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9. 27 (월) 영남일보
세계 인류문명의 발생지를 흔히 이집트의 나일강과 중국의 황하유역, 인도 갠지스강과 아랍의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강 유역이라 하여, 이른바 4대 문명 발생지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강의 흐름을 중심으로 일어난
모듬 사회문명의 발생을 말하는 것이다.
인류가 모듬으로 집단생활을 하기 전 삶의 터전은 강 중심이 아니라 산 중심이었는데,
사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삶의 근원지는 강이 아니라 산이었고, 먹이 재료는 식물성 곡식이 아닌 동물성 고기였다.
그러다가 인구가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사냥감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자, 산중의 동굴 속을 벗어나
산 밑에 움집을 짓고 살다가 점차 농경사회로 전환됐다. 이는 의식주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그 중 두드러진 한 예를 식생활면에서 들자면, 본격적인 농사를 통해 얻은 곡식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의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경작하기 시작한 곡식은 음료 재료로서의 '黍(찰기장 서)'와 식료 재료로서의 '稷(메기장 직)'이었다.
차가운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렸다가 '봄이 되면 비로소 남쪽 이랑으로 나아가 몸소 기장과 피를 심어 제사를 받는다.
(載南畝, 我藝黍稷 ·천자문)'라 하여 찰기장으로는 술을 빚고 메기장으로는 밥을 지어 조상의 제사를 모셨다는 기록은
의심할 나위없는 일이다.
똑같은 곡식이라도 찰진 것은 술 담그는 재료로 적당해 '禾(곡식 화)'에 '入(들 입)'과 '(물 수)'를 붙여 '黍'라하였고,
같은 곡식이 '田(밭 전)'을 좌우로 갈아 재킨다는 뜻을 지닌 '八'에 곡식을 이랑마다 다니며 뿌린다는 뜻을 지닌
'夂(뒤져 오고갈 치)'를 붙여 '稷'이라 하였다. 따라서 음식의 원재료는 '기장'이었다.
그러다가 인도 아삼지방에서 자생한 벼 종자가 중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벼농사가 시작됐고,
기장이나 벼가 가을에만 수확되는 곡식이라 춘궁기를 견뎌낼 방도가 막연했는데, 다행이 이를 대처할 만한
작물로'보리'를 재배하게 됐다.
그러나 기장, 보리 등의 곡식들은 그 알 속에 다 하얗고 고소하며 단맛이 나기로 '皀(고소할 흡)'이라 하였고,
희고도 고소한 단것들을 모아 지어 놓은 밥 자체를 '食(밥 식)'이라 하였다.
그래서 '食'이라는 글자는 '(모을 집)'에 '皀'을 붙여 만든 글자다.
밥을 지을 수 있는 재료로는 기장, 쌀, 보리, 콩, 수수 등 다섯 가지 곡식이라, 이를 한 솥 속에 넣고
일단 밥을 짓고 보면 그릇에 퍼 담을 때부터 뒤집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뒤집어 가면서 먹어야 하였기에
'밥'이라는 글자를 '飯(밥 반)'이라 한 까닭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흰 쌀로만 지은 밥을 특히 '白飯'이라 하여 잡곡을 섞어 지은 밥과 다르게 구분 지어 남들은 잡곡밥을 먹는데
우리는 흰쌀밥만 먹는다고 자랑하였던 때가 엊그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건강식은 흰쌀밥이 아니라 잡곡밥이다.
시대가 많이 달라져 비빔밥을 꺼리던 양반의 시대가 지난 지도 오래 되었다.
'飯'에 각종 나물을 섞은 비빔밥이 맛도 좋고 영양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