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韋 (가죽 위)

나무^^ 2011. 5. 23. 13:41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2. 27 (월) 영남일보

                                (위 : 두 발로 밟아 정제한 가죽)

 

 

            사냥시대의 옷감은 말할 나위 없이 짐승의 가죽이었다. 가죽도 그걸 다룬 방법에 따라 대략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막 벗겨낸 가죽을 일컬어 '皮(가죽 피)'라 한다. 고기와 가죽을 손써서 벗겨낸 것을 말한다.

            짐승의 몸통에서 가죽을 여지없이 홀딱 벗겨낸 것을 일컬어 '革(가죽 혁)'이라 한다.

            짐승의 가죽을 홀딱 벗겨낼지라도 머리를 싸고 있던 가죽은 아무래도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벗기지 않고,

            주로 몸통에 붙어있는 것만을 벗긴 가죽을 뜻한다. 그러나 '皮革' 그 자체만으로는 고급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마치 빨래를 발로 밟아 올을 세우듯 뭉쳤던 가죽을 발로 밟아 고르게 곱게 정제한 가죽을 '韋(가죽 위)'라 한다. 

           '革'은 홀딱 벗긴 가죽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외에도 뒤짚다는 뜻이 있으니 묵은 것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롭게 바꾸는 일을 두고 '革新'이라 말하기도 하고, 명을 따르지 않고 뒤집어 버리는 일을 '革命'이라 하였다.

            이들 세 가지 가죽 중에서 가장 고급스런 가죽은 말할 것도 없이 정제된 가죽인 '韋'이기 때문에

            남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두고 '偉人'이라 하여 '韋'에는 '크다'는 뜻도 있다.

            나아가 불을 지피는 좋은 땔감으로 곧 마른 갈대를 빼놓을 수 없기로 '葦(갈대 위)'라 하였다.

            한편 '韋'라는 글자 속에는 밟히는 물건과 밟는 일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을 두고 사방을

            빙 둘러 에워싸는 일도 '圍(에울 위)'라 하고, 전후좌우로 에워 보호하는 일도 또한 '衛(보호할 위)'라 했다.

            모든 생명체는 이미 가죽이 그 몸통을 보호하고 있는데 이런 가죽이 상하면 몸통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이 옷을 입는다는 일도 가죽을 또 다른 옷으로 보호하는 일이다.

            그래서 '被(입을 피)'는 가죽에 옷을 걸쳐 입는다는 말이며, '披(헤칠 피)'는 이와는 반대로 손써서 덮어진 것을

            열어 제친다는 말이다. 대부분 두꺼운 가죽(겉)을 쉽게 부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은 겉을 돌로 쳐 부숴야 하기 때문에

           '破(부술 파)'라 하였다.

            흔히 세상을 '풍진세상(風塵世上)'이라 한다. 바람이 끊임없이 불고 그 바람에 먼지
가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사물을 더럽히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날리는 더러운 티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는 일이다.

            그러나 막상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에 게으름을 피우기 마련이라 어느덧 온통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두꺼운 두겁 속에 갇혀 자아상실의 늪에 빠지기 일쑤다. 때때로 앉은 먼지를 털고,

            이미 앉아 몸에 딱 붙어버린 때는 물걸레로, 다시 마른 걸레로 잘 닦아낸다면,

            우선 바람에 날아온 티끌이 내 몸을 더럽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곁에 묻은 때를 없애는 일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미 오염된 내 몸 속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겉만 씻다보면 앞서 속에 스며들어간 더러움을 어떻게 말끔히 씻어내야 할 것인가.

           "모르는 새 깊이 든 사특함을 쳐 버리고 가느다란 양심 줄기를 과감히 회복시켜야 한다(破邪顯正)'고 하였다.

            가죽을 돌로 쳐 속을 들여다 보라. 그리고 한 줄기 남나있는 고운 마음을 드러내 나를 성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직 겉으로 묻은 때만 벗기는 일로는 위인이 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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