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彔 (벗길 록)

나무^^ 2011. 8. 15. 07:50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11.14 (월) 영남일보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198] 록(벗길 록) : 어금니 같은 칼로 새기거나 벗기는 모양      (벗길 록 : 어금니 같은 칼로 새기거나 벗기는 모양)

 

 

                동식물을 막론하고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다 껍데기가 있다. 특히 개체를 늘리기 위한 종자들은

                그것들이 귀중한 만큼 단단한 껍질로 쌓여 있다. 우선 나무의 예를 들어보자.

                나무의 줄기나 가지들은 다 껍질로 감싸져 있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맺어진 열매는 그 자체가 껍질로 감싸져 있으며, 

                열매 속에 든 씨 역시 제법 단단한 껍질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상례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재목으로 사용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껍질을 제거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으며,

                열매들이 지닌 고유한 맛을 보려면 껍질을 벗기고 난 뒤에 과실 속을 맛보는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날짐승이나 길짐승들은 털을 벗기고 가죽을 벗긴 뒤 속살의 뼈를 분리시켜

                살코기를 먹을 수 있고, 어패류와 같은 생선도 일단 비늘이나 갑각을 벗긴 뒤에야 요리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식물을 막론하고 식재료를 만들 때에는 거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런데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을 잡아 다룰 때에는 반드시 벗겨야 할 부분과 벗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소나 돼지와 같은 것들은 모든 부분은 다 벗기지만 머리는 그대로 두고 벗기지 않는다.

                특히 가죽을 유용하게 쓰는 소의 경우에는 일단 머리는 먼저 잘라 버리고 나머지를 모두 벗겨

                가죽은 우선 저쪽으로 던져 놓고 살코기만을 주로 요리에 쓴다.

                왜냐하면 머리 부분은 이미 눈, 귀, 코, 입 등 구멍이 집중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벗겨 봤자

                가죽으로서의 효능가치가 없다. 또한 단단한 두개골이 받쳐져 있기 때문에 머리 가죽 자체는 별 쓸모가 없다.

                그래서 벗겨야 할 부분과 벗기지 않아도 될 부분을 가려내 어떤 물건의 껍데기를 좌우로 나누어 벗기는 모양을

                ‘彔’(벗길 록)이라 하였다. 그러하니 ‘彔’은 곧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一’로 나누고, 아래는 좌우로 손 써 벗긴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간단한 것은 손으로 벗길 수도 있으나 웬만한 것들은 칼로 벗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剝’(벗길 박)이라 하였고, 붓이나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짐승의 뼈나 나무 또는 쇠나 돌을 벗겨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기에 ‘錄’(새길 록)이라 하였다.

                 오늘날에 있어서까지 ‘記錄’이라는 문자를 어떤 내용을 ‘적다’라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記’(기록할 기)는 자신의 신변을 적는다는 말이며,

                 이에 비해 ‘錄’(기록할 록)은 단순히 신변에 관한 내용을 적는다는 말을 벗어나 단단한 물건에 ‘새기다’는 뜻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먼저 짐승의 뼈나 죽간, 목간, 금석에 단단히 새겼던 ‘錄’의 역사가 앞선 역사였고,

                 적어도 붓과 종이가 발명된 이후로 문자생활이 다변화되고 대중화되었던 때는 ‘記’의 역사가 뒤따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특별한 신분을 일컬어 ‘祿’(벼슬 록)이라 하였고,

                 나무의 껍질을 벗겨 얻어진 실과 같은 섬유질의 색깔을 ‘綠’(푸를 록)이라 하였다.

                 상대를 얕잡아 보아 슬그머니 벗겨도 별 탈이 없을 만한 상태를 두고 ‘한 存在’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벗기고 벗겨도 나 몰라라 한다거나 슬그머니 빼앗을지라도 그냥 가만히 있을 ‘한 存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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