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1. 3 (월) 영남일보
실끈과 가죽끈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묶는 일에 있어서
실끈은 아무래도 가죽끈보다는 단단하지 못하다. 특히 무기를 보관할 때는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어두는 것이 좋다.
자주 사용하는 활의 경우, 반드시 가죽끈으로 묶어두었다. 즉 평소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잘 접어서 활집에
보관해 두었다가 사용할 때는 마치 축구선수들이 무릎관절을 보호대로 잘 묶는 것처럼 활이 탄력을 많이 받는 부분을
가죽끈으로 묶어서 사용했다.
이럴 때 활을 밑에서부터 위로 차례차례 감아가는 모양을 그대로 그려낸 글자가 곧 '弟(아우 제)'인데,
어떤 물건을 감아 나감에 있어서는 차례차례 감아 나갈 수밖에 없듯이 맏형 밑에 아우들은 차례차례 순서가
있다는 점에서 '형' 밑의 '아우'라는 뜻으로 '아우 제'라 했다.
이미 '아우'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형은 반드시 아우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어야 하고,
아우는 반드시 형을 섬겨야 한다(兄友弟恭)"는 말에서 아우의 공경스러운 마음을 두고 '悌(공경할 제)'라고 하였다.
즉 내 몸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일은 뿌리를 찾아 섬기는 일이라 본말에 대한 자각을 말함이며,
아우가 형을 공경하는 일은 곧 선후에 대한 자각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끝과 시작을 알고 앞과 뒤를 가릴 줄 아는 것이
바로 도(道)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弟'는 차례를 뜻하는 글자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초목이라도 '竹'을 붙여주면 대나무가자라나는 차례를 뜻하는
'第(차례 제)'가 되지만, '木'을 붙여주면 밑에서부터 위를 향해 오르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뜻하는 '梯(사다리 제)'가 된다.
한편 날개가 없는 이상, 밑에서 위로 오르려면 반드시 사다리를 타고 한발 한발 디디고 올라야 하는 것처럼,
막힘없이 천당에 오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규제해 나갈 수 있는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일찍이 원효 스님은 '계율은 곧 좋은 사다리다(戒爲善梯)'라고 하였다.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하나하나 어김없이 채워나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二(두 이)'에 모자라다는 뜻을 지닌 '欠(흠)'을 합쳐 '次(버금 차)'라 하였으니 '欠'에는 이어가다는 뜻도 있다.
여기에 '例(법식 례)'를 붙여 '次例'라 하였다. 그렇기에 본디 '次例'라는 말은 이미 정해진 법식대로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하나하나 순서를 밟아 행해간다는 말이라, 모자람을 채워 나가되 욕심껏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조심조심
알맞게 채워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차례를 지킨다는 말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서
자기에게 맞게 무리없이 순서를 잘 지켜 나간다는 말이라, 굳이 앞서야 할 이는 앞세우고 뒤따를 이는 뒤따라 간다
할지라도 크게 그릇될 일은 없는 것이다.
다만 앞세워진 이는 뒤따르는 이를 잘 인도할 줄 알아야 하고, 뒤따르는 이는 앞선 이를 믿고 받들 줄 알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