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0)
2009. 2. 23 (월) 영남일보
풀을 나타낸 글자가 하나 있으면 풀싹이 돋는다는 뜻에서 '풀돋을 철'이라 하였고,
겹쳐 있으면 풀 자체를 나타내는 '艸'(풀 초)라 하고,
셋을 겹쳐 놓으면 초목을 가꾸는 밭이라는 뜻에서 '卉'(풀밭 훼)라 하였다.
또 '艸'를 위 아래로 겹쳐 놓으면 자연으로 만들어진 풀밭이라는 뜻에서 ''(풀밭 망)이라 하였다.
해와 풀은 인연이 깊다. 풀 위에 해가 돋아나면 이른 아침이 되기 때문에 '早'(이를 조)라 하였고
해가 저물어 손가락이 안보일 정도가 되면 하던 일도 할 수 없다는 뜻에서 '莫'(말 막)이라는 부정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막상 해가 기울어 날이 저문 상태는 곧 시간(日)에 관한 상태를 나타낸 것이어서
'莫'에 '일'을 덧붙여 '暮'라 쓰게 된 것이다. '莫'은 본디 '저물다'라는 뜻을 지닌 '暮'의 본디 글자다.
부정의 뜻이 강한 '莫'에서 많은 글자가 불어나게 되니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肉'(고기 육)을 붙여 보니 살코기가 아닌 꺼풀이 되기로 '膜'(꺼풀 막)이요,
'土'(흙 토)를 붙여 보니 단순한 흙더미가 아닌 무덤이기로 '墓'(무덤 묘)요,
'心'(마음 심)을 붙여 보니 자나 깨나 마음속에서 잊지 못한다는 뜻으로 '慕'(사모할 모)가 되었다.
물이 전혀 없이 메마르면 살아갈 길이 아득하기로 '漠'(아득할 막)임과 동시에
뜨거운 모래밖에 없는 '사막'(沙漠)이라는 말이요,
'木'(나무 목)을 붙여 보니 실은 나무가 주된 것이 아니라 어떤 알속을 빼어내기 위해 임시로 만든 나무틀을 뜻하니
'模'(나무틀 모)가 된 것이다.
기다란 베로 창문을 가리게 마련이니 '帳'(휘장 장)이라 하였고,
휘장을 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막는다는 뜻이 있으니 휘장과 비슷한 뜻을 지닌 가리개를 두고
'幕'(장막 막)이라 하여 '帳'과 '幕'을 아울러 쓰고 있다.
똑같이 어떤 것을 두고 모른다고 할 때에 모르는 까닭을 살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알 수는 있었을지라도 미처 알지 못한 것을 일러 '無知'라 하는데 반하여
잘 살피면 알 수도 있지만 굳이 따져 가면서 알려 들지 않는 것을 일러 '莫知'라 한다.
따라서 흔히 상대하기 힘든 상대를 두고 '無知莫知'하다는 말을 쓰니, 다 같이 곤란한 상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참을성을 발휘하여 대화를 통해 소통의 기회를 갖는다면 별 어려움 없이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無知'쪽에 서 있는 사람이며, '莫知'쪽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無知莫知'의 원인은 무엇인가?
믿지 않고 의심만 하니 모를 수밖에 없고, 나만을 생각하고 남을 바라보지 않으니 나도 남도 둘 다 알 수 없고,
배워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지나치는 게으름만 지니니 도대체 알 리가 없다.
그러니 '無知'를 깨끗이 씻고, '莫知'를 얼른 벗어나야 서로 통하는 인간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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