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作)

나무^^ 2020. 6. 27. 14:30

 

이지적이고 또렷한 작가의 사진에서 풍기는 이미지대로 사물의 묘사력이 말할 수 없이 디테일하고 장황하기까지 하다.

장면 장면이 사진처럼 보일 만큼 자세하다. 마치 한 권의 책분량을 두 권의 책으로 깜쪽같이 늘려놓은 듯한 문장력이다.

내용인즉 한 소년이 엄마와 미술관에 갖다가 폭발사건이 벌어져 엄마를 잃고, 황금방울새가 그려진 명화 한 점을 가지고 나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테오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엄마를 오시라고 했고, 함께 학교 가는 길에 비를 피해 잠시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들렸다가 그만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 그림을 보면서 잠시 시선을 나누고 마음이 끌렸던 소녀와 할아버지.

사고 현장에서 피흘리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되고 소중해보이는 반지를 받는다. 또한 그의 지시로 작은 명화 한 점을 들고 나와 간직하게 된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죄책감과 상실감은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좋아했던 그 명화를 소유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이건 내가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야." 엄마가 말했다. 넌 절대 못 믿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보던 책에 이 그림이 있었어. 난 완전히 정신을 빼앗겨서 침대 옆 바닥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멍하니 이 그림을 봤지,

저 작은 새를 말이야!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복제화라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너도 깜짝 놀랄 거야.

처음에는 저 새를 좋아했어, 애완동물을 좋아하듯이 말이야. 그러다가 새가 그려진 방식을 좋아하게 된 거야."

아주 작은 그림으로, 전시회에서 제일 작고 제일 단순했다. 평범하고 창백한 배경에, 홰에 묶인 사슬을 발목에 찬 노란색 방울새였다.

 

열 세살 테오의 엄마를 잃은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긴여정이 불안불안하다.

위탁가정에 가는 대신 잠시 친구 앤디의 집에 머무르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상담치료를 받는다.  

'...비가 오고 나무에는 잎이 났고, 봄이 깊어져 여름이 되어갔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경적의 쓸쓸한 울음소리와 젖은 보도의 축축한 냄새에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인파 속 포장음식을 든 뚱뚱한 남자들과 조용하고 외로운 비서들이 지나가고 있을 것 같았다. 살아가기 위해서 억지로 고군분투하는 존재의 초라한 슬픔이 사방에 있었다. 몇 주 동안 나는 얼어붙은 채 봉인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샤워를 하면서 물을 최대한 세게 틀고 소리없이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에서 얼음이 깨진 틈으로 끌려나와 햇볕과 불타는 추위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건 피파였다. 미술관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 소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망설이다가 할아버지가 알려준 그 상점에 가서 동업자인 호비 아저씨에게 반지를 전해주고, 아래층 긴 복도를 지나 어두운 한 방에 누워 치료중인 피파를 보고 나온 테오는 달라졌다.

'기억은 생각하려고 애쓸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는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리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느낌, 강렬하고 달콤한 저류였다. 그것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교실에서, 통학버스에서, 침대에 누워서 안전하거나 유쾌한 무언가를 불안으로 가슴이 조여들지 않는 장소나 환경을 생각하려고 애쓸 때면, 나는 그저 미지근한 흐름 속으로 가라앉아 모든 것이 다 괜찮은 비밀의 장소로 휩쓸려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계피색 벽, 창유리에 맺힌 비, 광대한 정적, 19세기 그림 배경에 칠해진 광택제처럼 깊고 먼 느낌, 낡아서 올이 풀린 깔개, 그림이 그려진 일본 부채, 촛불 빛 속에서 깜박이는 옛날 발렌타인 카드, 어릿광대와 비둘기와 하트 모양을 장식한 화환, 어둠 속 파리한 피파의 얼굴.' 

 

집을 나갔던 아빠가 테오를 찾아왔다. 아빠와 동거녀 잰드라와 함께 사는 건 '별로 친하지 않은 룸메이트와 사는 것과 비슷했다.' 유동적인 느낌의 학교는 불안했고 조숙한 보리스와의 만남은 외로운 테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살았던 보리스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테오의 집에 많이 머무르게 되면서 그들은 형제처럼 친해진다. 술울 진탕 마시고, 약에 취하면서....

 

'시간 왜곡, 어떤 일을 두 번, 혹은 그 이상 보는 방법, 아빠의 의식, 아빠가 돈을 거는 전략, 아빠의 신탁과 마술이 모두 자신이 보지 못한 패턴에 대한 전방위적인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듯이. 델프트의 폭발 사건 역시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사건들의 일부였다. 그 복합적인 결과에 어지러워질 수도 있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야. 돈이 나타내는 건 에너지야, 알겠니? 돈은 그렇게 좇는 거야. 우연의 흐름을 따라서 말이야." 황금방울새가 한결같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무판은 무척 작아서  내가 빌린 미술책에 적힌 것처럼 A4 용지보다 아주 조금 클 뿐이었다. 하지만 제작용도와 실제 치수 같은 교과서적인 죽은 정보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림은 그림의 마법과 생생함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카메라에 눈송이와 푸르스름한 빛이 소용돌이 치는 그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순간과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순간이면 경기는,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는 더 이상 아무 상관없고 그저 술만 마시고 싶어진다. 나는 그림을 보면 항상 똑같은 한 지점에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언제까지나 존재할, 쏟아지는 찰나의 햇빛이었다. 방울새의 발목에 달린 사슬이 눈에 띄는 것은, 혹은 잠간 파닥이다가 항상 늘 같은 절망의 자리에 내려앉아야만 하는 것이 살아있는 작은 생물에게 얼마나 잔인한 삶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가끔뿐이었다.'

실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이 붙잡힌 황금방울새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것은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소설 속에서 이 그림에 빠졌던 엄마 역시 자신의 인생이, 마치 한 남자에게 붙잡힌 후 날아갈 수 없는 새처럼 느껴졌던 건 아닐까? 테오 역시 그 황금 방울새 그림에 사로잡혀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건 출구없는 좌절 속을 혜메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 또한 테오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좌절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아빠가 빚을 갚지 못해 괴한들에게 쫓기다, 어느 날 음주 운전 사고로 숨진다.

엄마가 아들 앞으로 만들어놓았던, 엄마의 친구외에는 모르는 돈을 가로채려고 했던 아빠였다. 그의 시체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서 테오는 친구 앤디와 엄마의 유해를 센트럴 파크에 뿌리면서 정말 괴로웠던 것은, 단지가 포르노 광고지에 싸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월석과 같은 색깔의 회색재가 5월의 황혼을 받으며 소용돌이칠 때 내 눈에 들어온 문구는 '상냥한 아시아 아가씨들'과 '축축하고 뜨거운 오르가슴'이었다. 

테오는 살갑던 강아지를 안고 아빠와 살던 집에서 뛰쳐나와 우여곡절( 강아지를 태워주지 않는 버스여행) 끝에 인간 골동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비 아저씨를 찾아간다.      

'... 완벽한 정적 속에서 아저씨는 일에 파묻혀서 베니어판에 증기를 쐬어 구부리거나 끌을 가지고 탁자 다리에 수작업으로 줄무늬를 넣었다. 행복하게 몰두한 아저씨의 기운이 작업장에서 새어 나와 겨울이라 나무를 땐 화덕의 온기와 함께 집안에 퍼졌다. 호비 아저씨는 무던하고 다정했다. 아저씨는 태평하고 무디고 겸손하고 온화했다. 호비 아저씨는 말을 걸면 처음 한두 번은 못 알아들었다...'

 

조기 대학프로그램에 참여해 학교를 다니고 파파의 향기가 스민 곳에서 생활하며 웰티 할아버지의 책들을 읽었다.

호비아저씨가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된 가구에 대한 안목을 넓혀갔다. 비공식적인 더부살이였다.

엄마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찾아갔다가 재건축을 위해 철거된 공사현장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안정적이고 변함없는 정박지 중 하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나빴다. 엄마와 아빠를 알고 지내던, 늘 친근하게 지냈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가 어릴 적 살던 곳을 그리워 하는 것은 오랫동안 친근했던 공간과 그곳에서 익숙했던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테오는 적절한 가격이라는 게 없는 골동품 거래의 눈을 뜨면서, 경제관념이라고는 없는 호비아저씨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리스와 좀도둑질을 해보았던 그는 적당히 사기를 치는 거래를 하면서 부당한 수입을 올린다.

'... 다들 육체적인 증상이 힘든 게 아니라고, 나처럼 약을 한지 얼마 안됐어도 '꿈도 못 꿔본' 우울증이 찾아올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거울 위로 몸을 숙이면서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내기할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울증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범위를 훌쩍 넘어선 슬픔과 불쾌함을 모두 아우르는 추락이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과 인간의 모든 노력이 정말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웠다. 생물학적 질서에 대한 몸서리쳐지는 혐오감, 노화, 병 죽음,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들. 아름다운 사람들도 곧 썩기 시작할 물렁물렁한 과일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여전히 섹스를 하고 번식을 하고 무덤의 새로운 먹이를 내질렀다. 그것이 구원이나 선, 또는 아무튼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라는 듯이 고통에 시달릴 새로운 존재를 점점 더 많이 생산했고 무고한 존재들을 승자없는 게임에 끌여들였다...'

 

그러나 부당한 수익은 꼬리를 잡히는 법, 한 고객의 협박이 황금방울새 그림에게 까지 미치자 테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피파는 후원자인 이모곁으로 가게 되고, 테오의 삶은 엉망으로 꼬인다. 그는 누구에게도 틀키지 않을 비밀스러운 장소에 싸고 또 싼 그림을 안전하게 맡긴다.

난데없이 어릴 적 친구였던 엔디가 배사고로 죽은 것을 알게 되고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여동생과 가까워진다.

피파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기고 그 이야기를 듣는 테오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동안 헤어졌던 보리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림에 관한 그의 고백을 듣자 테오는얼이 빠져버린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도 예외가 없는 법이다. 좀 인위적인 느낌으로 흘러가지만 스릴감 넘치고 설득력이 있다. 테오는 앤디의 여동생 킷시와 약혼했지만 그녀는 정략적이다.

보리스에게 휘말려, 정당방위였지만 살인까지 하게 된 테오는 순도높은 약을 하고 호텔에서 정신을 잃는다.

'... 한 시간 이십분의 고뇌를 던 것이다!... 베다의 평온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걱정이라니! 그건 너무 시간 낭비다. 성전은 모두 옳았다. 확실히 걱정은 원시적이고 영적으로 미숙하다는 표시였다... 노인의 번쩍이는 눈. 이것이 지혜다. 사람들은 몇 세기 동안이나 분노하고 울고 물건을 파괴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삶에 통곡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모든 쓸데없는 슬픔이 무슨 소용이지? 들판의 백합을 보라.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감각을 가진 존재인 우리 인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진 것이 아닌가?...'

 

테오와 보리스가 약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별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 것 같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차이인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약을 끊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통념과 달리...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약간의 소란을 피운 다음 죽어서 땅 속에서 쓰레기처럼 썩는다. 시간은 모든 인간을 아주 빠르게 파괴한다. 하지만 죽음을 모르는 물건을 망가뜨리거난 잃는 것-시간보다 더 강력한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독특한 형이상학적인 단절, 놀랄 만큼 새로운 절망이었다.'

역사가 기록되는 한 사람들은 그림을 기억하고 애도할 것이라고 믿는 테오는 그림을 잃으면서 마음 속 불을 하나 껐다.

마지막으로 피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황금방울새의 존엄성에 집착한 자신을 대면한다.

 

'... 중간지대에 들어서야만,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사이에 존재하는 색색의 경계에 발을 들여야만 이 세상에 살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혼잣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스스로에게 노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하지만 그림은 또한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갈 때, 우리가 유기체에서 생겨나 굴욕적이게도 다시 유기체로 돌아갈 때, 죽음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영광이고 특권이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재앙과 망각이 뒤따랐지만-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불멸인 한 (그것은 불멸이다) 나는 그러한 불멸성에 밝게 빛나는, 변치 않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것들을 문자 그대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고 시간의 폐허 속에서 다음 세대를 향해, 또 그 다음 세대를 향해 큰소리로 멋지게 노래를 불러온 사람들의 역사에 나 자신의 사랑을 더한다.'

 

                           Carel Pietersz. Fabritius (카렐 파브리티우스)

 

[출처] 소설 '황금방울새'와 17C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빛낸 거장들 :: 프란스 할스 / 렘브란트 / 카렐 파브리티우스|

 

1650년경부터 델프트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2년 뒤 화가 길드에 가입한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었던 카렐 파브리티우스에게 어둠이 드리워진다. 1954년 10월 12일, 네덜란드의 델프트 1/4을 통째로 날려버린 끔찍한 화약고 폭발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델프트에서 친구 사이먼 데커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던 카렐 파브리티우스도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그 사고로 인해 그의 작품 절반이 넘게 소실되었는데 약 12점 정도만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세로 13인치, 가로 9인치 정도로 A4 용지보다 아주 약간 큰 이 작품 (1654)은 소설 '황금방울새' 덕분에 2013년 전시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 화제의 작품으로 급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