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대화

나무^^ 2020. 12. 27. 17:55

 

햇볕 따사로운 오후,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하다.

향기 깊은 차를 마시며 네 분의 대화를 들어보고 싶어 책을 펴 들었다.

90대 피천득 선생님과 80대 김재순 선생님의 대화에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서로가 지닌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저는 깊이있는 신앙생활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저 신앙이란 홀로 있는 것, 신이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자득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기도는 소원이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감사의 기도입니다.'라는 우암 김재순님의 말에 금아 피천득님이 답한다. '저역시 좋은 기도란 바로 감사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제 방에 노인이 기도를 드리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 노인은 수프 한 그릇, 방 한 조각을 놓고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극히 소박한 생활, 그것이 종교의 본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신앙의 본질을 망각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금아 : 늙으면 아무리 똑똑하던 사람도 허수아비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죠.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인연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런 것들은 우리 머리속에 다 저장되어 있다가 어는 순간 되살아나거든요.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은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의미이지요. 인생을 관조하고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수도 있고요. 늙음이란 물론 젊음만은 못하겠지만,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겠지요.'

'우암 : 선생님, 사람의 생애를 판단할 때는 역시 그 분의 최후가 어떠했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경주의 결승점은 역시 죽음,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도산의 진실과 용기있는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어서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했는데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철학의 종착지가 아닐까 합니다.현대 과학은, 유전자는 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체의 생명은 죽어 없어져도 유전자는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참다운 용기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조상이 되고 싶군요.'

'금아 : 만년의 아인슈타인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지요.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배워야 하겠지요.'

죽음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내가 언젠가 곧 사라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늘을 정성껏 사는 것일게다.

 

70대의 법정스님과 60대의 최인호 작가가 나누는 대화에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 소욕지족(小欲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라는 스님 말씀에 작가는 말한다.

'... 밤이 되어야 별은 빛나듯이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어요.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지요. 진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즐거움을, 그저 가볍게 행복감을 즐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작가는 쾌락의 범주에 넣고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행복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한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일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며,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법정 : 사랑이라는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 누구나 자기 집에 도자기 한두 점 놓아두고 싶고 좋은 그림 걸어두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거기 그림이 있는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소유란 그런 거예요. 손 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요... 보는 눈만 있으면 자기 것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여유 있게 그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요. 소유하려 들면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집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사랑도, 대인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이기적인 흥정이지요. 사랑은 따뜻한 나눔이고 보살핌이고 관심이지요. 더 못줘서 안타깝고 그런 것이 사랑인데 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는 희생이 따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변함없이 어머니의 사랑을 최고로 드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순지고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철없는 어미도 혹간 있긴 하지만...

 

'법정 : ...아무리 속상해도 막말은 하지 마라. 막말을 하게 되면 상처를 입히고 관계에 금이 간다.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막말은 하지마라. 관계의 균열이란 사소한 일, 무례한 말 같은 것에서부터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결혼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신다는 말씀이다.

나는 막말을 들어본 적도 있고 해본 적도 있다. 따라서 반성을 많이 하면서 스스로를 꾸짖으며 후회했다.

허물없는 사이라고, 또는 상대가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어리석음을 행하는 것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르다.

 

'최인호 : 단순하지 못함, 복잡함은 분명 현대인의 병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상과 물질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풍부하다보니 이제는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조차 잃어버렸어요. 진리는 아주 단순한 것인제 말입니다. 목이 마를 때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맑은 물을 마시는 일 뿐인데 현대인은 술이나 달콤한 음료를 찾지요, 그것은 갈증을 더할 뿐 결코 우리의 마른 목을 적셔줄 수 없어요.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셔야 한다는 진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듯 신의나 정절 같은 덕목 역시 불변하는 가치입니다...' 라는 말에 법정 스님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혼탁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있기 마련이고, 그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늘 생각하고 보다 나은 쪽으로 행동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깨어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눔에 대한 대화에는 '무주상보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와 '용서','죽음'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두 가지는 실제로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일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나의 잘못을 용서받듯이 남을 용서하는 일은 얼마나 선한 일인가!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러운 생명현상'이라고 말씀하신 법정스님, '두려운 죽음이 인생의 완성'이라고 말한 작가님 등 네 분이 이제는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시다. 

나역시 머잖아 이곳을 떠나갈 것이다. 아들을 남기고...

오늘 이 하루가 감사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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