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포클레스. 연출 한태숙. 미술 이영란. 음악 원일.
국립극단 출연 이상직, 정동환, 서이숙, 박정숙 외 다수
친구의 딸이 엄마에게 선물한 티켓 덕분에 '오이디프스'를 표현한 연극을 다시 보게 되었다
복잡한 명동 거리, 예전 국립극장 자리인 명동예술극장에 다시 와보는 감회도 새로웠다.
무엇보다 오브제를 이용한 세련된 무대연출과 함께 작곡가 원일씨의 음악효과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쟁을 주축으로 몇 가지 도구와 목소리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는 창의적 능력이 뛰어나 감동적이었다.
햄릿과 견줄 수 있는 이 비극적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 앞에서는 장님'이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하는 시간이다.
광란하며 벽을 기어오르는 테베 백성들의 암울한 분위기, 상층을 약간 높여 기울인 바닥과 조명효과,
긴장이 팽팽한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시선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집중시키는 몰입을 이끌어 간다.
이 극의 묘미는 역시 철학적인 날카로운 대사에 있다고 본다.
많은 대사들 중에 '아침에는 아비를 먹고, 한낮에는 어미를 먹고, 저녁에는 제 두 눈을 파먹고 헤매는
짐승, 당신의 적은 바로 당신이오.' 라는 말은 비단 오이디프스라는 극중 인물에 한정되는 말이 아닌
우리들 비극적인 삶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분명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을 일컬음이리라.
나는 왜 이 연극을 우연찮게 두 번이나 보게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이 내용을 그렇게나 오랜 시간 수없이 무대에 올리고 연기 하는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역학인에서부터 소문난 유명 역학인을 찾아 가는가?
우리는 그 풀 수 없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극 중 오이디프스처럼 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그 욕망이 즉 인간 삶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 앞에 굴복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적 성찰이 필요할 뿐이다.
고요히 멈추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혜안으로 운명을 초연할 때만이 우리는 평안에 이를 수 있다.
생명지닌 모든 존재는 아름답지만 그만큼 또한 가엾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이를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어 본능적 욕망을 절제하며
선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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