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7. 5 (월) 영남일보
고 (막힐 고 : 입안의 기가 장애를 받아 막힌 모양)
입에서 소리나 말이 나오는 것은 입안의 기가 밖으로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속의 기가 어떤 장애를 받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많은 생각 끝에 멈춰 있다가 가까스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옳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동안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입안에 기를 멈춰두고 있다가 일단 결정하는 것을 '可(옳을 가)'라 한다. 가벼운 승낙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으로
'允(허락할 윤)'이라 했고, 시간을 두고 결정한 승낙은 '可'라 한다.
말하기보다는 노래하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말이야 입안에 든 기를 밖으로 내 혀만 놀리면 된다.
노래는 박자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이어 나가되 입안의 기는 물론, 뱃속에 든 기까지도 끌어올려 내뿜어야 한다.
그래서 '노래'라는 글자는 '可'를 아래위로 겹친 '哥(노랫소리 가)'에, 몸 안의 기를 밖으로 빼내 기가 모자란다는
뜻을 지닌 '欠'(모자랄 흠)을 붙여 '歌(노래 가)'라 쓴다.
누구나 감탄할 일이 크다 보면 쉽게 말을 내놓지 못하다 끝내 장애를 뚫고 말이 나온다. 입안의 뭉쳤던 기가
한꺼번에 좌우로 퍼지게 된다. 그런 감탄의 뜻을 '兮(어조사 혜: 큰 감탄에 사용되는 조사)'라 한다.
굴원의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가히 내 갓끈을 씻을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림이여! 가히 내 발을 씻을 것이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글이 나온다. 창랑의 물이 맑든 흐리든 그 물을 탓할 게
아니라, 오히려 맑고 흐린 것을 아울러 쓸 줄 알라는 뜻이다. 지나친 감탄은 옳은 생각을 방해할 수도 있다.
창랑의 깊은 물속에 빠져 고기밥이 돼 삶을 마칠지언정 죽어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굴원의 심정을 이해한
어부가 굴원에게 던진 말은 금과옥조다. 어부도 창랑의 물이 맑은 것에 감탄할 줄 알고 흐린 것에 못내 아쉬워 할 줄도
안다. 군자는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고 흐릴 때는 발을 씻는 청탁병용(淸濁竝用)의 아량도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감탄하면 일이 커지게 마련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퍼질 과)'란 지나친 감탄 탓에 생겨난 심리상의 병증을 일컫는 말이다.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는 말을 '誇(자랑할 과)'라 한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자랑할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자랑에 자랑을 거듭한다. 속된 말로 쥐뿔도 자랑할 것 하나 없으면서도 그렇다. 남들이 하는 칭찬이 비웃는 말인지,
아니면 비위를 맞추는 말이라 자신을 깎는 말인지도 모르고, 그저 부추기는 말만 듣고 깜빡하여 자랑을 거듭하니
남의 '可(옳다)' 소리만 듣고 '兮'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