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7. 11 (월) 영남일보
꿰어 뚫는다는 말은 어떤 물건의 중심을 관통해 하나로 쭉 잇대어 낸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어느 방면을 꿰뚫고 있다고 하는 말은 그 어느 방면의 일을 그저 수박 겉핥기로 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방면의 핵심(중심)을 꿰어뚫어 안다는 말이다.
‘참으로 안다’는 말은 겉을 안다는 말이 아니라 겉을 벗기고 그 속에 든 핵심을 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다’는 그 자체가 겉을 벗기고 그 속에까지 닿아 속을 안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참으로 안다’는 것은
덮인 겉을 젖히고 속까지 관통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어떤 이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의 겉모습만을 안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든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비로소 그를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慣’(익힐 관)이란 ‘ 心’(마음 심) 가운데 깊이 자리해 ‘毌'(꿸 관)의 ‘貝’(조개 패-가치)를 뜻하는 글자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가치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익혀온 자신의 행동양식이 굳어져 점차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가치가 곧 ‘慣’일 따름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통해 ‘習慣(습관)’을 중시하라고 말한다.
익혀지는 습관을 굳이 분석해 말하자면 ‘習’(익힐 습)이란 원래 ‘羽’(깃 우)와 ‘自’(스스로 자)를 합성한 글자로,
새가 스스로 깃질을 반복하여 비로소 날 듯 스스로 행동해 익힌다는 말이다.
때문에 스스로 행동으로 익힌 ‘習’이 반복되는 중에 그것이 마음 한가운데 깊이 박힌 의식이 곧 ‘慣’이기 때문에
‘習慣’이란 행동으로 익혀진 ‘習’이 의식으로 굳어진 ‘慣’이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모든 개개인의 ‘習慣’이란 이처럼 세 살 적부터 길러져 익혀 온 행동이 여든까지 이어오는 동안
마음 속 가치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래서 행동이 의식을 꾸미고, 의식에서 다시 익혀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행동과 의식은 마치 어떤 물건의 겉과 속 같은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習慣’이라는 말은 주로 개인에 국한돼 쓰이는 말이지만,
이에 비해 ‘慣習’이란 개개인이 모여 사는 사회에 적용되는 집단성을 지닌 말이다.
그렇다면 ‘習慣’과 ‘慣習’은 어떤 차이가 있는 말인가.
개인에 있어서는 다 각자 익혀온 행동 양식에 따라 의식이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지만,
개개인이 모여 이뤄진 어떤 집단은 어느 개인보다는 훨씬 깊게 익혀온 역사성이 두텁게 그 집단 속에 깔려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습에 따라 관이 이루어지지만, 집단적 사회나 국가는 끊임없이 길들여져 온 역사성 속에
개인적인 행동도 자연히 규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는 ‘習’이 ‘慣’을 이루나,
다른 하나는 ‘慣’이 앞서서 개인의 ‘習’도 이뤄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은 마치 물과 같은 것이라, 이성적으로는 꿰뚫은 깨달음을 얻었으나
바람이 그쳤다고 곧바로 물결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