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75) 告 (아뢸 고)

나무^^ 2009. 6. 22. 18:10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5)                                                     

                                                                                            2009. 3. 30 (월) 영남일보

                 告 (아뢸 고 : 소를 잡아 바치고 빌다)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소, 말, 양, 닭, 개, 돼지 등을 이른바 '여섯 가축'(六畜)이라

                  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겨 왔다. 그 중에서 가족 제사의 제물로는 대부분 돼지를 썼기 때문에 집을 나타내는

                 '家'(집 가)에 돼지(豕)를 붙인 것이다. 또 '말'은 평화 시에는 교통수단으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한편

                  전쟁 때에는 웬만한 말들은 다 동원되어 전쟁을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유용한 짐승으로 여겼다.

                  이에 비하여 '소'는 밭도 갈고, 짐도 운반하고, 고기도 제공하고, 가죽도 유용하게 쓰고,

                  심지어 뼈까지 푹 고아 먹는다. 이처럼 온 몸으로 사람에게 봉사하고 죽은 뒤에는 고기는 물론 가죽과 뼈까지도

                  다 바치는 온전한 희생물(犧牲物)이 소다.

                  따라서 온 몸을 다 바치는 일을 '희생'이라 하는데, 이 때에도 소를 나타내는 '牛'(소 우)가 맨 먼저 획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이 다름 아닌 '羊'(양 양)이다.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이기 때문에 물론 빼어난 것을

                  나타내는 '秀'(빼어날 수)를 창으로 찔러 잡아 바치기로 '戈'를 다음 획으로 썼다.

                  피아간에 승패를 가르는 전쟁은 참으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소를 짧은 시간에 온전히 바친다는 의미에서 머리털과 꼬리털을 자르고

                  피를 도마나 쟁반에 모아 바치기 때문에 이를 '毛血盤'(겉의 털과 속의 피를 쟁반에 바침)이라 하였다.

                  그런 뒤 도끼를 들고 "이 도끼로 저 못된 적을 모조리 벨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빌고, 아울러 목숨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기로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祈禱'(기도)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본디 하늘 신을 뜻하는 '示'(보일 시: 본디 신의 옛 글자)를 향해 도끼를 놓고 목숨을 빌었기 때문에

                 '祈'(빌 기)와 '禱'(빌 도)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고, 또한 소를 바치며 간절히 아뢰었기로

                 '牛'(소 우)에 '口'(입 구)를 붙여 '아뢰다'는 뜻을 지닌 '告'(아뢸 고)라는 글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속담에 "한가로이 아무런 일이 없을 때에는 향 한 자루 사루지도 아니하다가 급한 처지에 다다르면

                  부처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린다"(閒時不焚香 急地抱佛脚)고 하였다.

                  또한 "천하가 비록 평안하다 하나 전쟁의 위협을 잊고 산다면 반드시 위태로움이 닥칠 수 있다"

                 (天下雖安 忘戰必危)라는 금쪽과도 같은 명언도 있다. 급한 상황을 당해 급히 아뢰는 일이 있기보다는

                  항상 급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리 미리 살펴 나가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일이 터진 뒤에 애써 막으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그 어리석은 일의 근원은 행여나 하는 방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같은 방심은 으레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방자가 그 큰 원인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역' 64괘 중 길흉에 흔들림이 없는 괘는 오직 '謙'(겸손할 겸)괘라는 점은

                  참으로 보여주는 바가 크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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