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한국인의 죄와 벌 (장 뽈 마티스 作)

나무^^ 2018. 11. 18. 19:34


문지사 한국인의 죄와 벌


지은이    장 뽈 마티스

출판사    문지사


 서울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들어가 본 알라딘 중고서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골랐다. 그중 하아인데, 프랑스인으로 서울에서 무역일을 하며, 한국인 아내를 둔 저자는 10여년간 한국을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했다. 주로 비판적인 내용이지만 구구절절 옳은 내용이라 읽는 내내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엿장수 마음'에서 프랑스와 개발 위주의 우리네 도시계획을 비교한 부분에서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엿장수 마음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식의 도시계획은 문제가 많지만, 한편 인간적 정서를 드러내는 말로서는 융통성있는 처사를 일컬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각박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는 위험천만한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명예와 책임'에서 한국인이 명함에 성과 이름을 바꾸어 쓰는 것을 지적했다. 우리식을 버리고 서양식으로 표기하여 오히려 그런 일이 없는 중국인보다 주체성이 약하게 비춰진 거다. 나도 성을 뒤에 쓰는 그런 표기법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또한 여러 장의 명함을 한꺼번에 받는 경우 외국인의 눈에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도무지 구별할 수 없어 인상착의나 특징을 썼다가 벌어진 헤프닝도 있었다. 우리 눈에 서양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거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같긴 뭐가 같애' 내용에는 '~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부하직원을 나무라는 사장님 이야기가 나온다. 확신없이 미적대는 듯한 느낌의 그 말을 나역시 싫어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지 여부도 모른 채 이 말을 즐겨 쓰며 뒤로 나앉는 느낌을 준다.  요즘 TV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일반인들이 마구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무서운 아이들' 에서 버릇없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한국말을 모르는 줄 알고 함부로 하는 언행들,

저자는 급기야 유명한 육아법 책 '아이는 사랑의 매로 키워라' (You and your chid)를 알려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어려워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어려워하는 행태로 변해버렸다. 자식을 존중하는 것과 무조건 하자는 대로 들어주는 것은 크게 다른 일이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버릇없는 아이로 키울 경우 그 과보는 고스란히 부모에게 돌아간다.


'한국의 대학'에서 몇 나라의 대학수를 비교했는데, 영국은 44개, 프랑스는 65개, 독일은 25개, 한국은 대학이 385개, 대학원 169개라고 한다. 이 숫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대학이 예전의 고등학교처럼 거의 당연하게 다니는 학교가 되었다. 그만큼 학문의 전문성이 대중화된 것에 비해 대부분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엘리트 교육이란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도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 생각되어질 정도인 것은 비단 저자의 생각만이 아니다. 대학을 나와도 제 앞길을 혜쳐나가지 못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하며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경우가 많다.


'출세 경쟁과 랑띠에'에서 프랑스어 '랑띠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들거리는 사람' 혹은 '팔자좋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평균적인 프랑스인의 이상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이상상을 이룬 셈이다.ㅎ

'한국인에게 있어 인간의 육체란 한 대의 기계에 불과한 것일까? 그 기계가  마멸되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지 않는 한 움직인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직함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프랑스에서의 직함은 사람이 인생을 보낼 때의 얼굴에 묻은 먹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에 묻은 먹은 닦으면 없어지고 만다. 진짜 인생은 개개인의 프라이비트(private)한 시간에 있다고 하는 프랑스적인 사고방식을 취한다면 70, 80세까지 직함을 갖고 일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한국적 사고방식은 인생의 낭비라 생각된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랑띠에 지향의 사상이 없음이 경제번영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개개인의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면에서 보면 중진국은 커녕 빈궁스럽게만 보인다. 나는 한 사람의 외국인으로서 근면한 한국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랑띠에를 지향할 생각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게 하면 이 가시 돋친 출세 경쟁도 조금은 완화되지 않을까?...' 저자의 말이다.


짤막짤막한 글이라 재미있게 금방 읽었다. 저자가 더 오래 한국에서 살면서 아내를 비롯하여 한국인들의 좋은 점을 많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을 지닌다. 세상만사의 모든 이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