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파친코

나무^^ 2022. 12. 10. 13:27

 

지인의 소개로 읽게 된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관 때문에 드라마로 나온 것을 조금 보고서야 흥미를 느껴 사보게 되었다.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어 며칠 안 되어 1,2권을 다 읽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님의 장편소설로 1932년에서 1989년을 배경으로 하였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선자'가 일본으로 넘어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뿌리 내리는 과정이다.

작가의 후기를 보니 자료 조사를 엄청 많이 하여 실감나게 쓴 책이었다.

 

1부 '고향'의 줄거리이다.

가난했던 어촌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순진한 선자가 영리한 중개상 한수를 만나면서 기구한 삶이 펼쳐진다. 그 당시의 관습대로 부유한 한수는 선자를 첩으로 삼으려고 했고 그것을 거절한 선자는 임신을 한 채 이삭을 만나 구원을 받는다. 그들은 일본에 살고 있는 형 요셉의 초청을 받아 오사카로 향한다.

여인네가 잘 살고 못 살고는 혼례 올리는 사내에게 달렸으니 고생을 각오하고 열심히 일하라는 선자 어머니 양진은 믿을 건 자신뿐이라고 딸에게 이른다. 못 배운 아낙의 깨친 말씀이다. 잘못한 딸을 꾸짖기보다는 격려하며 이국땅으로 보내는 모성애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한수는 분명 제욕심을 차린 사내지만 시종일관 그리 악하지 않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식민지 당시의 상황으로 그보다 더 영리한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유한 일본인의 수양아들이 되어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았지만 그는 선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평양에서 선자의 집에 하숙하러 온 몸이 허약한 이삭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은혜를 갚으려고 곤경에 빠진 선자와 혼인한다.  선량한 이삭은 이상적이고 종교적인 사랑으로 선자와 그의 아들까지 품었다. 오사카에서 목사생활을 하며 한수의 아들 노아를 낳는다.  그러나 일제치하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선자는 한수에게 정표로 받은 회중시계를 전당포에 팔아 시아주버니가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진 빚을 갚는다. 형제간의 진정한 우애는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만 선자와 동서인 경희는 서로를 위해주며 삶의 의지처가 된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예전 우리 민족의 혈육간의 정이다.

 

2부 '모국'은 1939년 오사카에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천왕의 신사참배에서 함께 일하던 청년이 주기도문을 외우다 순사에게 모두 잡혀가는 참변이 일어난다. 

형 요셉이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내가 대부업자들 밑에서 일하는 것과 요셉이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나쁠까? 조선 남자에게 선택이란 항상 엿 같은 일이었다.' 라는 문장은 선자와 경희가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요셉에게 가혹한 고문처럼 괴로운 일이었음을 의미한다.

우리 오빠들도 자신이 아내가 살림만 하기를 원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살지언정 아내가 돈벌기를 바라지 않았다. 예전에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고운 아내가 가족들을 돌보는 안살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선자의 아들 노아는 2년이 넘도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버지 이삭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자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된다. 그리고 차라리 일본인이 되기를 소망했다.

선자는 이삭의 아들 모자수를 낳았지만 집에 돌아온 이삭은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는다. 형 요셉은 자책감에 시달리며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11년전 한수가 준 회중시계는 곧 한수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부하직원을 통해 선자와 경희가 일할 식당을 차려 그들의 삶을 돌보아준다. 한수를 법적으로 입양한 일본인 대부업자의 큰 딸이 그의 아내였다. 딸만 둘이었던 그는 노아가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고 전쟁패망으로 치닫는 일본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힘쓴다.

한편 일하러 떠났던 이삭의 형 요셉은 사고로 중증화상을 입고 돌아오고 농장에 모이게 된 가족은 그를 대신하여 생계를 이어간다. 큰아들 노아는 모범생으로 공부를 썩 잘해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란다.

둘째아들 모자수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돈을 벌기 위하여 조선인 파친코 사장 고로 밑에서 일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갔다.

 

한수의 도움으로 돈걱정에서 벗어난 노아는 와세대 대학 영문과에 다니며 여자친구 아키코를 사귄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에게 질려서 이별을 선고한다. '노아는 자신이 깨달은 잔인한 일을 아키코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코는 자신이 부모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인이 선량하든 불량하든 상관없이 노아를 조선인으로로만 보는 것은 결국 불량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키코는 노아를 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었고, 노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저 한 인가능로 여겨지고 싶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키코의 말처럼 한수가 자신의 아버지였는지 선자에게 확인한다.

핍박받는 조선인의 오명을 벗고 최고가 되고 싶었던 노아... '선자앞에 서있는 청년은 차디찬 쇳덩어리 같았고 선자를 마치 모르는 사람 대하듯 바라보았다.' 부모의 잘못으로 원하지 않는 삶을 성심을 다해 살았던 노아는 냉정하게 선자를 떠난다.

어느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백분 이해하겠는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면 알까?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해할까?

노아는 나타나지 않은 채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한수에게 진 빚을 모두 갚는다.

 

3부 '파친코'는 1962년에서 1989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노아의 꿈이 좌절되고 그를 총애했던 선생님이 사시는 나가노에 간 노아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파친코업소에 취직한다. 다른 직종에 취직하지 못하고 결국은 운명처럼 그리로 들어가고야 만다.

한편 모자수는 궁핍한 가정에서 자란 유미와 결혼하여 솔로몬을 낳았지만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는다.  

모자수와 친구 하루키의 대화에서 조선인들의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잘 드러난다. 일본인들이 경멸하는 파친코장을 운영하는 조선인들은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선자는 한수를 찾아가 노아를 찾게 해달라고 부탁해 얼마후 그리던 아들을 만난다.

누구나 살면서 꿈이 좌절되고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험들을 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나마 삶을 버티어낼 수 있다. 모자수가 다시 만난 에쓰코는 한때의 외도로 자식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린 딸은 그녀를 가장 괴롭게 한다.

'삶에는 모욕당하고 상처받을 일들이 너무 많았고, 에쓰코는 자기 몫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치욕이 쌓여있는 처지이면서도 솔로몬의 치욕을 가져다가 자신이 떠안고 싶었다.' 아마도 그런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과 아버지 애인인 에쓰코의 딸 하나, 그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슬프다. 하나가 부정했던 어미에게 하는 자식으로서의 복수는 처참하다. 스스로 더러운 꽃이라며 솔로몬 곁을 떠난 하나의 절망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한수의 양아버지이자 장인이였던 야쿠자가 죽자 그 뒤를 이어받은 한수는 아내가 죽은 후 선자와 함께 하길 바라지만 노아를 잃은 슬픔에 빠진 선자는 그를 원망하며 거절한다. 그녀로서는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뉴욕에서 금융업을 공부하고 와서 은행에서 일했던 솔로몬은 업계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해고 당한다. 그는 성실하고 정직하다고 믿는 아빠밑에서 일하기로 하지만 모자수는 안타까워하며 마다한다.  

'널 미국 학교에 보낸 건... 아무도 내아들을 깔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난 사람 대우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었단다.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본인들은 뼈속 깊이 조선인을 경멸하고 그들의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하게 철저히 차단했다.

'노아가 죽은 지 11년이 흘렸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파도에 깎여 둥글어지는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던 가장자리가 무더지고 부드러워졌다.' 선자는 다시는 한수를 만나지 않았지만 그를 꿈에서 만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서 한수는 선자가 어렸을 때 본 모습 그대로였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빈곤한 삶에는 이런 순간들과 추억이 있어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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