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가려다 어이없게도 가지 못한 동유럽 여행을 11박 12일 하고 와서 이틀간 잠을 자며 여독을 풀었다. 어린 시절, 그 쪽 지방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데를 가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동구권 문화를 접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이었다.
독일, 체코(체크가 맞다며 가이드는 강조했다), 폴란드, 헝거리, 오스트리아 5개국의 유명한 곳을 둘러보았다. 그 아름다운 곳들을 숨 넘어가듯 쫓아다녀야 하는, 여행사를 통해서 갈 수밖에 없는 주변머리없는 자신이 맘에 들지 않지만, 힘든 것이 싫은 나는 편하게 다녀오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허긴 영어 잘했던 남편도 혼자라면 몰라도 약한 나와 함께 배냥여행을 하는 것은 무리라며,(사실은 경험부족으로 인함) 오래전 서유럽을 여행사를 통해 함께 갔었다. 그러나 나는 힘들었지만 친구와 두 차례 배냥여행을 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이 주는 이점과 함께 고충을 맛보아야 했다. 언젠가 다시 배냥여행을 하자는 친구가 나오면 다시 가서 제대로 보고 싶은 나라들이다.
공항에서 만난 일행은 모두 26명, 혼자 간 나는 가이드와 함께 룸메이트가 되었다. 따라서 그녀를 주의깊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친해지고 그녀의 장점도 알게 되었다. 약 11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읽으려고 부피 작은 문고판 책을 두어권 골라 넣었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주는 식사를 맛있게 하고, 이제는 소음에도 익숙해진 듯 기내잡지를 뒤적이고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빈 좌석이 많아 다리를 올려놓고 잠도 잘 수 있었다.
서서히 목적지에 이르자 내다본 창밖은 마치 속이 휜히 비치는 물위를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솜털처럼 둥둥 떠 있는 하얀 구름은 멀고 먼 거리를 맑은 수면처럼 경계짓고 있었다.
* 노란 부분은 모두 유채꽃밭이었다. 제주도에서 본 유채꽃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수없이 이어지는 넓은 유채꽃밭은 오월의 햇살아래 분부시게 아름다웠다.
바보같이 사진을 큰 용량으로 찍어서 아쉽게도 거의 반 이상을 지우고나서야, 다시 작은 용량으로 찍는 실수를 범했다. 메모리를 사야겠다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똑똑한 우리 가이드가 보더니 해결해주지 않는가! 얼마나 고맙던지...
어느 한번 문제 없이 지나가는 법이 없는 여행, 그래서 갈등, 문제의 'trouble'에서 여행이라는 'travel'이 나온거라고 예전에 누군가 일러주었었다. 설득력있는 해석이다. 여행은 그렇게 여러가지 문제를 깨달으며 즐기는 과정인 것이다. 누구 하나 다르지 않은, 문제 많은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안마인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진파랑색의 여행버스를 타고 멜링겐으로 5시간쯤 갔다. 버스 속에서 창밖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수없이 찍었지만, 순간포착의 어려움으로 모두 지워야 했다. 동 유럽에서 해가 지는 시간은 저녁 9시도 넘어서였다. 그러니 여행하기에는 너무 좋은 때이다. 겨울에는 4시면 어두워진단다. 가는 곳마다 예쁜 들꽃이 가득 피어 탄성을 자아냈다.
독일 국도 '아웃토반'은 유대인들의 요구에 응하여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며 그 튼튼함을 가이드는 오랫동안 설명했다. 또한 '아탁'의 신속 정비기술은 세계가 인정한다고 한다. 독일의 속죄는 이렇듯 철저한데, 우린 일본에게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모욕을 받고 있으니 이것이 정치가의 잘못뿐인지 생각하게 한다.
* 멜링겐에서 여장을 푼 여행 첫날밤의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림이 좋아 찍었는데 어째 신통치 않다. 여행 중 호텔에서 하는 조식은 늘 만족스러울 만큼 내게는 잘 맞는다. 갓 구운 바게트, 신선한 음료와 과일 등, 그러나 대부분의 일행은 곤혹스러워하며 한국에서의 아침을 떠올린다. 그리고 객실로 가서 컵라면 등을 먹는단다.
* 차에서 내려 식사후 잠깐 주변을 살펴보니 방목하는 짐승들, 지붕이 낮은 마을 풍경이 평화롭다.
* 독일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베를린 장벽의 한 부분. 많은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 아래 숙연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긴 여러 가지 게시물과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나는 일행 중에 마치 통일을 바라지 않는 듯 말하는 이가 있어 놀라웠다. 아무리 힘겨워도 함께 져야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며 시련인데, 어쨌거나 통일은 되어야 하는 일 아닌가! 중국을 통해 탈출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는 북한인들의 참상을 보며 어떻게 지금의 안위에만 급급하겠는가...
* 약 10만명이 묻힌 걸로 추정되는 유대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유대인 묘지의 비석. 사람 키보다 훨씬 더 큰 사각형 돌 12,000개의 비석은 크기의 조화로움과 어두운 색채가 주는 암울함으로 역사적 가치와 함께 현대적 예술미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어 좋은 장면도 있었는데, 지우지 않을 수 없어 아쉽게도 한 장 밖에 없다. 또한 바쁘게 빼곡히 적었던 설명서를 성당에서 잊어버려, 에구! 기억을 할 수도 없다. 내가 사는 일이 늘 이렇다.
* 통일 전에는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기점으로 이용된 부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파리광장은 즐거움이 넘치고 있었다.
문 위에 있는 승리의 4두마차는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다가 1817년에 다시 반환하여 세운 것인데, 그 아래 광장의 이름을 '파리광장'이라 하여 발 밑에 파리를 둔 것으로 빼앗겼던 그들의 자존심을 위안하는 듯 했다.
* 전쟁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 불타고 파괴되어 사용할 수 없어 이 옆에 새로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독특한 디자인이다. 들어가 보니 새파란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멋진 교회였다. 건축학도들은 반드시 모든 고전양식이 함께 존재하는 동유럽쪽을 견학할 필요가 있겠다.
* 버스로 이동하며 지나는 길에 독특한 패션의 가족이 눈에 들어와, 멀리서 당겨 셔터눌렀는데도 알아채고 찍지말라고 소리 질려 민망했다. 아니, 눈에 띄어 보아달라는 거 아니었나?
* 이곳은 미장원인데 한산하다. 지나가면서 바삐 찍는 통에 이 꼴이다.
* 장거리 이동을 하다보니 차 속에서 주로 많은 풍경을 보게된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전원 풍경이었다. 이 사진은 호텔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오다 로비 한귀퉁이로 보이는 분위기 좋은 장면을 찍은 것이다. 근데 사진으로 보니 뭔가 연출을 잘못한 모양이다. 그때 보았던 느낌이 영 아니네!
* 나는 운좋게도 빈 방이 있는 호텔에서는 가이드가 각 방을 써서 편안했다. 독일 우스티에 도착한 호텔 창문을 열자 들어온 풍경이, 와! 석양 빛에 감싸여 더욱 아름다웠다. 주변을 좀 산책하며 어두워오는 마을을 감상했다. 나무가 많아 어딜가나 들리는 새들의 경쾌한 노랫소리, 이국적 정취에 잔뜩 혹한 나그네를 기분좋게 한다.
* 동유럽 모두 어디나 이렇게 전차노선이 있어 마치 버스처럼 골목길도 누비고 다닌다.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공중에 어지러이 복잡한 전기노선이 좀 경관을 해치긴 하지만...
* 땅 크기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은 동유럽은 전원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회복지국가를 목표를 하는 그들답게 제제가 아직 많은 편이나 그 혜택이 곧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잘 따르고, 따라서 관광수입이 대단한 나라들이다. 우스티에서 약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유명한 체코의 프라하를 향해 간다. 독일은 돌아갈 때 다시 들린다.
가는 내내 낮은 구릉은 초록빛 밑밭이 이어지고 연속적으로 샛노란 유채꽃밭과 들꽃이 가득한 들판, 간간이 말이나 소,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 풍경은 심신의 피로를 사라지게 한다. 담아오지 못해 아쉬울 만큼... 차 안 창문을 통해 찍은 사진들이라 색이 푸르다.
* 프라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또 그 내용을 영화화 한 <프라하의 봄>을 보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곳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 와서 중세의 거리를 거닐며 즐거운 시간여행을 한다.
고 딕양식의 2개의 첨탑을 지닌 틴교회, 카를성당,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아픈 상처가 있는 성 바츨라프 광장, 왕궁 전경 등, 무엇보다 아름다운 카를교를 보면서 그 고풍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새도 없이 우리는 또 밥을 먹으러 가야한다. 에그, 안 먹으면 죽는 밥이라지만 이런 때는 좀 안 먹을 순 없나!
참새모이 만큼 주는 시간에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 찍고 쇼핑하며 즐기려니 숨이 턱에 차고 시간에 못 댈까봐 조바심까지 쳐진다. 이래서 배냥여행을 해야 한다. 아무 음식이나 적당히 거리에서 사먹고 느긋이 구경하며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체코인과 산다는 중년의 현지가이드는 낭랑한 목소리로 얼마나 빨리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입력시키기가 어렵다. 거기다 그녀의 걸음은 또 어찌나 빠른지 쫓아가느라 꽁지가 빠질 지경이다.
* '동유럽에서 보헤미안을 만나다' (이기중 作) 에서 프라하를 돌아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보헤미아(체코의 옛이름) 왕의 대관식 행렬을 상상하면서 따라가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시민회관에서 시작하여 프라하 성에 이르는 길이다. 성 자체가 하나의 건물로 보이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인 넓은 지역에 옛 왕궁, 교회, 정원, 성당, 수도원 등 여러 건물이 있다. 건물의 일부를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그 속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으니 이걸 어찌 여행이라 할 수 있겠는가...
* 너도밤나무과에 속한다는 흰꽃을 잔뜩 피운 마로니에 나무가 장관이다. 어디가나 많았는데 연붉은색 꽃을 피운 마로니에도 고았다.
* 차들은 신호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어디서나 그랬다. 신호는 건너는 사람이 버턴을 누르면 잠시 있다 녹색불로 바뀌며 시각장애인을 위해 소리를 낸다. 그러니 이 느긋한 나라에서 경찰관들도 여유로워 보인다.
* 몰다우강으로 잘 알려진 블타바 강이다. 이 강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특히 제2곡 '블타바'의 선율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렇게 좋아하던 것들과 연관된 장소를 다니니 행복했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스메타나 박물관, '신세계'를 작곡한 드보르작 박물관 등을 들어가보지 못해 정말 아쉬웠다.
* '성 비토' 성당 내에 있는 아르 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은 극치에 이른다. 높이 100m의 이 성당은 600여년에 걸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체코의 대중 예술가인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라고 한다. 파란 색은 과거, 금색은 신화적인 것, 빨간색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찬찬히 감상은 커녕 사진 한장 찍고 지나가기도 바빴다. 이곳에서 마치 초딩처럼 그동안 열심히 적었던 설명서을 어디서 흘렸는지 바닥을 보면서 한 바퀴 돌았지만, 없었다. 내 몸에 잡아 매지 않으면 잃어버린다니까~
*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되다가 18c 초에 완성되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성 니콜라스 교회. 현재는 후스파의 교회라고 하는데, 섬세하고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탁월하다.
* 이 길에는 예쁜 가게들이 많았지만 멈춰 서서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다. 자칫 일행을 놓지면 민폐가 될테니...
장난감 박물관이라는 간판이 예쁘고 들어가 보고 싶었다.
* 소지구의 폐트친 공원 언덕인가? 전망대에 오르면 에펠탑을 본떠 만들어진 60m 높이의 탑이 있다고 하던데....
* 블타바 강 서쪽의 프라하 성과 동쪽의 상인 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 카를교는 보헤미아의 왕 카를 4세때 만들어졌다. 이 다리는 중유럽에서는 두번 째로 오래된 석조다리로 길이 520m,폭 10m의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다리 양끝에는 고딕양식의 교탑이 세워져 있고 다리 양편으로 15개씩 30개의 바로크식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어 '야외 바로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17c 후반에서 20c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최고의 조각가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되어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원작품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리 자체도 멋지지만, 그 다리에서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적 상업 행위들이 더욱 멋진 듯 느껴진다.
*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15c 체코의 종교 개혁자 '얀 후스'의 기념 동상. 카를 대학의 총장이기도 했던 그는 부패한 로마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다 이단으로 몰려 독일에서 화형을 당했다. 후에 그의 신봉자들이 후스파를 만들어 카톨릭 교회와 맞서며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다. 그가 죽은지 500년이 지나 만들어진 이 동상은 종교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스파 전사들의 조각상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한 전사가 들고 있는 와인잔은 평신도들도 성찬예식에서 와인과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운 후스파의 상징이라고 한다. 또한 자식들과 함께 있는 어머니는 체코의 부흥을 의미한다고 한다.
* 광장에 나와 한가함을 즐기는 이 노부부는 강아지들을 마치 손주들처럼 유모차에 태우고, 또 안고 계셨다. 사진 찍어도 좋은지 물으니 활짝 웃으며 응하신다. 찍은 후 뵈드리니 좋아하시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으셨다. 할머니께서 강아지를 안고 카메라를 향해 웃으시는 사진은 아쉽지만 나중에 메모리 부족으로 지워야 했다.
* 관광지답게 거리 어디나 노천카페에서 낭만적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카를교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교탑. 사람들은 많았으나 모두 제각기 무엇인가에 열중해 있는 모습들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 카를교를 지나는데, 어디서 아름다운 오카리나 선율이 흐른다. 이 예쁜 아가씨가 오카리나를 팔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나는 서둘러 친구들 줄 예쁜 미니 목공예품 몇 개를 고르고 모이라는 시간 때문에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 정말 독특한 모양의 조형품들이 게시된 가게인데 일행이 함께 바삐 지나가는 길이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셔터만 누르고 지나쳤다. 토산품인 호박 보석 쇼핑센터로 간다나? 이걸 여행이라 할 수 있으려나...
* 프라하는 크리스털 공예로 유명하고, 마리오네트 인형극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또한 체코는 목공예가 유명하여 나무로 만든 정교한 장식품이 많은데 수공예품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 쇼핑은 않고 슬그머니 나와 뒷마당에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 시장을 지나가는 길인 듯, 과일과 나무인형 가게, 유리병에 담긴 유과 사탕 등이 보인다.
* 옛날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 어린이들에게 나무 인형을 깎아 놀잇감으로 주었던 체코의 전통이 오늘날 그들의 예쁜 토산품이 되어 관광객들에게 팔린다.
* 아파트 현관문이 화려하고 예술적이다.
* 프라하 구시가를 대표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틴 성당. 두 개의 첨탑은 프라하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 구시청사 벽에 만들어진 오를로이 천문시계. 정시마다 울리는 특이한 모습을 보기위해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1437년 하누쉬에 의해 제작된 이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하여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가는데 화려하고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 아래 왼쪽에는 미모와 돈을 숭상하는 두 조각상이 있고, 오른쪽 해골 인형이 오른손에 감긴 줄을 잡아당기고 왼손으로는 모래시간을 들어올려 뒤집으면, 위쪽의 2개의 창문이 열리고 시계태엽에 해당하는 예수의 12사도 인형들이 베드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이 행렬이 끝나면 중앙 위쪽의 수탉이 홰를 치고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린다. 많은 사람이 넋을 놓고 모두 한 곳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모습 속에 하나인 나는 그 장면은 담지 못했다. 미모나 돈, 그 모든 탐욕이 소용없이 시간은 곧 죽음을 향하는 것임을 잘 드러내었다. 이 작품을 만든 시계공을 이와같이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더는 다른 도시에 만들지 못하게, 후한 보답을 한 후에 장님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 프라하 국립 박물관, 시민회관이 있는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독립 역사의 상징적인 곳이다.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군에 대항한 반대집회가 일어났을 때 1969년 당시 카를대 철학과 학생이었던 얀 팔라흐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분신한 곳이 국립박물관 계단이였다고 한다. 여러 건물의 설명을 들었지만, 들어가 보지 않고 지나쳐서인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광장마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많았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아마 배냥여행이었다면 한번쯤 타고 시내를 둘러보는 호사를 했을 것이다.
* 체코는 맥주 애호가의 천국이라고 한다. 전세계에서 1인당 맥주 소비량이 1위라나? 가장 유명한 맥주는 '부드바' 란다. 식당마다 한 가지 종류의 생맥주만 파는 것이 관례라 가게 밖에는 생맥주의 이름이나 그림이 표시되어 있단다. 술을 즐기지 않는지라 관심있게 보지 않았지만 일행들이 권하여 맥주를 조금 맛보기는 했는데 시원하고 맛있었다. 십여년 전 영국에 갔을 때 유명한 흑맥주 '기네스'를 남편 주려고 힘들게 사들고 왔던 기억이 난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 예쁜 공예품들 구경하며 사고 싶었지만 지나치며 사진만 찍어야 했다.
* 마리오네트 인형을 파는 곳. 인형만 봐도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인형이 많았다.
* 프라하 야경(옵션)을 구경하기 위해 현지 가이드까지 10 명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가파른 경사의 에스커레이터 속도가 무척 빨랐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벽에 쭉 그려진 무늬이다. 다시 전차를 타고 세 정거장인가 가서 내렸다.
*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가이드는 재빨리 설명하며 지나간다. 적을 새도 없다. 그러면 들을 때 뿐인데...
* 흑사병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위령탑이라고 했던가? 중세를 암흑기로 휩쓸었던 흑사병은 그들의 비위생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 밤거리는 어디나 이런 가스등 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해 멋있었다.
* 프라하의 모든 길이 돌로 만든 길이다. 이렇게 무늬를 넣은 길도 있고 마차가 미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길도 있다. 이렇게 돌로 만든 길은 우리나라 처럼 툭하면 멀쩡한 보도를 뜯어내는 코메디는 못할 것이다.
* 이 건물은 어머어마하게 길었는데, 무엇이라고 했는지, 길이가 얼마라고 했는지 알쏭달쏭...
*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건설되었다가 1597년 연금술사들의 거주지로 조성되면서 '황금 소로'라고 불리는 작은 골목에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한때 작업실로 사용한 집이다. 연한 파스텔톤의 색색의 집들이 어두워서 제 색갈이 나오지 않았다. 이 집은 연하늘색 벽이었는데...
* 이 청동상은 특이한 이중적 의미를 보여주는데 가이드는 설명 없이 지나쳤다. 하도 앞질러 가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 페트친 공원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의 야경은 환상적일만큼 아름다웠다. 너무 검게 나온 솜씨 없는 이 사진으로는 믿기 어렵겠지만, 일행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어디 노천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낭만을 즐기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은 피곤한 가이드는 걸음을 서두른다. 체코인과 산다는 가이드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이곳의 부부들은 대개 60세까지는 일을 하고 그 이후는 연금을 받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탁아시설에 맡긴단다. 그것도 모르고 곁에 있던 이가 내게 귓속말로 '저이가 남편을 잘못 만난 모양이다.' 라고 해서 웃었다.
프라하를 일컫는 여러가지 말이 있지만 작가 밀란 쿤데라는 프라하를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도시'라고 표현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천년의 고도(古都)에서 어찌 사랑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 호텔로 돌아와 화끈거리는 발바닥과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가지 않은 노부부들이 이해가 된다.
이런 여행은 더 늙으면 하기 어렵겠다. 그래도 함께 온 부부들 정말 군소리 없이 잘도 따라 다니신다. 나는 그 나이 되면 자신 없다. 어느 한 곳에 가서 유유자적하면 모를까... 이제 '보헤미아의 진주'라는 체스키 크롬로프를 향해 떠난다. 차속에서 다시 셔터를 눌러보지만 포착했던 장면은 지나간 후 찍힌다. 마치 놓치곤 하는 우리 일상의 행복처럼... 그래도 나는 찍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우고 또 찍기를 거듭한다.
*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 유채꽃밭이 아닌가 할 만큼 햇빛에 반사하는 샛노란 유채꽃밭이 지천이었다. 근데 마치 흐린날 처럼 사진이 왜 이 모양일까? 차창을 통해서 찍은 탓인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체스키 크롬로프는 13C 남부 보헤미아의 호족 '비테크'가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여 고딕 양식의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한다. 18C 이후 마을의 모습이 거의 변함이 없다고 하니 그 태고적 자연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 '체스키 크롬로프'란 이름은 체스키는 체코, '활처럼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에 둘러싸인 도시'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곳의 아름다운 옛모습은 화가 에곤 실레의 그림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코스를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 동굴처럼 판 레스토랑에서 현지식 식사를 했는데 분위기도 좋고 음식맛도 좋았다. 사진을 여러장 찍었는데 지우는 바람에...
일행은 대체로 점잖고 모난이가 없었다. 함께 온 여섯분의 아주머니들도 얌전하였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간간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서로 맥주도 한 잔씩 돌리며 분위기가 좋았다.
* 이 가운데 집이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겉모습을 깨끗이 칠하여 새집인 듯 느껴지지만 호텔 간판이 그것을 말해준다.
* 13C 이 성의 영주가 성의 방어를 위해 곰을 키우기 시작했다고도 하고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아무튼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곰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좀 쳐다보라고 해도 그냥 무관심!!! 어디 아픈가? 아님 갇혀있는 지루함때문일까?
* 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번째로 크고 아름다운 체스키 크롬로프 성. 이 성안에는 5개의 정원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식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성에서 내려다보는 마을풍경은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 성에서 내려가는 길에 줄지은 성벽 창에서 보이는 풍경들이 만화경처럼 아름답다. 정말 예술적인 건축물들이다. 좀 더 여러가지 풍경을 잘 담을 수 있었을텐데... 여의치 않은 사정도 사정이지만, 사진 기술이 미숙하기 짝이 없다.
* 마을로 내려와 자유시간이 주어져 이곳 저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예전에 그리이스의 산토리니, 미코노스 섬을 구경할 때처럼 온통 예쁜 물건으로 가득한 가게들이 마음을 사로잡으며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 에곤쉴러의 그림을 복사한 도자기 액자들. 비어있는 자리는 사람들이 사려고 가지고 들어간 듯...
* 정교하고 비싼 목공예 장식품들이 맘에 들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구경만 하고 나왔다. 손주가 있었으면 하나 샀을 텐데...
* 재미있게도 동그란 렌즈 속을 들여다보니, 중세 여자들의 속옷차림이! ㅎㅎ...
* 여행 내내 일행을 돌보던 가이드가 성 전체 지도를 보며 설명을 한다. 서양역사학을 전공한 이답게 박학다식하고 문화적 감각도 있는데, 버스속에서 설명만 시작하면 모두들 쿨쿨 오수에 빠진다. 제 말이 수면제라고 자인을 한다. 아마 피곤들 하셔서 그러겠지만 목소리에 리듬감이 좀 있고 유모어도 있으면 좋을텐데... 누군가 작은 소리로 '교과서 읽듯 딱딱해...' 라고 말했다. 그래도 쉬시라며 칸쏘네, 뉴에이지 풍의 음악을 작게 들려주어 좋았다.
또 버스로 가는 동안 그 지역과 관련시켜 다시 보아도 좋은, '인생은 아름다워', '사운드 오브 뮤직', '아마데우스', '황태자의 첫사랑' 영화를 보여주었다. 하루는 TV 앞에 앉아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에 잠을 못 자 몹시 피곤했다. 화면이 작은 2개의 TV로 앞쪽과 중간쪽 몇몇 사람만이 자막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런대로 옛영화를 보는 재미가 좋았다. 나는 '프라하의 봄', '나의 아름다운 비밀' 영화도 보시라고 권하고 싶었다.
* 저녁식사후 주변 사진을 찍을까 호텔 밖으로 나왔다가 몇 사람과 동석을 하게되었다. 한 여자가 나와 함께 걷자하여 주변을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래를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물론이라고 했더니, 변변치 않지만 한 곡 불러보겠다고 하여 박수를 치며 호응하니 명곡을 멋들어지게 부르는데, 목소리 뿐만 아니라 폼도 좋다.ㅎㅎ... 가사를 잘 모르겠는 나는 허밍으로, 아는 부분은 함께 우리는 어둠이 밀려와 캄캄해질 때까지 노래를 부르며 흥취에 젖었다. 간혹 뒤쪽에서 기차가 지나가며 그녀의 노랫소리를 휘몰아간다.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그녀였지만 남편을 성토하던 귀여운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잊지못할 멋진 밤이었다.
* 어젯밤 어둠 속에서 들었던 기차소리가 생각나 아침에 버스를 타기 전에 가보았다. 기차가 아니라 출퇴근을 위한 전차인 듯 매우 자주 지나갔다.
* 작가 '밀란 쿤데라'의 고향인 브로노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 우리는 이제 폴란드의 크라카우로 이동을 한다. 산업도시인 브로노의 호텔에서는 옆의 큰 홀 놔두고 비좁은 홀에 의자를 맞부딪히면서 야채 한 조각 없는 고역스러운 식사를 한 기억뿐이다. 좀 가격이 싼 여행이여서 그러겠지라는 생각을 해야했다. 가이드의 영향도 있으려나?
우리에게 익숙한 체코스로바키아가 1933년 1월 1일 '벨벳 이혼'이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두나라로 분리된 것이다. 체코는 문화적 성향이 독일에 가까운 반면, 슬로바키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의 영향을 받아 슬라브적이라고 한다. 과거에 두 나라는 합스부르크 왕조에 속해 있다가 20C 들어 체코슬로바키아가 된 것이었다. 앙증맞은 작은차들이 많고 화물차 외는 큰 차를 볼 수 없다. 생활습관이 무척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 여긴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시장이었는데, 자유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구경을 하지 못했다. 동유럽이 모두 카톨릭과 신교를 믿는 나라들이라 아름다운 성당과 성화를 파는 곳이 많았다.
* 피곤한 하루 여정을 쉰 한적한 곳의 호텔이다. 작은 구석방에서 혼자 잤는데, 시설은 깨끗했다. 무엇보다 여행 내내 질좋은 하얀 목면 시트의 촉감이 좋았다.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인이 하는 한 호텔을 제외하고는...
* 프라하 말라스트라나 지역에 있다는 코멘스키(코메니우스) 교육 박물관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일정에 없었다. 그는 이미 400여년 전에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교육사상을 정립하였다고 한다. 그의 근대교육에 대한 공헌은 근대과학에서 코페르니쿠스와 뉴턴, 근대철학에서 베이컨과 데카르트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고 기회가 있어 다시 오면 가보고 싶었던 많은 곳들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여행일정에 따라 내일은 폴란드로 간다. 카를교에 있는 성 얀 네포무쯔키 동상에 손을 얹고, 언제고 좋은 사람과 다시 오게 해달라고 소원했어야 하는데, 그만 빠뜨렸다. 소원을 하나 간절히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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