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나카노 교코
옮긴이 이연식
출판사 세미콜론
서문에서 작가는 육체적 죽음과 함께 정신적 죽음의 광기 또한 공포스러움을 언급한다. ‘인간은 어리석은 데다 자신들이 만든 불완전한 사회적 제도에 휘둘리면서 편견, 빈곤, 차별을 생산하고,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천천히 죽음을 향해 끌려 들어간다’인간은 안전한 장소에서 죽음의 공포를 엿보며 살아있음을 즐기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거다. 글을 흥미롭게 읽으며 그림 감상을 잘 하였다.
그림 1. 드가의 <에투알> (1878년 파스텔 60×44cm)
아름다운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드가는 정작 무용수에게 따뜻한 교감을 느끼고 있지 않음을 무용수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다고 한다. 무대 뒤쪽에서 쳐다보고 있는 검은 옷의 신사는 발레리나를 돈으로 산 후원자이다. 그림은 무용수들의 비천함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작가는 그 사실을 두렵게 느꼈다. 나 역시 그림의 설명을 읽고 알았다. 드가가 그린 다른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 에드가 드가 <막> (1880년경 파스텔 27.3×32.4cm)
그림 2. 틴토레토의 <수태고지> (1582-1587년 캔버스 유채 422×545cm)
성령의 암시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놀라는 몸짓이 드러나는, 생생하고 정밀하게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이다. <마리아의 일대기>라는 8점 연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그 당시 행해지던 초야권을 언급한다. 공감되는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와는 완전 다르게 그린 점을 비교 설명하였다.
·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840년경 목판에 템페라 194×194cm)
그림3. 뭉크의 <사춘기> (1895년 캔버스 유채 151×110cm)
원래 제목이 <밤>이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그렸다. 사람들은 사춘기를 맞은 소녀의 불안과 두려움을 여러 가지로 해석했다. 화가는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겪은 불안과 광기 어린 공포를 그림 속에 투영하였다. 그림 속 커다란 그림자는 실존의 불안을 의미하고 소녀의 신체적 변화 역시 불안을 야기한다. 육체적 변화를 신비스러운 성숙으로 보기보다는 두려움으로 인식한 화가는 실제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건강을 되찾았다.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한 채 여든한 살까지 장수했다. <절규>를 비롯한 그의 인상적인 그림들은 모두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운 광기에 싸여 고통 속에서 그린 거다. 예술과 고통은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 에드바르드 뭉크 <절규> (1883년 마분지에 템페라와 파스텔 91×73.5cm)
그림 4. 크노프의 <버려진 거리> (1904년 파스텔과 연필 76×69cm)
‘색이 누렇게 바랜 사진같다.’고 한 이 그림은 몽환적이고 황량하다. 플랑드르의 도시 브뤼헤를 그린 파스텔화이다.
사람을 거부하는 듯 모든 창문은 닫혀있고 현관문에는 손잡이도 없다. 그리고 저택은 천천히 바다를 맞이한다. 13C에서 15C까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도시가 시간이 흐르면서 항만에 토사가 누적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따라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로 남게 되었다.
벨기에 상징주의 대표적 화가인 크노프는 소설가 ‘조르주 로덴바흐’의 <죽음의 도시 브뤼헤>의 내용에 강력하게 끌렸다. 몹시도 사랑했던 여동생이 죽고 나서 읽은 이 소설은 죽음에 붙들린 화가의 마음을 그림에 투영시켰다. 여동생을 모델로 한 그림들은 그가 동생과 얼마나 밀착된 관계였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올린 아래 그림도 분위기가 법상치 않다.
· 페르낭 크노프 <예술 또는 스핑크스, 또는 애무> (1896년 캠버스 유채 50.5×150cm 벨기에 왕립 미술관)
그림 5. 부론치노의 <사랑의 우의> (1545년 캔버스 유채 146×116cm)
16C 유행했던 우의화(寓意畵)는 감상자에게 지적유희였다.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은 에로티시즘의 근원인 큐피드의 화살, 황금 사과를 든 성숙한 여인과 양성구유인 듯한 생김새의 소년이 뒤엉켜있다. 관능적인 자세와 달리 비너스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뒤에 보이는 입을 벌린 여인, 흰 수염을 기른 대머리 노인의 움켜쥔 우람한 팔, 그의 어깨에 난 날개, 얼굴 바로 옆에 놓인 모래시계, 아래쪽 비둘기와 가면 등등 많은의미를 품고 있다. 사랑, 질투, 기만, 회롱 등을 의미하는 인물들과 물건들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사랑의 큐피드는 비너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므로 이 둘은 모자상이다. 따라서 애욕과 쾌락에의 메너리즘을 드러낸다고 할 수있다. 아름다운 이 그림 속 의미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림 6. 브뤼겔의 <교수대위의 까치> (1568년 캔버스 유채 46×50cm)
농민들을 즐겨 그린 브뤼겔이 숨을 거두기 전 해에 그린 그림이다. 화가는 어느 그림에나 비유와 상징 등 숨은 메세지를 많이 담아 여러 가지 해석을 하게 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교수대 가까이 있고 까치 한 마리가 오두마니 앉아 있다. 유럽에서는 흑과 백색의 까치를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이중성으로 치부하며 마녀나 악마의 새끼로 여겼다.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서 나쁘게 전해지는 까치를 밀고가 횡행하던 시대의 상징으로 그림 속에 표현하였다.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 교수대처럼 가까이 있는 상황을 까치가 내려다 보고 있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교수대가 있었다니 언제 삶이 곧 죽음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 피터르 브뢰겔의 <농민 혼례의 춤> (1566년경 목판에 유채 119.4×157.5cm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그림 7. 르동의 '키클롭스' (1898-1900년 캔버스 유채 64×51cm)
꽃이 만발한 들판, 알몸으로 누워있는 여인, 뒤쪽 바위산에서 훔쳐보는 외눈박이 거인, 꿈속의 장면처럼 모호한 가운데 무서운 느낌이다.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처럼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만 보는 유아적인 외눈이다. '키클롭스'란 둥근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내인 대지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지하세계에 갇혀있던 대장장이였던 키클롭스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가 그림 속 거인이다. 누워있는 여인은 바다의 림프인 아름다운 갈라테이아이다. 그녀에게는 연인이 있었고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그가 던진 커다란 돌로 아키스는 죽고 여인은 바다로 피했다. 즉 이룰 수 없는 관계에 집착하는 비뚤어진 사랑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남의 손에서 고독한 성장기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화가에게 어머니는 외눈박이 사랑처럼 비추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58살 때 그렸다는 이 그림에서부터 그의 고독하고 어두웠던 내면이 변하기 시작하는그림을 그린다.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은 그렇게나 길다.
· 오딜롱 르동 <에드거 포에게ㅡ무한대로 여행하는 이상한 풍선과 같은 눈> (1878년 목판 42.2×33.2cm 뉴욕 현대미술관)
그림 8.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1482-1483년 템페라 84×142cm)
보티첼리 전성기 때 그린 것으로 긴 네 개의 페널로 이루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바닷가 숲 속에서 벌어지는 배경으로 첫 번째 패널은 알몸의 여인이 흰 개에 엉덩이를 물려쓰러지고 백마를 탄 기사가 검을 쳐들고 달려오는 모습이다. 혼자 떨어져 있던 청년이 이 무서운 장면과 맞닥뜨려 나뭇가지를 들어 개를 쫒으려 한다. 두 번째 패널은 알몸의 여인이 죽어서 길게 쓰러져 있고 말에서 내린 기사는 그녀의 등을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개들에게 준다. 기겁한 젊은이는 내빼려한다. 이 그림인 세 번째 패널에서는 더욱 수수께끼이다. 호화로운 연회가 한창인 가운데 벌어진 참사에 놀라 사람들이 일어나고 두 팔을 벌려 올린 젊은이는 흰 옷의 여인을 주시하며 무엇을 말하는 듯하다. 네 번째 패널에는 바다도 숲도 없고 화면의 절반 이상을 당당한 건축물의 기둥이 차지하고 대축연이 벌어지고 있다.
즉 시간의 흐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카치오의 소설집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열 명의 남녀가 열흘 동안 매일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100편의 이야기 중 닷새날 여덟 번째 이야기가 그림의 원전이다. 붉은 바지를 입고 서있는 젊은이 나스타조이가 사랑하는 파울라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가학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끔찍한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내용을 모르면 알 수없는 그림이었다.
· 산드로 보티첼리 <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네번째 패널 (1482-83년 템페라 84×142cm 개인소장)
그림 9. 고아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0-1824년경 캔버스 유채 146×83cm)
끔찍한 이 그림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노인' 크로노스가 아비 우라노스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누이동생이자 아내였던 레라가 낳는 아이를 모두 집어삼키는 이야기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섯번째 아이인 제우스에게 살해 당한다. 사투르누스는 바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크로노스와 동일시된다. 루벤스가 그린 동일한 제목의 유려한 그림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이 역동적이고 훨씬 무섭다. 풍경화가에서 시작해 궁정화가가 된 고야는 격동기의 스페인을 경험하며 46살에는 청력을 잃을 만큼 심하게 앓았다. 그 후 '귀머거리의 집'이라 불리던 별장에 은둔하며 지옥같은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 그림을 포함해 '검은 그림'이라고 불리는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고야는 전쟁의 피바다, 이단 심문의 고문실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처참한 공포를 그림으로 분출하며 그의 내면적 고통과 분노를 견디고자 했다. 문명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이러한 비참함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짐승들인 것이 분명하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636-38년 캔버스 유채 180×87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그림 10.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1878년 캔버스 유채 200×162.5cm)
이 무시무시한 살육의 사실적인 장면이 마치 신의 뜻이기라도 한 듯 칼자루가 십자가형으로 그려졌다. 자다가 습격을 당한 이 사내는 적장의 지휘관 호로페르네스이고 가해자는 이스라엘의 여걸 유닛이다. 다른 화가들의 유닛이 적장의 밴 머리를 들고있는 그림 등 여러가지 장면의 그림들이 있는 가운데 이 그림처럼 생생하고 공포스럽게 표현 된 것이 없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이 그림은 여성 화가가 금기시되던 시대였으므로 오랫동안 묻혔다가 재평가 받았다. 그녀가 그림 속 유닛을 자신의 분신처럼 팔찌에 서명을 남긴 것은 그녀가 겪은 파렴치한 애인의 배신과 고문까지 당한 재판 때문이었다. 그녀는 재판에서 이기고 상대는 징역을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치심과 함께 고통을 겪었다. 다행히 화가인 아버지의 지인과 결혼하여 피렌체로 이주해 그후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주문자의 의도를 능가하는 이 그림을 그려 세간의 시선을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그녀의 남아있는 단 한 점의 그림이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생생히 전달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유니트는 살해하는 여인답지 않은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1598년 캔버스 유채 144×195cm)
그림 11. 홀바인의 <헨리 8세의 초상> (1536년경 캔버스 유채 221×149.9cm 레스터셔 비버 성 미술관)
두명의 아내를 단두대로 보낸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는 '천일의 앤' 영화로도 유명하여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40대 후반의 그의 모습은 위압적이고 두드러진 장식들을 과시하는 차림으로 위풍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스커트 중앙에 모피로 만든 코스피스는 그 당시 유행했던 남성의 심볼이다. 스위스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인문학자 에라스무스 등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려 알려진 그는 잉글랜드로 와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의 <대사들> 그림이 유명하다. 또 <클레베스의 앤> 초상화도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왕은 그녀의 실물을 보고는 실망하여 내쫓고 화가 역시 왕에게 내쳐졌다. 아래 그림은 수채로 이토록 정밀하게 그릴 수 있음이 놀랍다.
· 한스 홀바인 <클레베스의 앤> (1539년경 양피지 캔버스에 수채 65×48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12.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 (1953년 캔버스 유채 153×118cm 디모인 아트센터)
생전 처음보는 무서운 그림이다. 스페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을 인용한 것이다. 기독교의 전례에 따르면 보라색은 속죄를 의미한다. 붉은 상의를 보라색으로 바꾼 건 의미심장하다. 황금줄에 매인 듯한 의자, 마치 교황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길게 그어진 세로줄들, 비명을 지르는 듯 크게 벌린 입, 그는 종교를 앞세운 최고 권력의 교황이 저지르는 악행을 혐오하여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교황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고 했다고...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 (1650년경 캔버스 유채 141×119cm)
그림 13. 호가스의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1742년 캔버스 유채 160.5×181cm 런던 내셔널 겔러리)
* 부유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그림이지만 귀족 어른들처럼 차려입은 아이들이 부자연스럽다. 아이들이 누려야할 자유스러움이 없는 분위기가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숨겨진 주제는 '메멘트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장남이 새장 속 새를 보며 음악 상자의 노래를 듣는 것은 소년이 커서 난봉꾼이 될 거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새는 여자를, 음악상자는 회화에서 악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그림은 예지화(豫知畵)처럼 사신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여장을 한 어린 토마스가 죽고만다. 화가는 6점으로 이루어진 <창녀 일대기>, <방탕아 일대기>에 교훈적인 이야기를 불어넣음으로 명성을 떨치었다.
· 월리암 호가스 <창녀 일대기 중 6번째 이야기> (1732년 동판화 32×38cm)
그림 14. 다비드의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 (1793년 종이 펜과 잉크 파리 국립 도서관)
*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1793년 가을, 군중들의 조롱을 받으며 짐마차에 실려 형장으로 가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린 이 스케치는 주변의 생략으로 더욱 잔인하고 충격적인 느낌이다. 3년 간의 극심한 마음고생으로 38살보다 훨신 더 나이들어보이는 그녀지만 곧곧하게 앉은 자세는 천성적인 긍지가 서려있고 꼭 감은 눈과 굳게 다문 입매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화려함의 대명사처럼 부귀를 누리던 그녀의 최후는 삶이 얼마나 무상한지 드러낸다. 그 시대 가장 위대했던 화가 다비드는 철저히 권력자편에 서서 패자의 마지막을 그렸지만 나폴레옹의 실각후 자신도 망명지에서 죽음을 맞는다.
·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의 <장미를 든 마리 앙투아네트> (1783년 캔버스 유채 113×87cm 런던 내셔널 겔러리)
그림 15.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1515년경 목판에 유채 양쪽 232×75cm, 중앙 패널 269×307cm 프레델라 76×341cm 콜마르 운터린덴 미술관)
* 나병 비슷한 병인 '불'(매각병) 에 걸린 신자가 간신히 이제하임에 도착해 성 안토니우스 수도회 성당에 들어가 본 제단화이다. 처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위안을 받게 되는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온다. 왼쪽 패널에 그려져 있는 것은 페스트로부터 인간을 지켜준다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이고 오른쪽은 성 안토니우스이다. 아래쪽은 십자기에서 내려진 예수가 매장되는 장면이다. 일요일에는 양쪽 패널을 열어둔다. 그 내용은 '수태고지',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 '성모자',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아래 그림은 이젠하임 제단화를 열었을 때 오른쪽 패널이다. 기독교인의 신앙이 그토록 오랜 세월 절대적인 믿음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사실이 더욱 무섭다.
·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리스도의 부활> (1783년 목판에 유채 269×141cm)
그림 16. 조르조네의 <노파의 초상> (1508-10년 캔버스 유채 69×60cm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 르네상스 전성기의 베네치아 화가가 그린 이 두 가지 그림은 퍽 대조적이다. '시간의 흐름'이라고 쓰여진 종이를 쥐고 있는 노파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노골적이다.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함에 있어 이보다 더한 대비가 없을 것이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늙음은 추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진행이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는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고 육체는 노쇠해져도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는 성숙해지는 정신이 늙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1510-11년 캔버스 유채 108.5×175cm 드레스덴 겔러리)
그림 17.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1885년 캔버스 유채 200×254cm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 러시아 사실주의 거장의 이 커다란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건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전제군주 이반 4세가 죽어가는 황태자를 붙들고 절망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피묻은 긴 지팡이는 황제가 휘두르던 지팡이이다. 즉 광기에 휘싸인 황제가 아들을 죽인 우발적인 사건을 그린 거다. 작가는 일본 '노부나가'와 황제를 비교 설명하며 역사화의 포장으로 당대를 비판한 것이라 말한다. 전람회에 이 그림을 발표한 지 5년 후 그는 핀란드로 망명하였다. 황제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체제로 바뀐 소련이 돌아올 것을 종용했지만 끝내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표현하였다.
젊은 시절 화가가 그린 출세작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은 핍박받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 일랴 레핀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1870-73년 캔버스 유채 131.5×281cm 러시아 미술관)
그림 18. 코레조의 <가니메데스의 유괴> (1531년경 캔버스 유채 163.5×70.5cm 러시아 미술관)
*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의하면 트로이의 왕 트로스의 아들인 기니메데스는 양치기였다. 종교적으로 양치기는 지도자를 뜻한다. 비범한 존재이자 미소년인 기니메데스를 음탕한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해 유괴해서 올림푸스에서 신주(神酒)인 넥타르의 시동으로 삼았다. 이는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이야기라고 한다. 반론으로는 '지식을 만끽하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어원에 따라 육체가 아닌 정신을 사랑한 것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미켈란젤로, 램브란트, 모로 등 여러 화가가 그린 그린 중 코레조가 신화에 가장 충실하게 그렸다. 그의 최고 걸작인 <제우스의 사랑 이야기> 연작 중 하나이다. <제우스와 이오>가 짝을 이룬다. 카를 5세 대관식을 축하하는 선물로 만토바 공작이 주문해 왕궁에 걸었다. 이 그림이 무서운 이유는 당시 이 그림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미성년자들을 향한 욕망 때문이다.
· 코레조 <제우스와 이오> (1531-32년 캔버스 유채 163.5×70.5cm 빈 미술사 박물관)
그림 19.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 (1819년 캔버스 유채 491×716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 1816년 프랑스 대혁명 후 다시 정권을 잡은 루이 18세에 의해 복귀한 귀족 쇼마레가 함장이 되어 서아프리카 식민지 세네겔로 병사와 이주자를 옮기는 항해 중 배가 좌초되자 함장과 고급관리와 장교들은 구명정을 타고 도망가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뗏목위에 버려졌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13일이나 표류하다 살아난 사람은 147명 중 열 명에 불과했다. 그 동안에 벌어진 살육의 처참함을 암시하는 그림이다. 이십대 청년이었던 제리코는 막대한 유산 덕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는 생존자를 만나 상세한 인터뷰를 하고 뗏목 모형, 밀남인형 등을 만들어 놓으며 그림을 완성했다. 메뒤즈호 사건 3년 만에 낭만주의 회화의 개막을 알리는 걸작이 탄생되었다. 피라미드 구도 속에 죽은 이, 반쯤 죽어가는 이, 병자들, 희망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 등을 표현하였다. 혹평과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가 흥행에 성공한 이 작품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판화로 제작되어 세계 각국으로 팔려나갔다. 말을 좋아했던 그는 결국 말에서 떨어져 32살 젊은 나이에 숨졌다. '아직 아무 것도 하질 못했어' 라고 소리치며... 이 거대한 그림 하나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 테오도르 제리코 <잘린 머리의 습작> (1817년경 캔버스 유채 50×61cm 드레스덴 옛 거장 미술관)
그림 20. 라 투르의 <사기꾼> (1647년경 캔버스 유채 106×146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 검은색 배경에 적당히 도드라진 붉은 색이 정지된 듯한 화면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이 외에 인물들은 모두 곁눈질을 하면서 한패인 듯 보인다. 붉은 모자를 쓰고 새하얀 앞가슴을 드러낸 여자의 표정은 끔찍하리 사악함이 느껴진다. 이 시절 파리에는 공영도박장이 40여개나 되었다니 창관으로 가는 길에 여인의 꾐에 빠져 들어온 순진한 청년은 제물이 될 게 뻔하다. 화가는 상당한 재산가였고 폭력을 휘두르는 대금업자였으며 평판이 좋지 않았다. 30년 전쟁, 약탈, 박살, 페스트가 만연했던 시대를 살아가던 그로서는 인간을 불신하며 이와 같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미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카라바조 <카드 사기꾼> (1594년 캔버스 유채 94×131cm 포트워스 킴벨 미술관)
이 책은 다른 그림들과 비교 감상하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들을 실제로 본다면 더 자세히, 묘사된 부분들이 실감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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