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6. 28 (월) 영남일보
어떤 사물을 숫자로 딱 부러지게 나타낼 수 없는 때가 많다.
이런 경우 '而(말이을 이)' '若(같을 약)' '乃(이에 내)' 등을 쓴다.
'무엇에서 무엇까지' '얼마에서 얼마까지'를 뜻하는 '내지(乃至)'라는 말은 순서나 정도를 나타낼 경우
그 사이를 줄일 때 쓴다. 예를 들어 '三乃至八'이라는 말은 아무리 적어도 3 이하는 될 수없고 아무리 크다해도
8 을 넘어설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떤 이는 "사람은 곧 하늘이다(人卽天)"며 "사람 외에 하늘이 있을 수도 없고, 하늘 외에 사람이 있을 수도 없다.
(人外無天, 天外無人)"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찌 반드시 하늘이 사람이며, 사람이 곧 하늘일 수 있겠는가.
사람들 가슴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하늘 같은 마음이라 해 이를 '천심'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람 하나하나가 곧바로 '하늘'은 아니다. '人乃天(사람은 이에 하늘이다)'이라는 말은 사람이 하늘이 아니라,
사람 섬기는 일을 하늘 받들듯 해야 하늘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은 도에 '理(이치 리)'를 보여주며, 도는 하늘에 '數(헤아릴 수)'를 내려주며, 하늘은 땅에 '象(모양 상)'을 보여준다.
'理(깨닫다 이)'는 줄기라는 뜻이라, 그럴 리가 있고 그럴 리가 없는 이 '理'는 '道(길 도)'와 만나 '도리(道理)'를 이룬다.
예를 들면 수박 줄기를 더듬어 가다가 수박을 얻었다면 그럴 리가 있지만, 수박 줄기를 더듬어 내리다가 호박을 얻었다면
그럴 리 없다는 말이다. 수박 줄기에서 수박이 열리고, 호박 넝쿨에서 호박이 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도에 딱 들어 맞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도를 본받아 하늘은 '數(셈 수)'를 관장하는 것이니 1년 12 달이 되는 것도
어김없는 수요, 밤낮으로 바꿔지는 것 또한 수이며, 돼지는 거북보다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것도 또한 수다.
사람은 하늘이 땅에 내려준 '象'을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하늘이 땅에 보여주는 '상'이란
'짓' 또는 '짓거리'를 뜻한다. 사람은 天地人三才(우주의 바탕이 되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참여해
하늘이 내려주는 '짓'에 따라 길흉화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땅을 밟고 살며 만물의 영장이라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늘의 뜻을 고스란히 받들어 흉을 피하고 길할 줄기를 찾아 가야 한다.
이때의 '吉(길할 길)'이라는 말도 실은 우리가 언제나 다니는 '길(道)'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凶(흉할 흉)'은 빠지는 곳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에 하늘(人乃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