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1 송태욱 옮김
*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우연히 읽게 된 책으로 처음에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은근히 재미있어 끝까지 다 읽었다.
1984년~2004년까지 일본 지폐에 작가의 초상이 실릴 만큼 사랑받은 국민 작가라고 한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써 나간 것이 재미있다. 이렇다 할 줄거리 없이 몇 사람의 상황과 생각으로 대화를 끌어나가는 필력이 대단하다.
‘항간에 고양이의 사랑이라는 하이쿠 취미 현상이 생겼다는데, 이른 봄날 동네의 우리 고양이 종족이 꿈자리가 편치 않을 만큼 들떠 돌아다니는 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정신적인 변화와 마주한 적이 없다.
무릇 연애란 우주적인 활력이다. 위로는 하늘의 신 유피테르로부터 아래로는 땅속에서 울어대는 지렁이와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연애라는 길에서 애태우는 것이 만물의 속성이므로 우리 고양이들이 어슴푸레해지는 것을 기뻐하며 시끌벅적한 풍류 기분을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얼룩이를 몹시 그리워한 적이 있다. 삼각법의 장본인 가네다씨의 딸인 콩고물 떡 도미코조차 간게쓰군을 연모한다는 소문이 돌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천금 같은 봄밤에 마음이 들떠 온 천하의 암코양이와 수고양이가 미쳐 돌아다니는 것을 번뇌의 미망이라 경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무리 유혹을 받아도 내겐 그런 마음이 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지금 내 상태는 오직 휴식이 필요할 따름이다. 이렇게 잠이 쏟아져서야 연애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어슬렁어슬렁 아이들의 이불자락으로 기어들어 기분좋게 잠을 잤다.’
고양이를 빌려 주인공과 주위의 인물들을 묘사하며 두꺼운 책 한 권을 써 내려가는 박식함과 심리적 예리함이 놀랍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싶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을 때는 놀리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다른 사람에게 다소 상처를 주지 않으면 사실상 자신이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안심하고 있어도 실현되지 않으면 쾌락은 의외로 약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믿는 법이다. 아니, 믿기 어려운 경우에도 믿고 싶은 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라면 안심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적용해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그의 필력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유럽인에 따르면 사람의 체내에 순환하는 네 가지 액으로 욱하고 솟구치면 화를 내는 노액(怒液), 신경이 둔해지는 둔액(鈍液), 우울하게 만드는 우액(愚液), 사지의 기력을 왕성하게 하는 혈액이 있다. 인문이 발전함에 따라 현재는 혈액만이 옛날처럼 순환하고 있다며 사람마다 다르긴 하나 그 10리터가 거꾸로 솟구치면 윗부분은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그 밖의 부분은 결핍을 느껴 차가워진다. 그것을 치유하려면 혈액을 골고루 배분해 아래로 내려야 한다. 그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플라톤은 그것을 신성한 광기라 하여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것이라 하였다. 그 예를 여러 가지 들어 고양이의 시선으로 발전시켜가는 확장이 자뭇 흥미롭고 재미있다.
‘바둑을 발명한 자가 인간이니 바둑판에 인간의 기호가 나타난다고 한다면, 답답한 바둑돌의 운명은 좀스런 인간의 성품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둑돌의 운명으로 인간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이란 천공해활(天空海闊)한 세계를 스스로 좁혀 자기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자리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도록 잔재주를 부려 자신의 영역에 새끼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란 구태여 고통을 바라는 존재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고양이가, 주인집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친우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제자인 간게쓰군의 바이올린은 느리고 느린 속도로 주위 사람들을 복통 터지게 하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그와 이어지는 대화에서 작가의 자조적인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며 그의 사상을 엿보게 한다.
고양이가 술을 먹고 독에 빠져 허우적대다 자각하며 저항하지 않고 고통에서 놓여나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세월을 잘라내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함으로 들어선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작가의 익살과 해학을 소설적 장치로 고양이를 내세워 냉철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10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현실을 그린 듯 느껴진다. 영국과 독일 문학을 표절했다고 비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크게 나무라고 싶지 않다. 학창 시절 외었던 김영랑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시가 이 제목을 빌린 건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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