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 충북 단양 제비봉)
아버지
娜 舞
이름만 있는 아버지처럼 존재하시다
어느 날 병들고 쪼그라진 육신을 버리고 떠나셨다.
나는 먼 중국의 사막에서 그 분의 죽음을 모래바람처럼 지나쳤다.
일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밤
이름만 있었던 아버지가 아닌 그 분을 만나 오래 울었다.
마치 세상을 떠난 후에야 진가가 알려지는 명화의 작가처럼
無明을 후려치는 금강경처럼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 내내 무심한 아버지는
단 한 번 칭찬도 꾸중도 염려조차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분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 숨가쁘게 살았다.
언젠가 잡아본 갈라지고 터진 손에서
측은한 삶의 힘겨움을 느꼈을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 늙어 다른 이와 사는 그 분께
죄꼬리만한 생활비를 자동이체하고 잊고 살았다.
병든 육신을 마다하는 여자를 떠나 아들 집에서
종일을 우두커니 앉아 강아지들 바라보실 나날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림퍼즐을 사들고 찾아갔다.
허나 그 분은 중환자실에서 목숨을 버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그 분의 몫을 다하셨다는 것을
연약한 딸의 존재를 묵묵히 인정해주셨다는 사실을
세상이 힘겨운 내게 가장 절실한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산처럼 나무처럼 좋은 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박한 無爲의 삶을 산 그 분이 내 안에 살아있고
또 그 분의 유전자가 내 아들 마음에 이어지며
인생의 어떤 비밀도 지닐 게 없는 天福을 누린
나의 아버지는 生死를 떠난 삶을 이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