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8. 2 (월) 영남일보
예로부터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악기 중의 하나가 '북'이다. 인류가 사냥을 하던 시절, 고기는 나눠 먹고 뼈에는
글자를 새겼다.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거나, 통에다가 입혀 그릇으로도 썼으며, 혹은 그 통을 좌우로 막아 악기로도 썼을 것이다.
북과 더불어 또 악기로 사용되었을 법한 것은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입으로 불면 소리가 나는 피리나 퉁소 등 관악기다.
즉 관악기나 타악기가 악기의 원조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가 나무판에 줄을 달아 이를 퉁기는 현악기가 등장하게 됐다. 이른바 관현악이 등장한 셈이다.
두들겨 대는 타악기와 불어대는 관악기와 퉁겨대는 현악기는 그 소리의 색깔이 각각 다르다. 군중을 부추기는
군악으로는 북을 비롯한 타악기가 적격이요, 귀를 통해 머릿속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피리를 비롯한 관악기가 마땅하다.
그래서 깃발을 앞세우고 적군을 무찌를 때는 북을 치게 마련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항우의 패잔병들을 남김없이
흩어버리려 할 때, 유방의 진영은 달밤에 피리를 불어 마침내 초한전의 풍운을 잠재웠다.
북은 세워 놓고 쳐야 하고, 북을 친 다음에는 반드시 여러 겹으로 잘 덮어 둬야 한다.
북은 주먹으로 치지 않고, 나뭇가지 같은 북채로 친다는 뜻에서 '鼓(북 고)'라고 썼다.
여러 악기가 함께 내는 교묘한 소리가 주는 감흥도 좋다. 가장 단순한 타악기로는 장단을 맞추는 것 또한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맛을 얻기에 안성맞춤이다. 북은 사기를 돋우는 군악으로 훌륭한 악기지만, 소리꾼에게 추임새를 넣어 주는 데도
아주 적절한 악기다.
일상에 쓰는 말은 기를 써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일이지만, 소리는 더욱 많은 기를 써서 깊이 숨겨진 감정을 토로하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 소리는 속에 든 감정이 슬픈 것이면 슬픈 대로 기쁜 것이면 기쁜 대로, 기를 뿜어 내기도 하고
기를 거두기도 하여 청중을 울렸다 웃겼다 하면서 후련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북치며 그 장단에 맞추어 한 바탕 기를 뿜어내 노래하다 보면 누구나 다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뜻에서,
'鼓(북 고)' 아래에 노래하는 입을 나타낸 '口(입 구)'를 붙여 '喜(기쁠 희)'라 썼다. 북장단에 맞춰 노래하다보면
슬프거나 기쁘거나 다 기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깊은 뜻을 담고있는 글자다.
굳이 북만이 아니라 장단에 맞춰 모든 일을 노래 하듯 풀면, 기쁨은 더욱 기가 뿜어져 더 큰 기쁨으로 변한다.
그리고 슬픔은 사그라지고, 품었던 한까지도 어느 덧 풀려 마침내는 기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