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한국 대표 수필 문학전집 (1)

나무^^ 2021. 6. 3. 15:03

( 노각나무 꽃)

1975년 9월,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한 이 책은 내가 처음 경기도 전곡에 있는 초등학교에 근무를 시작할 때 산 책이다.

그때는 학교로 책이나 화장품을 팔러오는 분들이 있었다. 내가 번 돈으로 이 전집과 한국 단편 문학전집을 월부로 사놓고 흐믓했었다. 그러나 바쁜 일과를 핑게로 모두 다 읽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책을 이제사 다시 펴들었다. 세로쓰기의 잔 글씨들이지만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냄새, 살림살이라곤 없던 자취방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퇴근해 돌아온 작은 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쓸쓸함과 행복감이 겹치던 시간, 밤늦도록 휴대용 축음기판을 돌리며 아름다운 선율을 벗 삼아 책을 읽다 잠들곤 했었다. 

 

제1집에는 이조말엽의 문신이자 의병장이였던 최익현, 정치가이자 국어연구가였던 유길준, 서예가이자 신소설가 현채, 독립운동가 박단식, 언론인 장길연, 정치가 윤치호, 독립운동가 김구, 안창호, 한글학자 주시경,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한용운,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신채호, 국악사 함화진, 국어학자이며 사학자인 이윤재, 사학자이자 언론인 문일평, 시인이며 사학자인 최남선,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이승기,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재홍,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 사학자이자 시조시인 정연보의 글이 실려 있다.

 

시대가 참혹했던 만큼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은 한결같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고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역설하였다. 한문이 많은 한자글들을 읽기가 편하지 않았지만 선각자들의 나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예전에는 한자말이, 지금은 영어가 뒤섞이는 우리 글을 보면서 대중을 이끌어 가는 지식인들의 우리글 사용하는 의식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자기나라 말과 글을 소중히 여겨 그 정신을 물려주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길준님의 <사람의 도리>를 읽으며 새삼스레 오늘날 무너지는 사회나 가정의 기강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구님의 글에는 일본의 꾐에 넘어간 중국인들이 독립운동가들의 머리를 베어 왜영사관에 두당 10원에서 3,4원을 받고 넘기고, 독립군의 소재를 밀고하는 등 혼란스럽고 악랄한 일들이 벌어지는 만주에서의 사태를 통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우리 나라를 이웃나라 연방에 편입하기를 바라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며 꾸짖는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 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이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에 반대한 그의 철학이었다.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그는 대한 독립을 염원하며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반대 세력에 의해 안타깝게도 암살되었다. 우리 민족의 분열의식은 역사적으로 계승되기라도하는 듯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도가 지나쳐 민족의 앞날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권력욕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주시경님의 글 중 <일찌기 혼인하는 폐>에서는 '몽매한 나라일수록 혼인이 인생에 제일 큰 일인줄 모르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며 정중한 주선은 하나도 없이 음욕이 싹만 날만하면 짐승같이 혼인을 행하며... 혼인이라는 것은 인생의 큰 낙을 위함이어늘, 전후 대소 이해 불계하고 일찌기만 혼인하는 것은 낙이 되기는 커녕 고생과 걱정투성이를 만드는 것이라...'라고 대책없이 어린 나이에 혼인하는 풍습을 염려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자식을 책임지고 고생하는 일이 싫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혼기가 한참 지나도 결혼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 사는 일이 부지기수다. 인생의 낙을 지례 포기해버리고 쉽게 살아가는거다. 비교적 고생하지 않고 살아온 세대의 책임지기 싫은 정신적 나약함 같아서 안스럽다.

 

안창호님은 '우리의 목적의 하나가, 일전에도 말한바와 같이 우리 대한 사람은 스스로 한 뭉텅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독립을 승인하여 주기 전에 나라를 이룹시다. 우리가 원수 손 아래서 물질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나 정신상으로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임시정부를 세웠으니, 인제는 불가불 일치하여야 하겠소... 나는 내무총장으로 있는 것보다 한 평민이 되어 어떤 분이 총장이 되든지 그 분을 섬겨서 우리 통일을 위하여 힘쓰고 싶소... ' 라고 연설한 글이 나온다. 또한 노예의 수치를 절실히 깨달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독립의 거름이 되자, 입으로 독립을 외치지 말고 몸으로 독립군이 되자 호소한다.  

식민지 삶이 끝나기 무섭게 같은 민족끼리 총뿌리를 겨누다 결국 분단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생명을 치루고 얻은, 어이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나온 수십년 세월, 세상에 단 하나의 분단된 나라로 살아가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력투쟁을 위해서 나라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그토록 많은 가짜뉴스를 퍼트려서 어쩌자는 건가! 나의 사욕을 위해서는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것인가!

또 <개조>라는 글에는 많은 야만적 습관을 개조하여 문명스러운 습관을 지닐 것을 호소한다. 세상의 모든 큰 일은 가장 작은 일로부터 시작하였고 크게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것에서부터 풀어가야 함을 역설하셨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안 좋은 습관을 고치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은 일생을 통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한용운님의 <인조인>이라는 글에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조인으로 인한 여러 폐단이 발생하여 둘 사이에 벌어질 증오와 갈등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고, 자연인은 우량화된 인조인에게 패할 것이기에 그런 어리석음 대신 인조 식량을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서양보다 먼저 동양에서 '열자기(列子記)'에 의하면 정교한 목인을 만들어 왕 앞에서 춤을 추게 한 후 왕을 노하게 하여 급히 허물었다는 이야기를 예로 든다. 바야흐로 앞을 다투어 AI 인공지능 로보트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그것으로 인한 미래를 예고하는 영화도 나와 놀랍다. 의료시설이나 작업장의 편리함을 도모하는 유익함을 넘어 과도한 발달은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만주 산간에서 어이없이 조선 청년에게 총을 맞아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에는 무슨 연유로 총을 맞았는지도 모른 채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지만, 그때 뼈속에 박힌 탄환을 다 끄내지 못해 날만 추우면 고개가 휘휘 돌려진다 하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살다보면 어처구니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고통과 쾌락' 글에서는 '세상에는 고통도 없고 쾌락도 없거늘 다만 고통으로 느끼면 고통이 되고 쾌락으로 느끼면 쾌락이 되느니 고통이 곧 비고통이요, 쾌락이 곧 비쾌락인 동시에 고통 즉 쾌락, 쾌락 즉 고통이니라...' 즉 원효대사의 '마음이 생긴즉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한즉 갖가지 법이 멸한다'는 진리를 말한다. 이것을 깨닫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나 이 법을 알아야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함화진님의 <국악의 분포상태> 글에서는 국악 예술을 6가지로 분류하고 대중적으로 향상과 발전이 뒤지는 까닭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초등교과서를 비롯하여 국악 보급에 힘쓰지만, 시대는 트롯트 열풍이 불면서 어린이들까지 모두 대중가요에 빠져 어른 흉내를 내고 TV매체는 이를 아무 자각없이 방송하며 열을 올린다. 즉 어린이다움이 사라지는 일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음악이 등한시되면서 창작동요나 우리 가곡은 점점 멀어져 안타깝다. 대중가요 만큼 부르기 쉽지 않아서일까?

 

이윤재님의 <세종대왕과 문화사업> 글에는 세종대왕의 높은 학구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왕께서는 글을 읽으시면 반드시 백 번씩 읽었다고 하고 병중이든, 엄동설한이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분의 훌륭한 업적은 타고난 총명함과 함께 이러한 꾸준한 노력이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서가 점점 멀어지고 그 자리를 게임 등 온갖 기기가 대신하면서 세상은 범죄와 부도덕함이 늘어간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오는 단점일 것이다.

 

이승기님의 글 <구일기(舊日記)>에는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던 중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유치장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구순된 아버지가 자신의 방에 불을 때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다.

 

나혜석님의 <후기인상파>글 중에는, 인상파나 신인상파는 광선묘사에는 성공하였으나 인간성을 잊었고, 후기인상파 화가들은 자아의 표현과 예술의 본질을 잊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즉 예술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개체화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전해 내려오는 미와 추함의 무의의(無意義)한 것을 알아 그것을 초월한 인정미로 만상을 응시하여 인생과 같은 값진 작품을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작품은 자연의 설명이 아니요, 보고 즐겨할 취미의 것도 아니요, 인격의 표징이요 감격이었다... 세잔느의 설(說)은 그리는 것은 인식이다. 고흐의 설은 그리는 것은 감각이다. 고갱의 설은 그리는 것은 생각이다. 루소의 설은 그리는 것은 창작이다.' 간결하게 네 화가의 특징을 표현하였다.

또한 <베를린에서 런던까지>는 보고 생각한 것을 자세히 적었다. 그녀가 접한 유럽문물들은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연보님은 <단재와 사학>, <이충무공순신 기념비>, <윤봉길 열사 기념비문>, <순국열사 추념문>에서 그들의 정신을 기린다. <마음의 절제> 글에서는 '남이 모르고 나 혼자만이 아는 이것이 수행하는 추요(樞要)지대다. 아무리 잘 속이는 무리라도 저는 못 속인다. 속일 길이 없는 이 한 자리가 사람으로서 사람 노릇하는, 학문을 하는 다시 없는 외길목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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