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관악 문화원 발표회 >
재작년 겨울, 가곡을 배운다는 지인을 따라 보라매 병원 옆에 있는 관악구 노인 복지 회관에 가 보았다.
그곳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 만 60세 이상 서울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삶의 활력을 찾아주는 곳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제 막 노인 대열에 들어선 60대 초반 사람들은 이렇게 노인들만 모이는 시설을 좀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어느새 60 세에 접어들어 이제는 스스로 노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 아쉬움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이며 나이인 것을, 어떻게 잘 영위하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아직 만 60 이 채 안 된 나이였지만 몇달 간 기다릴 수 없어서 눈치를 보면서 그냥 지인과 함께 다녔다.
오래전 고등학교 1학년때, 단 일년간이였지만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대단히 큰 기쁨을 누린 경험이 있었다.
운좋게도 그 때 우리 학교는 여러 가지 예능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스포츠 뿐만 아니라 합창단도 유명했다.
나는 음악에 그다지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운 노래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아 합창단 모집에 응했다.
다행히 기분좋게 합격을 해서 메조소프라노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때론 소프라노에 휘말리고 또는 알토에 휩쓸리는 알딸딸한 어려운 파트였다.
번갈아 음악실 청소까지 하면서 시작된 어렵고 힘든 연습시간들...
아니, 언니들은 도대체 저 많은 노래들을 어떻게 다 외워서 부를까?
그런 걱정과 함께 시작된 연습은 아침 수업시작하기 전, 점심시간, 방과후 이렇게 하루 세번씩 반복되었다.
그렇게 매일 두어시간 이상의 연습량은 그야말로 걱정을 무색케 하며 저절로 다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초년병을 따로 가르켜주지 않아도 선배들을 따라 부르다보면 저절로 음정도 익혀지고 가사 또한 절로 외워졌다.
아주 두꺼운 백과 사전을 방불케 하는 악보집을 매일 껴안고 만원버스를 타야하는 건 생지옥이었다.
체격이 왜소한 나는 도무지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악보집을 음악실에다 두고 다녔다가는,
또 사전 양해 없이 연습에 빠졌다가는 그야말로 경을 쳤다.
선배언니 몇이 꾀를 부리다 선생님에게 들켜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두어대씩 얻어 맞았다.
평소에 그리도 호남이시고 너그러우며 우리 모두가 사모했던 멋진 음악선생님이 그렇게 무서울 줄이야!
여타부타 아뭇 소리 안 하시고 무지하게 긴 대걸레 자루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공포감을 조성하며
기겁을 하기에 충분했다. 일년에 한 번 그렇게 언니들 군기를 잡아놓으면 초년병 아우들은 자동으로 척척 움직였다.
강당에서 예배시간에 합창을 하는 건 물론, 기독교의 명절인 부활절이나 성탄절, 그외에 가곡 행사에도 참석을 하느라
명동성당, 남산 야외 음악당, KBS방송국, 이화여대,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등으로 합창을 하러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그러한 행사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습에 만전을 기할 때 느끼는 희열감은 실로 대단했다.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하모니에 심취한 나머지 가슴 벅찬 감동과 함께 눈시울이 젖는 무아지경의 환희감!!!
그러나 세상일에 어찌 좋은 면만 있을 수 있겠는가?
공연이 있은 다음에는 밀린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워야 했다. 체력이 약한 나는 급기야 위궤양에 걸리고 말았다.
점심 시간에 연습을 하러 가려면 쉬는 시간 두어번에 걸쳐 미리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하니 일년 남짓 참았던 위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매일 칼로 찌르는듯 통증이 일어나고 그 당시로는 비싼 미제 위장약을 먹으면서 강행군을 하자
어머니와 오빠는 그만두지 않으면 선생님을 찾아가겠다며 야단이셨다.
나는 할 수 없이 울면서 이 사실을 음악선생님께 고해야 했고, 선생님은 위로의 말과 함께 악보집을 반환하라며
퇴진을 명하셨다.
일년 내내 고단한 초년병 시절을 보내고 이제야 청소도 면할 텐데 그만 두어야 하다니....
그해 합창단은 레코드판까지 만들어 나의 일년 활동의 성과는 대단했다.
참으로 흐믓하고 보람있었던 학창시절이 아닐 수 없었다.
아쉽게도 그후 사회인이 되어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그 레코드를 빌려갔는데 아예 떼먹고 말았다.
어차피 이제는 그 아날로그 LP판은 틀어볼 기회도 없겠지만...
그런 잊을 수 없는 옛추억이 다시 가곡반에서 합창의 묘미를 느끼고 싶게 하였다.
그러나 목을 무리하게 써야하는 오랜 시간의 직업병으로 낭낭하던 내 목소리는 알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주멜로디를 받혀줌으로 하모니를 이끄는 알토파트의 묘미는 소프라노가 지닐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문제는 주 1회 1시간 연습으로 알토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따로 연습하게는 안 되었다.
그러던 참에 지도선생과 어르신 한 분이 내생각과 일치함으로 관악 문화원에 가곡반을 창설하게 되었다.
창설이라면 좀 거창하지만 원래 수년전 문화원에 있던 가곡반이 '관악 어머니 합창단'으로 구청에 소속되어
나갔다고 한다. 거긴 55 세 이상은 뽑지 않는, 제대로 기반이 잡힌 잘하는 합창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보다 어르신을 시킬 수 없는 관계로, 처음 시작한 업으로 반장이 되어 일년간 이런 저런 치닥거리를
하며 기반을 잡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니까 주 2 회 가곡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복지회관은 월 5,000 원의 동아리비만을 낸다. 그런데도 가곡은 어렵다고 생각해서인지 인원이 많지 않다.
나도 처음 몇달은 좀 목이 아프고 호흡이 딸려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일년쯤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함께 다니는 지인도 칭찬을 해주신다. 그곳에서 오래 하신 분들은 나이가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퍽 고운 소리로 어려운 가곡을 잘 부르신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하시는 분들이 드물다.
문화원은 수강료 월20,000원에 금요일 1시~3시(문화원 일년 회비 15,000원과 함께)에 2시간 부른다.
이 비용으로 어디가서도 배울 수 없는 취미활동이다. 가요교실이야 어디든 많지만...
또 일년에 몇 번 고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음 설레이는 재미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심신건강에 그만인 활동이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로 노래를 부를 때 마음 가득 즐거움이 샘솟는다.
호흡이 길어짐으로 심장이 튼튼해지고 자세를 곧추세움으로 척추 건강, 괄약근을 조임으로 요실금 예방 등등
효과가 크다.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이보다 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놀이를 할 수 있는 게 무어 그리 많겠는가?
아직은 인원이 많지 않지만(20여명) 점차 더 늘어나서 꽤 잘 부르는 합창단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번 겨울은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의 이효근씨 작사, 작곡 '눈'을 다른 노래들과 함께 배웠다.
요즈음은 송길자 작시, 임긍수 작곡, 박제형 편곡의 '강건너 봄이 오듯'을 배우며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가끔 FM 93.1에서 '조수미'씨가 부르는 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정말 아름답다.
예전에 비하면 가곡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줄은 것 같지만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의 어떤 오폐라 아리아 못지 않은 아름다운 우리 노래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아리아 제목처럼 노래부르는 시간이 즐겁고 회원들과의 친목도 정답다.
가르치는 선생님과 손발이 잘 맞아서 점차 더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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