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虎 (범 호)

나무^^ 2011. 2. 21. 12:52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8. 9 (월) 영남일보

                虎 (범 호 : 울부짖는 억센 갈비뼈를 본 뜬 모양) 

 

 

 

       산에는 많은 짐승들이 각각 마땅한 자리를 잡고 제 나름대로 살아간다. 토끼나 사슴같은 초식동물은 

       풀을 뜯어 먹고, 호랑이나 늑대같은 육식동물은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초식으로 살아가는 동물보다는 육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 훨씬 강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곰이나 돼지처럼

       잡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은 육식동물 못지않게 힘이 셀 뿐 아니라, 초식과 육식을 겸하는 덕분에 아무래도 

       먹이에  대한 제한이 덜하다.

       산중의 왕은 단연 '호랑이'다. 온 산을 삼킬 듯 쩌렁쩌렁한 울부짖음은
다른 동물을 소리로 압도할 뿐 아니라,

       웅크린 자세로 상대의 동정을 샅샅이 노리는 정확한 눈초리며, 상대의 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귀담아 듣는

       주도면밀한 태도는 산중의 왕으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웅크린 채 잠자코 있다가도 막상 기회가 닥쳤다 싶으면 별안간 산중이 떠나가라 '어흥'하고 울부짖는 행동과

       억센 갈비뼈와 몸통, 꼬리, 언제나 앞발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본떠 '虎(호랑이 호)'라 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곧 호랑이 입을 통해 나오는 울부짖는 소리였기 때문에 '號(부르짖을 호)'라 했다.

       또한 기에 질려 정신을 잃고 있으면 숨겼던 발톱으로 여지없이 긁어 사납게 굴기 때문에 호랑이에 손을 붙여

      '虐(모질 학)'이라 썼다.

       육식으로 살아가는 맹수의 최고 무기는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이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를 공격할 때만 드러낸다. 상대를 향해 공손한 척 하는 태도를 두고 '조아린다'고 한다. 이때에 쓰는 '조아'는

      '爪(손톱 조)'와 '牙(어금니 아)'를 쓴다. '조아린다'는 말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감춘다는 뜻이다.

       왕은 무서운 존재다. 또한 백성을 잘 보살피는 존재다. 산군(山君, 산중의 왕) 호랑이 역시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불쌍하거나 착한 이는 도와주는 신성한 존재다.

       호랑이에 관한 민속화는 많다. 그 중 호랑이 등에 까치
가 사뿐히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그린 민속화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만나 무슨 대화를 하는지 상상해 보자. 호랑이는 지역사령관으로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센 '해결사'요, 까치는 견우와 직녀를 다리 놓아 주듯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의 '전령'이다.

       속세를 내려다 본 옥황상제가 까치를 통해 호랑이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아무 날 아무 곳에 효자 삼형제가 나타나

       어머니 제사에 가려고 물을 건널 것이다. 그런데 마침 비가 크게 내려 홍수가 날 터인데 이들 삼형제를 구해줄 자는

       아무 산에 사는 산군(山君)밖에 없다. 네가 부지런히 날아가 내 말을 전하고 이들을 잘 건너 주도록 하라"고 한다.

 


   

 

                          호 (호랑이 무늬 호 : 호랑이 무늬를 나타냄)

 

 

        호랑이의 특성을 본떠 만든 '虎(호랑이 호)'에서 앞발을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뺀 나머지 글자를 '호랑이 무늬 호'라고 한다.

        나중에 무늬를 나타내는 '文(무늬 문)'을 붙여 '虔(두려워할 건)'이라고 하고, 두려운 존재에 대해서는 정성으로 섬길 수밖에

        없다는 뜻에 '정성 건'이라고도 했다.

        호랑이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생각만 해도 무섭고도 두려운 존재라고해 '호'에 '思'만 붙여도 '慮(근심 려)'가 된다.

        이때 '근심(根心)'이란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서운 스승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스승의 돗자리 
위에 호랑이 가죽을 깔아놓는 일이다.

        스승은 두렵고 그의 가르침은 무서운 것이라는 뜻을 그대로 형상화 했다.

        흔히 사용하는 말로 '양반'이 있다. 글이나 무술
을 통해 과거(科擧)에 뽑히면 양반이 됐다.

        글을 숭상하는 선비 출신은 문반이었고, 칼로 단련된 군인은 무반이라고 불렸다. 이들을 상징하는 그림

        각각 '학'과 '호랑이'였기 때문에 이들을 학반과 호반이라고도 했다.

        군인들이 쓰는 무기에는 각각 자기 이름을
새겼다. 제 몸을 보호하는 방패에 칼로 제 이름을 새긴다는 뜻에서

       '干(방패 간)'에 '(칼 도)'를 붙여 '刊(새길 간)'이라고 썼다.

        군인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호랑이 무늬를 새긴 군사용 솥에 개를 삶아 호랑이 무늬를 한 도마
에 올려

        승리를 안겨다 준 하늘에 감사를 올렸다. 그 때마다 창을 휘두르고, 의장 대열을 갖춰 볼만한 볼거리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獻(드릴 헌)'이나 '(놀아날 희)'와 같은 글자들이 나왔다.

        호랑이 일지라도 종류는 다양하다. 깊은 산속을 근거지로 삼으며 살아가는 호랑이가 있는가 하면,

        물과 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수륙양용의 호랑이가 있다. 이런 수륙양용하는 호랑이는 보통 호랑이보다 더욱 높다고 해서

      '(높을 한)'을 덧붙였다. '遞(갈마들 체)'는 물과 뭍을 구분하지 않고 마음대로 다니는 호랑이라는 뜻이다.

        이런 뜻이 널리 퍼져 소식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해 수신과 송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을 '체신(遞信)'이라 하고,

        임무수행 중인 사람의 직책을 갈아 치운다는 말을 '체직(遞職)'이라고도 한다.

        우리 신화
에는 호랑이와 곰이 자주 등장한다. 바짝 쓰는 힘은 호랑이가 우수하나, 끈질긴 힘은 오히려 곰이 훨씬 나은 편이다.

        또 곰은 권위를 내세우고 억누르기보다는, 은근하게 종용하고 설득시키는 등 끈질긴 노력으로 성취하려 한다.

        그러고 보면 곰의 슬기가 더욱 우리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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