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래전 옛동료를 만나다

나무^^ 2020. 6. 20. 19:37

 

삼십여년전 신설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연륜이 묻어나는 좋은 인상으로 가볍게 포옹하며 반가히 맞아주었다. (앗, 코로나 감염 주의! ㅎ)

강화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는 그는 올 구월이면 정년퇴임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다는 인천에 사는 후배를 만나 함께 가기로 해서 그녀의 집으로 가는데,

예전에도 한 번 그러더니 오늘 또 네비가 버버거려 애를 먹이면서 삼십여분 넘게 헤매다 도착을 하였다.

길을 잘못 안내하는 것도 모자라 가다가 두 번이나 꺼지는 바람에 난감해져서 그냥 강화로 바로 가야하나, 집으로 되돌아가야하나 생각하며, 약속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삼십여분 미리 계산하고 나선 게 소용없이 되버렸다. 

이러니 이제는 낯선 길을 나서는 장거리 운전은 점점 더 하기 싫어진다.

(아들 왈, 아마도 플러그를 꼭 끼우지 않았었나 봐요.)

 

근처에서 과일이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야지 생각했지만, 오랜 만에 만난 후배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그만

빈손으로 도착하고 말았다. 아뿔싸, 단단히 결례를 하고 말았다!

그는 전등사 학교 근처 맛난 간장게장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였다. 한참을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늦은데다

빈손으로 방문한 게 미안하여 식사비를 내려고 잠시 화장실을 가는 척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주인을 찾는데 어느새 그가 달려와 나를 밀어내고 계산을 하였다. 아, 그러면 안 된다며...

 

부천시가 생기면서 인구가 많아지고, 자연히 신설학교가 필요해져서 스무명 좀 넘는 직원이 한꺼번에 옮겨가게 되었다.

새로 만난 별난 교장선생님과 함께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스레 동료들끼리 친해지며 정이 들었다. 

나는 새학교에서 과학주임을 맡으며 너무 힘들었는지 한달 내내 감기가 떨어지지 않더니 급기야 경증 결핵 진단을 받고 병가를 내야만 했다. 교감 선생님 왈 "군대에서는 감기 걸리면 다 경증 폐결핵이라고 하지만, 약 먹으면 다 괜찮아." 하신다. "그러다 더 악화되거나 애들한테 전염되면 교감선생님께서 책임지세요." 라는 내 말에 성품이 좀 느릿느릿한 교감 선생님께서 병가를 허락하셨다. 강사가 잘 없던 시절이라 아이들을 몇명씩 나누어 다른 반에 한 달간 보내고 병가에 들어갔지만 신설학교이다 보니 수시로 불려나가 업무를 보아야만 했다. 지금도 건강진단을 하면 한쪽 폐에 그때 앓았던 흔적이 남아 매번 설명을 하곤 한다.

 

함께 갔던 후배는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어느 월요일, 직원회의 시간에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운다. 그날 일직이었던 선생님이 대표로 외우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갑자기 벼락처럼 들리는 교장선생님의 불호령, "크게 해요!" 순간 너무 놀라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 곧이어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

"교장 선생님이 하세요." 그녀는 조용하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화들짝 놀라 일제히 그녀를 보았다.

잠시 당황했던 교무 선생님이 얼른 다시 외우며 이어진 직원회의는 전달 사항들을 말하고 서둘러 마쳤다.

그때는 상사에게 이런 반발이 있을 수 없는 때였다. 교장선생님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만 하던, 교장이 곧 법인 때였다. 밉보이면 그야말로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운 때였다. 직원회의나 부장회의 등에서 합리적인 제안이나 반대를 하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 그냥 명령하면 무조건 해내야되는 그런 조직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교장실에 들어가 사과하라는 교무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그녀는 수업을 하러 교실로 가버렸다. 

결국 교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교장선생님이 그녀를 불러 사과를 하고 만 사건이 되었다.

그녀는 몸이 아파 도저히 출근하기 힘든 것을 참고 간신히 왔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의 호령에 그만 화가 난 거였다.

그게 그렇게 큰소리를 쳐서 망신을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당돌하게 반발을 하고, 성급한 교장선생님은 체신을 잃고 말았다. 우린 나중에 그녀에게 박수를 치며 속이 다 시원했다. 

그 학교에서 근무한 삼년동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다. 우린 옛날이야기들을 나누며 많이 웃었다. 

 

전등사에 가서 여러 가지 꽃나무들을 보면서 그가 이름들을 가르쳐주었다. 숲 해설사 자격증을 따느라 나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가 알려준 꽃나무 이름 중 흔히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새로 나는 잎과 꽃을 함께 두꺼운 사전 속에 압착했다 선물이나 카드에 붙이면 너무 예쁜 장식 효과를 내는 국수나무, 흰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각시말발도리 등등...  

오랜 만에 와본 전등사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멋지고 알록달록 핀 꼿들이 아름다웠다.

예전에 남편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절 경내에 카페도 있어서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강화가 고향인 아내와 이곳에 정착해 전원생활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커다란 나무판에 글씨를 전각하는 작업대도 보여주었다. 전국대회에 나갈거라나, 또 기회가 되면 색스폰 연주도 들려주겠다고 한다. 예술적 기질이 많은 이였다. 솔직하고 쾌활한 성격이라 우리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며 즐거웠다.

언젠가 학교에서 야외나들이를 가던 중 버스 속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시켜서 내가 나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그도 좋아하는 노래였는지 얼른 일어나 나와 함께 노래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웃긴 것은 한 고지식한 동학년 동창이 뜬금없이 묻기를 "둘이 사귀어?" 어이가 없었다. "무슨, 왜 그런 말을 해?" 했더니 "지난 번 노래 부르는데 아주 다정해 보여서..." 한다. 나는 그 때 결혼해 아이가 있었을 때라 모두들 웃고 말았다.  

 

성심껏 가꾸고 돌본 학교를 구경시켜주며 텃밭에서 가꾼 상추를 솎아 한봉지씩 담아주었다.

다정다감한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돌아오는 발길이 즐거웠다.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그 시절 함께 근무했던 때처럼 대해주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 몰라볼 만큼 변한 나를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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