여 유태인 수용소로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를 관람했다.

              아침 일찍 나온 덕에 견학온 학생들이 많았지만 기다리지 않고 둘러볼 수 있었다. 내부사진은 찍지 못하게 하였다.

             

              1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끔찍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그들의 자각이 놀라울 정도이다. 건물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 그 역사를 되풀이 한다.'는 문구는 우리의 슬픈 역사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수용소 안의 기물과 사진들은 인간의 사악함이 악마에 이르는 것임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그 추악함에 동조한 

              수많은 이들의 어리석음 또한 누구나 인간의 내면 속에 포함되어있는 끔직한 나약함을 느끼게 한다.

              신과 악마, 천국과 지옥은 모두 인간의 의식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체가 아닌 허상인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사업화 냄새가 짙다는 비난도 있을 만큼 이 수용소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큰 것 같다. 

 

            

 

            

 

            

 

         *  살해하는 장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창마다 나무를 덧대어 놓았다. 사진 속에 보이는 이 장대에 유대인의 두 손을 

            뒤로 묶어 매달았다고 하니 그 광경은 상상으로도 충분히 잔혹하다.

            무엇보다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나치들이, 소요를 막기위해 죽으러 가는 사람들의 물품에 모두 이름을 쓰게 하여

            마치 다시 돌려줄 것처럼 사기를 친 것이다.

            유대인들의 머리털을 잘라 군수물자인 천을 만들어 쓴 것을 입증하는 쌓여있는 머리털과 짜다만 천은 

            그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히틀러, 그는 어린시절부터 유대인에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후 그는 연구대상이었기에 미 OSS의 극비 보고서인 '히틀러의 정신분석' 이란 책을 통해서 낱낱히 분석되어진다. 

 

            

 

                              

 

                              

 

               * 다시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의 숲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세상을 둘러보며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의지하는 한 의식의 참다운 전환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음만이

                 깨달음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내면의 충실, 삶의 행복을 경험한다

 

            

 

                                * 무슨 방송국이라는데, 마치 외계인 기구처럼 특이하게 건축하였다.

                                  달리는 차 속에서 갑자기 찍어서 제대로 잡지 못했다. 

 

                              

 

                              

 

            

 

              * 중세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중앙광장에서 많은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는 많은 축제가 있었다. 마라톤 경기, 음악공연(휴식시간인지 잠시 쉬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놀이 등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 500년 동안 폴란드 왕의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바벨성.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17C 초 폴란드 왕궁이 바르샤바로 이전되었지만 크라쿠프는 왕들의 도시로 남아있으며

                               왕국의 수도로서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 800년의 역사를 지닌 성 마리아 교회. 작은 첨탑은 교회 첨탑이고 큰 첨탑은 시 첨탑이다.

                               나팔수가 매시간 나팔을 연주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연주를 중간에 멈춤으로 그 옛날 타타르족의

                               칩입을 알리던 나팔수의 죽음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듣지 못했지만...

 

                               

 

                                * 가로등의 곡선이 고성의 분위기와 어울려 아주 아름답다.

 

            

    

            

 

            

 

            

 

            

  

            * 유모차를 타고 나온 귀여운 아기, 겨울처럼 모자를 썼네! 동유럽은 아직 해가 들어가면 써늘하고 조석으로는

              좀 추울만큼 일교차가 심하다. 그래서 얇은 옷을 몇겹 입어 한낮에 더우면 하나씩 벗어 걸쳐야 한다.

               가이드가 전기담요를 가지고 다니는게 이해가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언제 비를 내릴지 모르고 그러면 꽤 춥기 때문이란다. 이번 여행에서는 두어번 비가 내렸는데,

              그것도 버스를 타고 갈때는 심하게 내렸고, 내려서는 이슬비 정도로 오히려 유럽의 분위기를 한층 낭만적으로 

              돋보이게 하였을 정도였다.   

 

            

 

            

 

            

 

            

 

            

 

               *  여긴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시장이었는데, 자유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구경을 하지 못했다. 

                  동유럽이 모두 카톨릭과 신교를 믿는 나라들이라 아름다운 성당과 성화를 파는 곳이 많았다. 

 

            

 

            

             

            

 

                   * 피곤한 하루 여정을 쉰 한적한 곳의 호텔이다. 작은 구석방에서 혼자 잤는데, 시설은 깨끗했다.

                    무엇보다 여행 내내 질좋은 하얀 목면 시트의 촉감이 좋았다. 한국인이 하는 한 호텔을 제외하고는...  

 

             

 

            

 

             * 다음날 새벽같이 폴란드의 유명한 소금광산으로 오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이 학생들의 수학여행시즌이란다.

 

            

 

            * 폴란드어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중이라는 현지 가이드. 이름이 '고요한'이라고 해 잊어버리지 않았다.

              퍽 예의바르고 상냥했다. 설명도 물론 잘하고.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조국의 이름도 빛내길 빈다.

 

            

 

           * 10C 경 소금제조장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비멜리치카 소금광산이다.

             암염이 생산되는 곳으로 소금바위가 많아 지하 100m 정도에는 전시장이 만들어져 9시~4시까지 열린다. 

             많은 작은 방과 나무로 이어진 복도, 소금바위 전시장, 예배당, 수많은 소금바위 조각상들, 일하는 모습의 모형,

             까페 등이 있었다.

             특히 크리스탈 동굴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것으로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단다. 250년부터 1950년까지 가동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으로 당시 소금무역을 통해 크라쿠트는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비좁은 에레베이터를 타고 지하 63m를 단숨에 내려간다. 소금광산에 있는 3000개의 방 중 20여개의 방을 보여주면서

             지하 135m 아래에서 관광은 끝난다. 정말 굉장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 소금광산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소금 벽면을 찍은 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로 놀라웁다.

 

            

  

            

         

            

 

            

 

            

 

            

 

                                       * 이 나라와 관련있는 유명한 사람은 모두 소금바위로 조각해 놓았다.

 

                              

 

            

 

            

 

                  * 그 당시 난장이들이 많은 활약을 했다고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았다.

 

            

 

                 * 이건 그때 당시 염전물을 흘러보내었던 수로라고 한다.

 

            

 

            

 

             

 

              * 여기는 지하 10미터에 20C 초 30년간 암염을 조각해서 만들었다는 넓은 성 킹카 예배당이다.

                성모 마리아상,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 등 벽마다 입체감이 생생하다 .

               

            

 

                                   * 폴란드에 시집가면서 소금광산을 시작할 수 있게 한 킹가공주라고 한다.

                                      유럽대륙은 옛날부터 지하에서 소금을 캐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 소금 결정체로 만들었다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상들리에가 눈부시다.

 

                              

 

            

 

             

 

            

 

              * 소금 동굴 바닥도 이렇게 타일처럼 암염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광부들 중에 조각가가 많았다고 했는데,

                조각가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 광부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이다. 

 

            

 

                                * 이 조각은 광산에서 일하는 목수를 기념하기 위해 조각한 목수상이라고 한다. 

 

                              

 

                * 소금돌과 나무만을 이용해 만든 동굴이라 시원하고 쾌적했으며 고급스러웠다.

                  구경하다 심심하면 손가락으로 벽을 칠해 혀에 갖다대면 영락없이 짠맛을 느낄 수 있다.

 

            

 

                                     * 이 조각상이 쇼팽이던가? 하도 여러 사람을 보아서 헷갈린다.

 

                              

  

                    * 이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올린 이유는 호수가 있는 이곳에서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움직이는조명과 함께

                     쇼팽의 이별곡이 연주되었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정말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느낌이였다. Good idea!

 

            

 

                * 여긴 귀족들이 조그만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 연회를 베풀며 즐겼다는 곳이다. 참으로 호사를 누린 듯 하다.

 

            

 

             * 기념품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일행들 왈, 유로를 안 받고 폴란드 돈만 받는다고 혀를 찬다. 아직 사회주의가 남아있는

              듯 고집스럽다. 그러나 다른 간식을 파는 곳에서는 유로를 받았다.  다음 사진은 커피 등을 마시며 쉴 수 있는 까페이다.

              광산안에 있는 화장실이 얼마나 안락하고 깨끗한지 모두들 한 번 들어가 볼 정도이다.

 

            

 

            

   

              *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 마지막 기념품을 파는 곳의 복도 창이 레이스 커텐과 꽃으로 아름답다. 

               다음은 소금돌 램프. 몸에 좋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빛 또한 환상적이나 그 무거운 것을 어찌 들고 갈까...

               가격조차 알아보지도 않고 구경만...

 

            

 

             

 

           * 호텔로 가서 현지식을 한 후 몇몇 사람과 산책을 나오니 뒷편 근처에 큰 조형물이 보여 올라갔다.

             공원에 있는 건물은 영화제를 하는 문화공간이었다. 밧데리가 떨어져 더는 사진을 찍지 못하고 커플 일행들

             사진을 찍어드렸다.

             노래솜씨 좋은 이에게 노래를 청하여 함께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를 한 잔 하려고 하니, 

             아! 이곳 까페도 유로 사절!  

             아니, 장사를 하겠다는건지 아닌지 원,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한 잔 하자며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피곤도 했지만 부부들 틈에 끼는것이 눈치도 보여 슬그머니 방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 기다렸다고 해 미안했다.

            

             내일이면 동유럽의 알프스라 불리는 타트라 산맥을 넘어가 슬로베키아에서 하룻밤을 묵고 헝거리로 갈 것이다.

             헝가리는 우리나라 처럼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외세의 침입을 계속 받은 슬픈 역사를 지닌 유목민 마자르족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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