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7. 26 (월) 영남일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가장 먼저 했던 집단행사는 제사였다.
문화·예술 대부분은 제사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이나 조상을 향해 빌 때 갖춰야 할 요건은 많지만,
빠져서는 안 될 것이 희생(고기)과 술이다. 술은 음료요, 고기는 식료다. 그리고 음식을 바칠 때는 비는 말이 있어야 한다.
이때 신에게 비는 말이 문학의 원류이며,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행사장을 치장하던 것이 미술의 기원이며,
엄숙한 분위기와 각가지 동작을 통해 간절함을 보이는 행위가 음악과 무용의 시초다.
희생을 바치는 일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정중하게 바쳐야 한다. 제물 자체가 흠잡을 바가 없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고기가 신선해야 한다. 어육(魚肉) 중에 좋은 것을 바쳐야 한다는 뜻에서 '膳(드릴 선)'과 '鮮(신선할 선)'이라고 하는
글자가 나왔다. 금방 잡은 짐승이나 생선을 바쳤던 까닭이다.
고기를 바치는 그릇도 일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해야 했다. 고기를 받쳐 올리는 그릇은 자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제사 때만 사용한다. 밑받침이 뚜렷하고 고기를 담아내는 일정한 용량이 갖춰져 있어야 하며,
제물로 올리기 전까지 정갈하게 덮어 놓아야 한다.
고기를 담는 제사 그릇을 나타낸 글자가 '豆(도마 두)'다. 가장 위에 있는 한 획은 덮어둠을 나타낸 것이요,
'口'는 그릇의 용량을 나타낸것이며, 아래의 모양은 높이가 일정한 받침을 나타낸다.
도마를 표현한 '豆'에 화살 모양을 본뜬 '矢'를 붙여 '短(짧을 단)'이라 썼다. 도마와 화살이야말로 고저와 장단을
가늠하는 표준이라는 뜻이다. 도마보다 낮은 것은 낮다고, 화살보다 짧으면 짧다고 정했다.
신을 모시는 장소는 반드시 높이 쌓은 제단이었다. 제사는 매우 중요하며 도마에 받쳐진 제물 역시 중요하다.
제단 위에 오른 제사상은 꼭 올라가 잘 살펴야 한다는 뜻에 '登(오를 등)'과 '察(살필 찰)'등의 글자가 나왔다.
제단 도마 위에 상이 제대로 차려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 '도마'는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몸통 위에 목이 있고, 목 위에 머리가 있는 것과 같아 '頁(머리 혈)'에 '豆'를 붙여 '頭(머리 두)'라 썼다.
도마 위에 제물이 얹어져 있듯, 사람의 머리는 몸통 위에 목이 있고 목 위에 잘 모셔져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머리가 활동을 그치면 이를 '(탈날 탈)'이라 했다. 그러니 배가 아파면 배탈, 잘 지내던 아낙이 어떤 이유로든
친정집으로 쫓겨나도 탈났다고 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경우는 모두 탈이다. 그런 탈을 없애기 위해 옛 어른들은
손수 짐승을 잡아 머리는 그대로 올리고, 남은 고기들은 갖가지로 꾸며 정성껏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