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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찍었더니, 아이보리색 흰벽이 이렇게 시커멓네!
이 가방은 우리나라 유명 회사의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 가방이라 부르고 싶은 데는 이유가 있다.
퍽 알뜰한 어린 친구가 몇 년간 소중히 사용하던 가방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길이 묻어있는, 그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가방이다.
좀 낡은 것을 미안해 하면서 내밀던 그녀의 마음에서, 마땅히 주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지 못해
시간을 보내다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들은 흔히 옷에 맞춰 가방도 들기 때문에 여러 개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나 역시 여러 개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데도 기쁘게 받았다.
돌아와 건조한 가죽에 기름칠을 하고 붉은 색 가죽약을 바르니 한결 보기 좋았다.
구두나 가방을 새 것처럼 때빼고 광내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알아보자니 귀찮고...
비싼 명품이라고 해서 모두 수년간 오래 쓰는 것은 아니다.
사용하던 사람이 변덕이 나면, 또는 유행을 타면 그만 들인 돈이 무색해지고 마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태리제 어머어마한 가격의 명품 가방들의 중요한 생산 부분을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자들이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의 하나로 비싼 명품을 사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나,
분명 형편이 안 되는데도 명품을 사용해야 자신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짝퉁이 범람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십여년의 세월이 흘렸는데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으며, 친구의 손길까지 느낄 수 있다면
이 가방은 분명 명품대열에 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친구들끼리 이렇게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거나, 실증이 난 물건을 선물한다면,
환경보호를 위한 물자절약은 물론, 우정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근데, 전에 내가 알던 아주 깔끔한 한 친구는 어떤 물건이든지 절대 중고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활철칙을 세우고 살던 이도 있었다. 이런 이에게 쓰던 물건을 내밀 수는 없다.
아마 말없이 받아가 내동댕이를 치면서 화를 냈을테니까...
그녀는 좀 생활비가 많이 들겠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성격처럼 외롭고 고고하게? 지내던 그녀는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지...
여행길에서, 또 우연하게 만난 친구들인데 가끔 모여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다음 모임을 약속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행구야! 검은 가방 맘에 들어?"
"시미야! 고마워! 잘 쓸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