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없는 잠
최문자
어젯밤 꽃나무 가지에서 한숨 잤네
외로울 필요가 있었네
우주에 가득찬 비를 맞으며
꽃잎 옆에서 자고 깨보니
흰 손수건이 젖어 있었네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이 되어 있었네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지상의 입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네
저물녘 마른 껍질 같아서 들을 수 없는 말
나무 위로 올라오지 못한 꽃들은
짐승냄새를 풍겼네
내가 보았던 모든 것과 닿지 않는 침대
세상에 닿지 않는 꽃가지가 좋았네
하늘을 데려다가 허공의 아랫도리를 덮었네
어젯밤 꽃나무에서 꽃가지를 베고 잤네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었네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잤네.
(언제가 동아일보에서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에서 읽은 시)
봄! 봄! 봄!... 얼마나 예쁜 꽃으로 가득한 세상인지 가는 데마다 절로 입이 벙긋 벌어진다.
며칠전 EBS 다큐 프라임 '곤충 밀리미터의 세계' ( 2014.1.6 ~1.7 밤 9 :50 ) 1,2부를 보았는데,
그 조용한 숲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암투는 오묘하고 신비로워 실로 경탄할 만큼 대단한
감동과 재미를 느끼게 했다.
아기손톱만 한 몇 밀리미터의 쪼그만 애벌레부터 생명지닌 모든 곤충들의 처절한 생존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생존이라는 사실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치를 배우며 철이들어가는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이는
경외감은 물론, 나라는 존재에게 품는 애정 또한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곤충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사의 격정적인 시간들을 보내며 주어진 생명을 살아낸다.
강자기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는 말이 있듯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 강함을 숭고함에 이르게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세상이 환상이라던 석가의 말씀, 홀로그램 우주라는 말이 점점 실감난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세상일진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집 앞에서부터 온 세상이 꽃잔치를 벌이는 때이다.
언젠가처럼 몸이 아파 병원에 있지 않고, 꽃구경을 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집앞 산에서 쑥을 캐고 진달래꽃을 조금 따다가 화전을 붙여 내놓으니 아들 왈,
'님이 있으면 더 좋았을 걸...'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내가 곧 님이다.' 나도 웃으며 대꾸한다.
내 존재의 진가를 알아주었던, 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흡족하다.
이제 님 못지않게 소중한 자유와 고운 친구들이 있으니 예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세상의 모든 님들이 누리는 어여쁜 봄을 나 역시 만끽하는 기쁨이면 족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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