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1. 17 (월) 영남일보
텅 빈 하늘은 언뜻 보기에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빈 만큼 공기가 꽉 차 있고,
구름이 흐르고 일월이 동서로 운행한다. 남북으로 북극성과 남극성을 비롯한 별들이 총총히 박혀
어두운 밤을 비추고 있다. 그래서 '천자문'에 이르기를 "하늘은 가물가물하고 땅은 누렇고, 우주는 거침없이 넓고,
해와 달은 가득 차고 기울며, 북극성과 남극성은 남북으로 진열돼 있다"고 하였다.
무한히 높은 하늘은 높은 만큼 해와 달과 별들이 비치는 무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해가 동녘에서 뜨고 달이 서녘으로 기우는 끊임없는 작용을 하고 있음으로 인해 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 뜻에서 보면 하늘은 주로 일월을 서로 번갈아 운행하여 시간을 이끌어 나감은 물론,
일월이 똑같이 동쪽에서 나왔다가 서쪽으로 들어가는 작용을 통해 각각 동쪽과 서쪽을 가늠하게해 준다.
또 북극성과 남극성이 움직이지 않는 항성으로 자리잡아 각각 남쪽과 북쪽을 바르게 가늠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모두 다 가늠해 주고 있는 표상이며, 땅 위에 벌어져 있는 모든 사물을
다 덮고 있는 만물의 지붕이다. 이런 뜻에서 실제 하늘 아래 만물이 진열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땅에서의 공간 개념도 애초부터 하늘의 일월성신을 빌어 이뤄진 것이다.
그 중 동녘이란 말은 해가 떠오르는 쪽을 말하므로 나무 줄기에 해가 올라 겹쳐지는 쪽이라는 뜻으로
'해가 나무줄기에 겹쳐 있음(日在木中)'을그대로 본떠 '東(동녘 동)'이라 하였고, 동이 트면 만물이 잠에서 깨어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動(움직일 동)'의 소리값을 그대로 가져왔다.
나무를 중심으로 해가 나무 위에 올라 있으면 '高(밝을 고, 높을 고)'가 되고,
해가 나무 밑으로 기울게 되면 '杳(어두울 묘, 멀 묘)'가 되는데, 이 때에도 '밝고 높은 것'과 '어둡고 먼 것'은
각각 해가 높기로 더욱 밝다는 뜻에서 '高(높을 고)'의 소리 값을 취하였고, 해가 멀리 들어가 버렸기로
어둡다는 뜻에서 '渺(아득할 묘)'의 소리 값을 취한 것이다.
한편 '東'을 해와 나무로 풀이하지 않고, 어떤 물건을 자루 속에 넣어 상하를 단단히 여미고 물건 자체를 꽁꽁 동여 맨
모양을 그대로 본 글자로 보아 '凍(얼 동)'과 '棟(용마루 동)'을 각각 '물건이 얼어 꽁꽁 동여 맨 것 같은 상태'와
'지붕을 단단히 꽁꽁 묶어둔 용마루 재목' 등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설은 해가 뜨면 움직이니 '東'은 '動'이며, 해가 지면 새들이 깃들기 때문에
둥지에 암수 한 쌍의 새가 다소곳이 둥지 안에 깃든 모양을 그대로 본떠 '西(서녘 서)'는 '栖(깃들 서)'라 하였다.
'南(남녁 남)'은 따뜻한 남쪽으로 출입문을 낸 움집의 모양으로 따뜻하기 때문에 생명이 쉽게 여물어 나온다는 뜻에서
'妊(아이밸 임, 나온다는 뜻의 남)'이라 하였다.
하늘은 일월로 하여금 동서를, 별들로 하여금 남북을 알려주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