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1)
2009. 3. 2 (월) 영남일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획을 그은 모양인 '丿'(삐침 별)을 두고 어떤 물건을 나누는 모양 가운데 하나로 썼다.
즉 어떤 물건의 가운데를 반듯하게 나눈 것을 '中'(가운데 중)이라 한 반면,
평면적으로 가운데를 나누는 것과 달리 입체적으로 나눈다는 것을 ' '이라 했다.
또 큰 것을 가운데를 뚫어 좌우 양쪽으로 나눈 것을 일러 '小'(작을 소)라 하고,
다시 이 작은 것을 다시 나눈 것을 일러 '少'(적을 소)라 하여 '小'와 '少'를 각각 '大'나 '多'와 상대되는 뜻으로 쓰여졌다.
이처럼 본디 '小'보다 '少'는 더욱 작은 것을 뜻한 글자였다.
결과적으로 나누어진 것은 '나누다'( )라는 뜻을 좌우로 엇갈려 놓아 '八'(여덟 팔)이라 하였다.
사람의 몸에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왼'팔'과 오른'팔'이기 때문에 좌우로 나눈 것을 '팔'이라고 읽고,
둘로 나눠지는 짝수 중에서 가장 큰 수가 '여덟'이기에 뜻을 여덟이라 붙인 것이다.
둘로 나눠지는 짝수를 二, 四, 六, 八, 十이라 하나 '十'이라는 수는 짝수도 아니고 홀수도 아닌 '완성'을 뜻하는 수로
여겨왔기 때문에 짝수의 가장 큰 수는 '八'일 수밖에 없다.
나눌 때는 대개 칼로써 나누게 마련이다. 그래서 '刀'(칼 도)와 '八'(나눔)을 상하로 붙여
'分'(나눌 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위대한 발상이라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단독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며, 오직 서로가 모여 서로를 도와가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적절한 사이를 두고 모여 사는 모듬 형태를 두고 '인간사회'(人間社會)라 일렀다.
일찍이 공자가 부르짖은 '仁'(어질 인)도 원천적으로 따져보면 사람과 사람은 서로 참다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즉 사람은 사람끼리 서로 아끼며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는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가며 살아가야 서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곧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서고자 하면 먼저 남을 세울 것이요, 내가 통달코자 하면 먼저 남을 통탈시킬 것이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라는 적극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이 땅에 '仁'의 종자를 심고 가꾸어
어진 세상을 꽃피우고자 하였던 것이 공자의 이상이었다.
이처럼 더불어 잘 살아나갈 좋은 방법이 불을 보듯 훤히 밝은데 현실은 왜 그렇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사는 예나 지금이나 '수'가 맞아야 이뤄질 수 있다.
'수'를 저버리고 노력한 '수'보다는 더 먹으려 들거나, 손 하나 까닥하지도 않고 통째로 먹으려 드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항상 혼란스럽다. 노력한 만큼의 '몫'(分)이 곧 얻어야 할 '수'(數)인데도 불구하고
도에 넘치게 부리는 욕심이 바로 '分數' 밖의 일이 되기로 언제나 아우성이 터지고 길바닥에 먼지가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제몫만 제대로 찾아 만족할 줄 알면 혼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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