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7. 19 (월) 영남일보
豊 (풍년 풍 : 크고 작은 그릇에 제물을 듬뿍 담은 모양)
작은 제사 그릇을 본뜬 '豆(제기 두)'를 '콩'이라고도 한다.
노란 콩을 '黃豆(황두)' 또는 '大豆(대두)'라 하고, 붉은 팥을 '赤豆(적두)'라 하며,
비교적 알맹이가 작은 초록색 콩을 일러 '綠豆(녹두)'라 한다.
아주 옛날부터 정월 초하루가 되면 농사의 흉풍을 점쳤다. 그 중 작은 제사 그릇 위에 콩이나 팥 등을 한줌 얹어 놓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건을 던져 그릇 아래로 떨어지는 콩알 수로 흉풍을 예상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렇게 정월 초하루에 제사 그릇에 얹는 물건이 곧 '콩'이었던 까닭에 제사 그릇과 콩이나 팥은 동급이 됐다.
결국 '豆'는 '제사 그릇'이라는 뜻으로는 물론 '콩'이나 '팥'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게 됐다.
그러다가 뒤에 콩과 팥은 특별히 '荳(콩 두)'로 쓰게 되었다.
콩팥으로 점칠 때, 그릇 아래로 떨어지는 콩팥의 수를 보고 길흉을 구분하여 보통 양수는 길을, 음수는 흉으로 가늠했다.
이같은 점술은 투호놀이로 남았을 것이다. 다만 투호놀이는 거리를 두고 화살을 항아리에 던져 넣는 일이다.
흉풍을 점치는 놀이였다기보다는 전쟁의 승패를 미리 점쳐보는 놀이였으리라. 아무튼 양은 크고 음은 작다해서,
홀수는 길하고 짝수는 흉하다는 원칙은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점을 치는 방법으로 쌀을 던져 길흉을 가늠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이 더욱 발전해갈 미래까지도
점치는 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심은 욕구 충족 여부다. 그 중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첫째 가는
관심사였을 것은 뻔한 일이다. 농사가 잘 돼야 음식이 풍족할 것이고, 조상을 잘 받들 수 있다.
그같은 바람을 충족시켜 줄 조건은 날씨에 달려 있다. 그런 까닭에 고대인은 언제나 날씨에 관한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또한 고대인은 5 일마다 한 번쯤 바람이 불어 주고, 10 일을 두고 한번씩 비가 촉촉이 내려야
풍년이 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갑골에 새겨져 있는 조각들의 70%가 날씨에 관한 점사였다.
농사는 그저 나 혼자 또는 내 가족이 잘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었다.
조상을 위해 부지런히 농사지어, 조상을 잘 모시다 보면 그 덕택에 나도 내 가족도 다 풍요롭다고 생각했다.
풍년이란 작은 제사 그릇이나 큰 제사 그릇을 다 동원하여 진수성찬을 아낌없이 듬뿍듬뿍 담아 올리고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해였다. 그렇기로 '豆(작은 제사 그릇)'에는 물론 햇곡식을 담아 올리는 '(큰 그릇 변)'에도 수북하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바치는 모양을 그대로 본떠 '豊(풍년 풍)'이라 했다.
생명에 시원한 바람은 '氣(기)'를 불어 넣어 주고, 촉촉이 내리는 비는 곧 '피'를 만들어주는 재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