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8. 1 (월) 영남일보
인류의 식생활 변화는 크게 생식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원시 사냥시대와
화식을 주로 하여 불로 익혀 먹기 시작한 화식 시대로 구분된다. 물론 생식과 화식의 차이는
불의 사용 유무에 따라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진정한 문명과 문화는 물과 불의
이용 정도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인류가 불을 이용하여 생식에서 화식을 시작하거나
또는 불을 이용하여 땅속에서 얻어진 광석을 제련해 쓸 수 있었던 때로부터 참된 문명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도 무방하다. 즉 불만 이용하여 사냥에서 얻어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던 시대를 초기 문명시대라
말하자면, 사냥시대를 거쳐 청동기나 철기를 쓰기 시작하여 굽거나 볶아서 먹고 찌거나 끓여 삶아 먹을 수
있었던 때로부터 본격적인 문명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생식이나 화식이 지니는 장점과 단점이 많다.
생식의 장점은 음식물에 들어 있는 갖가지 영양소를 빼거나 보탤 수 없이 섭취할 수 있지만,
위생적인 섭생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화식은 익혀 먹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불로 익히는 동안 음식재료 안에 들어있는 귀중한 각종 영양소가 파괴되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하여 맛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무튼 사람이 살아간다는 말을 하나의 단어로 줄인 말이 ‘삶’인데,
이 삶을 꾸려 나가자면 아무래도 코로는 숨을 쉬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먹어야 산다.
그런데 숨 쉬는 일은 별 문제가 없지만, 먹는 일은 돈이 크게 들기 때문에 속담에도
“뭐니 뭐니 해도 코밑 진상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음식을 익혀 먹어야 위생적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솥’이라는 도구를 발명하여 화식을 한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꿔 말하면 ‘솥’은 곧 인류를 문명으로 이끌어 온 견인차 역할을 단단히 수행해 오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솥’만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일단 솥 안에 음식재료를 넣고 용도에 따라 적당히 물을 넣고,
그 솥 아래 나무를 태워 불로 익혀 내는 것이 가장 옳은 조리방법이므로 솥에는 반드시 물과 불이 있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鼎’(솥)의 아래에 땔나무 조각을 붙인 것인데, 다만 솥 밑에 땔나무만 있으면
음식이 익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에 불이 붙어 타 들어 가야하고, 그렇게 되려면 나무를 태울 수 있도록
바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솥’을 나타낼 때에는 ‘솥 밑에 나무조각을 받친 모양’을
본 뜬 글자로 나타내기도 하고, ‘주역’ 64괘에서 ‘鼎’괘는 ‘불’과 ‘바람’을 상하로 짝지어 ‘火風鼎’이라 하고,
그 뜻을 ‘솥은 크게 길하여 형통하다(鼎 元吉 亨)’고 하였다.
묵은 것을 버리는 일을 ‘革’(바꿀 혁)이라 하여 나무와 바람을 짝지은 것은 밑에서 바람이 들어와
나무가 타야 솥 속의 음식이 비로소 먹음직스럽게 나온다는 보다 근원적인 뜻을 취한 것이다.
솥이 엎어지면 안 되므로 항상 솥을 받치는 세 발이 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