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어릴적에...

나무^^ 2020. 8. 16. 20:00

이 여름 수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난감하고 불편할까...

한여름에도 아주 차겁지 않은 물로 목욕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나의 일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추운 겨울, 나갔다 들어와 언제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때면 안락감과 함께 어릴 적 월례행사처럼 온 가족이 목욕을 갔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용산구 해방촌과 후암동 사이에 있는 신흥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술래잡기를 하다 어두워져 내려다보면 저 멀리 마치 별천지인양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시내가 보였다. 

언젠가 한여름에 학교에서 돌아온 큰오빠는 마루에 앉아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집을 장만해 다니기 힘들게 하셨을까!'

그런 아버지 덕에 아무리 홍수가 져도 수해를 입은 적이 없었다.

해방직후 이북에서 넘어와 가진 것도 배움도 없었던 부모님은 높은 곳에라도 집을 장만해서 험난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살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겨울철 한 달에 한번 정도 온 가족이 옷을 잔뜩 껴입고 언덕을 내려가 한참을 걸어가야 있는 목욕탕(지금의 남영동이었던 것 같은데, 버스정거장으로 치면 족히 서너정거장 거리는 될 것이다)을 갔었다. 나는 어머니와 여탕으로, 오빠들은 아버지와 남탕으로 들어갔다. 가족들과 나들이처럼 함께 나서는 일은 즐거웠지만 뜨거운 온탕에 오래 들어가 있어야 했던 것은 곤욕스러웠다. 그래도 어머니 말에 고분고분 순종했던 나는 괴로움을 참으며 견디다 기진맥진 지쳤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때를 박박 미는 것도 살갗이 까지는 듯 아팠다. 아마도 두어시간은 족히 목욕탕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한달간 덕지덕지 쌓였을 때를 불리고 불려서 말끔히 씻어낼려니... 

장시간 목욕탕에 있었던 가족들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 반짝거렸다.

그 외 계절에는 부엌에서 큰 함지박에 더운 물을 담아 어머니가 씻겨 주셨다. 너댓 살쯤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마솥에서 더운 물을 떠서 부어주시던 아버지가 벌거벗은 내 몸을 보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던 기억도 난다.

 

병약했던 막내딸을 많이 사랑했던 어머니이지만 41살에 늦둥이 딸을 낳은, 나이 많은 어머니가 나는 늘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 애들은 도무지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게 일상이지만, 내가 어릴 때는 부모님 말씀을 거역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깍듯하게 대하듯이 자녀들도 부모님 말에 무조건 순종했다.

자녀란 부모가 하는대로 배우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사를 잔소리로 생각하고 반발하는 아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인 아내가 돈을 벌면서 핵가족화 된 삶의 방식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듯 하다.

어쨌거나 나는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원만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반면에 내 아들은 줄곧 남의 손에 맡겨져 키워졌다. 내가 직장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애정결핍 증세를 보였다. 엄지 손가락을 몹시 빨아 살갗이 헐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적어도 3살까지는 반드시 엄마가 아이를 돌보아야 하고, 7살까지 엄마가 양육을 해야 심신건강에 바람직하다고 한다.

지금은 전문직에 한해서 양육휴가를 3년까지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때는 고작 한 달 휴가를 주었었다. 멀리 출퇴근을 해야했던 나는 너무 힘들어서 출산일보다 일주일 먼저 휴가를 받고 쉬었다. 그런데 아들이 출산일보다 일주일을 더 늦게 나오는 바람에 나는 보름만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교단에 서야했다.

아들은 그때부터 늦쳐지는 인생살이를 시작한 거다.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지만 엄마를 직장에 보내야 하는 많은 아이들은 원만한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

심지어 힘들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는 비혼 여성이 늘어가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었다.

 

인생은 새옹지마,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주위에 비혼여성으로 나이를 먹은 지인들이 몇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놓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아쉬워했다.

젊을 때는 모르는, 나이들어야 느끼는 외로움이다. 물론 자식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결이 다르다.

상대적 고독감은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여성으로 태어나 아이를 출산하고 키워내는 일보다 더한 일이 있겠는가!

 

어서 코로나 19도 진정되고 수해복구도 빨리 이루어지길 비는 마음으로 약소하지만 성금에 참여한다. 

어려운 시절을 잘 견디고 버티어내는 수 밖에 없다. 좋은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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