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9 (월) 영남일보
땅위에 돋아난 풀을 본뜬 글자는 '艸'(풀 초)인데 여기에서 좌우 한 쪽을 떼어 낸 글자는 풀이 돋아난 모양을 본뜬 글자로 '풀 돋을 철'이라 한다. 흔히 말하는 '철부지'라는 말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고 '사철'이라고 하는 말은 모두 이 글자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 해를 넷으로 나누어 '사철'이라 함은 땅위에 돋아난 풀이나 나무의 상태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이런 뜻에서 '사철'의 의미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대지의 물기를 말리는 아지랑이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풀싹을 본뜬 '卉'(풀밭 훼) 밑에 '屯'(머물 둔)을 쓰고 그 아래에 햇살을 뜻하는 '日'(날 일)을 붙여 '春'(봄 춘)이라 하였다. 따라서 '봄'이란 겨우내 안보였던 '풀싹'과 '아지랑이'가 보인다는 '보임'의 준말이 곧 '봄'이다. 그 꽃이 뚝뚝 떨어진 그 자리에 열매가 열어 무럭무럭 자란다는 뜻에서 열매가 '열음'이 곧 '여름'이다. 즉 종족보전에 따라 열기는 열지만 다만 '枚'(작은 가지 매)에 매달려 열기 때문에 '열매'라 말한 것이다.
이를 하나하나 정성껏 거두어 갈무리하는 때라는 뜻으로 '갈무리'가 '갊'으로 줄고 '갊'이 다시 '갈'로 변했다가 이것이 다시 '가을'로 고착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오곡백과가 익는 철이라는 뜻에서 '秋'(가을 추)는 오곡백과를 뜻하는 '禾'(벼 화)에 '火'(불 화)를 붙인 글자다. 오직 황량한 북풍한설만이 몰아치는 철이라 웬만한 일이 아니면 바깥으로 향한 출입도 삼가고 집안에 들어 크게 바쁜 일이 없기로 '겨를이 있음'을 '겨울'이라 하였다. 그러나 항상 겨를이 있음이 계속될 수는 없다. 다만 겨를이 있다는 자체는 장차 바쁠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일 뿐이니 한 해의 끝이 다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봄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시작이므로 '冬'(겨울 동)은 ' '(뒤져갈 치) 밑에 ' '(얼음 빙)을 붙여 만든 글자다. 시작하여 "月白雪白天地白하여 온 천지가 다 희고 자신의 머리까지도 희다" 등의 내용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노래를 두고 '사철가'라 말하는 것도 실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공간도 문제지만 우선 시간적 변화에 대응할 줄 모르고 항상 제 틀에 갇혀만 있으면 낭패만 거듭할 뿐이다. 시간의 변화를 모른 채 자신의 틀에 갇혀 제멋대로 하는 자가 어디 한 둘인가. 철부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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