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모든 삶은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作)

나무^^ 2019. 3. 9. 14:55

 

[기타] [민음사] 모든 삶이 기적이다 [반양장][이마트몰] [9788937483899]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민음사 


 책 제목에 공감하여 사서 읽은 책이다.

중남미 나라중 '페루' 리마에서 태어난 작가는 스물여덟살 장성한 딸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진솔하고 유쾌한 작가의 건강한 심성은 딸을 잃은 슬픔을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정화시켜나간다.

그들의 이어지고 이어지며 가지를 뻗는 이야기들은 무척 심각한 상황들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윗트가 있다.

그들 구성원들의 서로 다름을 무한히 포용하는 이해와 애정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군대 갔다와서(몇십년 전에는 군생활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휴가 나온 큰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난데없이 죽음을 맞은 아들로 인해 나의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모른다. 앞날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던 큰 아들의 죽음은 우리 가정의 평온했던 삶을 순식간에 산산조각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서울에 두고 아예 시골로 이사를 가셨다. 집안 구석구석 어른거리는 아들의 환영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하셨다.

가정교사를 해서 벌은 용돈으로 병약한 어린 막내동생의 영양제를 사다 주던 의젓한 오빠와 이별한 슬픔을 나역시 오랜 시간 겪어야 했다.

 

몇 년전에는 동창 친구 중에,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 남짓 된 큰 아들을 잃은 이가 있었다. 그녀의 무거운 침묵은 오래도록 이어져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케 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으며 삶을 버티고 이겨낸다. 그 형태가 다를 뿐 인생은 고해(苦海)를 건너는 과정인거다.

그 삶에 휘둘러 쓰러지고 망가지지 않기 위해 종교를 가지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만든다. 그러나 종교로, 사랑으로, 또한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좌절하며 괴로움에 빠진다. 그래서 부처는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열반에 들어 생사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말씀하신다.

 

'불교신자들은 인생이 강과 같다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뗏목을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강에는 물살과 속도,암초, 소용돌이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물 위에서 배를 끌고 갈 수 있는 노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노련한지에 따라 여행의 질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강은 늘 죽음을 향해 흘러가기 때문에 경로는 바뀌지 않는다. 가끔은 강물에 나 자신을 떠맡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얼마되지 않는 내 작은 키를 길게 뻗은 후 남편의 어깨를 도닥거렸다.

"위예, 허리를 펴요. 우리는 노를 저어야 해요."

그는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짓는 혼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자와 남편은 만나기 이전에 각각 다른 이와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힘을 다해 서로의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내 뜻대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딸의 죽음과 아들의 이혼을 겪어야 했고, 남편은 마약중독으로 실종된 딸, 그녀가 남긴 저체중 손녀 등 많은 문제들을 껴안고 신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저자는 남편의 자식은 물론 친구들까지 한 부족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생각한다. 마치 우리네 옛날 대가족 제도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도록 돌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작은 체구지만 대단히 심신이 건강하고 사랑하는 남편 또한 변호사에 건강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들을 지원하는 부모와 친구들의 변함없는 애정은 그들로 하여금 많은 기적들을 이루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은 이혼을 잘 극복하고 다시 사랑을 찾았지만 위예의

자식들은 마약중독에 시달리며 아빠를 괴롭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환경도 너무 달랐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스팽글리쉬라는 언어를 만들어내야 했다. 각자의 과거, 문화, 습관, 그리소 인위적으로 합쳐놓은 가족간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자식들 문제 또한 우리를 갈라 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을 힘겹게 만들어 갔다. 그와 함께 미국에서 살기 위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쟁터와도 같은 혼란스러운 그의 삶에 힘겹게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위예 역시 많은 것을 양보하며 변화를 감수했다. 위예는 처음부터 우리 가족을 받아들였고, 내 일을 존중했으며, 최선을 다해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지지하고, 심지어 나자신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주었다. 그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나의 나쁜 버릇을 부드럽게 놀렸을 뿐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나와 경쟁하려 들지 않았으며 싸울 때조차도 기품있게 나를 대했다. 위예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나와 내 가족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분필로 작은 원을 그려놓았다. 나는 그 원을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의 우락부락한 외모 안에는 엄청난 달콤함이 숨겨져 있단다. 그는 덩치 큰 개처럼 센티메탈하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 많은 글을 차분하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출판계약이나 우리의 사교생활부터 신기한 가전제품들의 작동법까지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들을 그가 알아서 처리해주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그를 내 곁에서 보는 게 놀랍기는 하지만, 이제 나는 그의 거대한 존재감에 익숙해졌다. 그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구나. 위예가 우리 집을 가득 채워 준단다. 내 삶도 가득 채워주고.'    

 

나도 여러 식구들이 함께 자주 어울리는 시댁과 살았었는데, 늘 몸이 피곤하여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허약하여 직장과 살림을 병행하는 일이 벅차기만 했다. 남편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이었다. 

나 역시 내 삶이 남편으로 가득차는 삶이길 바랬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상대에게 가득 차는 사람이어야 했는데 나는 그럴 주제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문제에 직면하고 대신 나는 삶의 자유를 선택하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살아간다.

 

'기억은 연기처럼 뒤섞이고 뒤바뀌는, 허망한 안개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생의 막바지에 이르면 기억하는 만큼만 살아온 것이 된다. 나는 글로 쓰지 않은 것은 바로 잊어버린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도 같다.그래서 그 편지들에는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다. 가끔 어머니는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한 일을 얘기하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 나는 바로, 그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도록 편지를 쓰라고 어머니께 말한다.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돌아가신다면(그럴 가능성이 높다) 나는 105세가 될 때까지 매일 어머니의 편지와 내 편지, 그렇게 두통의 편지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즈음이면 노망의 혼돈 속에 깊숙이 잠겨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나는 우리의 편지 덕분에 두 번 사는 게 될 것이다.'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면 꿈처럼 아스라이 멀게 느껴지고 어떤 중요한 일도 몇몇 장면만 기억이 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 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 相肥相 卽見如來)'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이 실감난다. 일체의 제법이 모두 공한 줄 알면 그것이 곧 열반이라는 뜻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쓴다.  사라지는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쓰고 싶은 열망이 습관이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한 이러한 기록들이 사라져가는 나의 시간들을 심심치 않게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삶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만 보아도 나이 많으신 어머니 배안에서 쌍둥이 중 하나는 죽고 나만 살아 나왔다. 나보다 체격이 훨씬 컸던 그 애는 영양이 부족해서 마지막 며칠을 더는 못견디고 죽었는데, 작았던 나는 의외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서 세상밖으로 나온거다. 내가 죽고 그애가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작은 영양 공급으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내가 살아남은거다. 그렇게 힘겨운 출생의 고비를 넘기고 몇번의 대수술도 견디고, 나이들어서는 교통사고로 붕 떴다 떨어지고도 살았으니 기적이 아니겠는가! 

어찌 감사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이다.ㅎ

 

열정 넘치는 저자의 거침없이 써내려간 문장력이 두꺼운 분량인데 지루하지 않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잔 날 없다'는 말처럼 가지를 많이 뻗은 인생에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들의 흥미로운 내용들을 떠나간 딸에게 들려주는 에세이 형식이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