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6)
2009. 4. 6 (월) 영남일보
위를 향하여 입을 벌린 모양을 일러 (입벌릴 감)이라 하였다. 입은 두 가지 작용을 한다.
첫째는 음식을 먹고 씹어 삼키는 일이요, 둘째는 마음속에 든 뜻을 밖으로 나타내는 말을 하는 일이다.
이 중 먹어 삼키는 일은 말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로, 여기에서는 먹어 삼키는 일을 뜻하는 경우로 쓰인다.
인류가 맨 처음 살아온 방식은 사냥이었다. 먹는 것도 사냥을 통해 얻어진 고기였고, 처음으로 입었던 옷도
대부분 짐승의 가죽이었고, 삶의 토대도 실은 산속 동굴이었다. 즉 의식주 모두가 사냥 활동과 동떨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사냥으로 일관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냥에 '개'를 길들여 짐승을 쫓을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했다는 점과
나름대로 무기를 만들어 쓸 줄 알았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디 야성을 지녔을 것이라 추측되는 개를 길들인 점, 무기를 만들어 썼다는 점도 훌륭한 일이었다.
그런데 활이나 창이나 도끼와 같은 무기만으로 호랑이나 곰과 같은 맹수들을 쉽사리 사냥할 수 있었을 것인가.
맹수도 맹수려니와 나는 새나 물에서 헤엄쳐 노는 물고기를 단순히 무기만을 사용하여 잡을 수 있었을까?
날카로운 무기만으로는 도저히 매끄러운 사냥이 이뤄질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같은 무기보다 훨씬 유용한 방법이
곧 '그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물을 사용할 수는 없었던 노릇. 오늘날에 볼 수 있는 그물 이전에
있었던 원초적인 그물은 다름아닌 '함정'이었던 것이다.
일단 맹수가 즐겨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파놓고 겉으로 살며시 이를 은폐한 뒤에 그 맹수가 즐겨 먹는
먹잇감을 붙잡아 매놓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엉금엉금 다가온 맹수가 먹이를 향해 진입해 오는 동안
함정은 푹 꺼져 버리고야 말 것이다. 이렇게 함정에 빠진 맹수는 나름대로 벗어나려 온갖 발버둥치지만
애당초 맹수를 잡으려고 만든 함정인데 이를 다시 살려줄 까닭이 있겠는가. 도저히 그럴 리는 없다.
다시 딴 어리석은 짐승이 또 이 함정에 빠진다 해도 그대로 잡을 뿐이다.
이처럼 함정에 빠진 짐승은 죽음을 면할 도리가 없으니 함정을 나타내는 '(그림1)'에
베어 버린다는 뜻을 지닌 ' '(벨 애)를 넣어 흉하다는 뜻을 지닌 '凶'(흉할 흉)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흉하기를 피하고 '吉'(길할 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하면 흉하고 어떻게 하면 길한가를 알지 못한다.
'주역'의 예를 들어 길흉을 구분해 보자.
'乾'(하늘 건)괘는 '최고의 지도자'를 말하는 '왕'을 뜻하는 괘다. 이 왕이 땅위에 지도자로서 드러나 있을 때는
건의 둘째 효로서 그 효사는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고 하였다.
또 지도자가 마침내 최고 지도자가 된 때는 건의 다섯 째 효인데, 그 효사는 "나는 용이 하늘에 올라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고 하였다.
즉 최고의 지도자는 지상에 드러날 때부터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때까지 큰 어른을 만나야 이롭다.
좋게 말해 이롭다는 말이지 만약 큰 어른을 만나지 못하면 결국 누가 '凶'해도 '凶'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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