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6. 21 (월) 영남일보
마음에 든 내용을 입 밖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이라 한다. 같은 말이라도 마음속에 든 뜻을 직접 표출해 내는 것을
'言(말씀 언)'이라 하고, 자신이 지닌 입장을 다른 이의 입장과 다름을 표현하는 것을 '語(말씀 어)'라고 한다.
즉 상대방이 하는 말을 '言'이라 한다면, 그 말을 잘 듣고 난 뒤에 자신의 입장을 되돌려 하는 말은 '語'다.
우리는 말을 주고받고 살기 때문에 일상생활 중 '언어(言語)'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같은 말일지라도 '언어(言語)'를 구분해 '직언왈언(直言曰言)', '논란왈어(論難曰語)'라 했다.
제자백가 중에서 "내 머리카락 하나를 빼내어 남을 이롭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런 일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표현한 양주(楊朱)의 말을 모은 책을 '법언(法言)'이라고 한다.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집단의 입장을 정리한 책을 '논어(論語)'라고 한다. 이점만 비교해 보면
'言'과 '語'가 어떻게 다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양주는 상대를 살피지도 않고 내놓은 말이었으나, 공자는 양주와는 달랐다.
그렇기는 하나 '言'이나 '語'는 결국 입을 통해 나왔으며, 혀가 움직여야 '말'이 나오기 때문에
'말하다'는 뜻은 혀를 그대로 본떠 '曰(가로 왈)'이라 썼다.
말은 왜 필요한가.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말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하던 일을 멈추도록 하고, 다시 '쓸만한 말'을 던져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말'이다. 중지시키는 것도 '말'이며, 다시 권장하는 것 또한 '말'이다.
일을 중지시키는 말은 곧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그 일을 가로 질러 막기 때문에 '曰'이라 했다.
새롭게 다시 권장하는 말은 모두 '쓰임새가 아주 많은 말'이기 때문에 '말씀'이라 했다.
한 제자가 공자에게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는 "사람도 아직 섬기지 못하는 데 어찌 귀신 섬기는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孔子曰: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했다. 이런 때 제자의 물음은 '言'이요, 공자의 대답은 '語'이다.
공자는 사람 섬기는 일을 우선하고 귀신 섬기는 일을 뒤로 해 귀신을 먼저 섬기려하는 제자의 생각을 바로잡아줬기 때문에
공자의 말은 '曰(가로 왈)'이다. 공자의 대답은 유교 집단에서 보면 당연히 '쓰임새 있는 말'인 까닭에 '말씀'이다.
많은 이들이 상대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가로 질러 내놓은 말은 쓰임새 있는 말로 '말씀'인 경우가 많다.
가로 질러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도량이 큰 사람으로, 예로부터 '大人'이라 불렀다.
'言'은 귀담아 잘 듣고, '語'는 잘 가려서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귀는 밝아야 하고, 입은 원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