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58)
2008. 11. 24 (월) 영남일보
l (뚫을 곤: 상하를 관통한 모양)
위와 아래를 뚫는 일을 두고 'l'(뚫을 곤)이라 했다.
그런데 밑(아래)에서 머리(위)쪽을 향해 뚫는 경우를 '신'( ; 머리의 모양)이라 읽고,
위에서 아래를 향해 뚫는 경우를 '곤'(坤 ; 땅으로 향함)으로 읽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어떤 물건(口)의 중심을 뚫는 일을 두고 '中'(가운데 중),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고스란히 중심을 지켜 나아가는 마음을 '忠'(충성 충)이라 했다.
주자가 이른바 '中心之謂忠'(중심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을 일러 忠이라 한다)고 한 말은 이를 두고 이른 것이다.
왼쪽을 머리 돌려 바라보고 오른쪽을 눈여겨 살펴야 한다(左顧右瞻)는 말은 좌우를 살펴 중심을 잃지 말라는 것으로,
좌우 한 쪽을 살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이다.
忠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나가야 할 방향을 곧장 나아간다는 의미라면,
좌우를 버리지 않고 되도록 수용해 나아가는 일을 '恕'(용서할 서)라 말할 수 있다.
즉 '忠'은 중심을 지켜가는 원리를 말한 것이라면 '恕'는 중심을 원만히 지켜 나아가는 실질적 방법인 것이다.
도드라지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좌우를 아우르는 밑바탕을 크게 잡고 난 뒤,
그런 큰 토대위에서 중심을 잘 잡고 꾸준히 바른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꼼꼼히 쌓아가야 할 것이다.
즉 '첨단'(尖端)의 '尖'(뾰족할 첨)이 되려면 밑이 커야 위가 뾰족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중심을 잃고 좌우로 치우치는 그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까닭은 감각적 본능에 한 눈이 팔려 버리기 때문이며,
일을 망치는 그 본능의 밑바닥을 파들어 가보면 오직 '食'과 '色'이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탐욕(貪慾)과 애욕(愛慾)이 '忠'을 막는 최대의 적이며,
지나친 사랑과 깊은 미움이 곧 '恕'를 막는 크나큰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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